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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요 Oct 10. 2022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4. 우린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나 봐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우리 사이엔 넓은 강이 있는 것 같아. 아무리 헤엄쳐봐도, 그대는 저 멀리 떠나고

그대를 따라가다가 더 깊이 가라앉아서, 그대를 향한 사랑이 빛을 잃어가요.' (우리 사이에 - 곽진언)

  

엄마 아빠와 내가 딱 이랬다. 우린 가까울수록 멀어지고,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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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린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나 봐


대학 8학기에 학교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내가 상담받을 일이 뭐가 있나 싶었지만, 전공생들에게 권유하는 사항이라 성가셔하며 들어갔다. 처음엔 친구들 이야기를 좀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사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사람은 누구나 베이스캠프(Base camp)를 갖고 있어요.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갔다가 다치면 베이스캠프로 오잖아요. 와서 치료도 받고, 쉬기도 하고. 그런 것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돌아올 곳, 쉴 곳을 갖고 살아요. 보통은 집이 베이스캠프죠. 리요 씨는 베이스캠프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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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받고 일주일 동안 고심한 결과 나에게는 베이스캠프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매일 안전하게 잘 곳은 있었지만 그건 특별히 한 군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받을 수 있는 잘 곳은 부모님 집에 있는 내 방이었고, 그다음으로 보장된 잘 곳이 기숙사, 그다음은 친구들 집이었고...... 그랬다. 나에겐 잘 곳은 있었지만, 베이스캠프는 없었다. 


왜 우리 집은 나에게 베이스캠프가 아닐까? 그래서 내가 하루에 잠을 네다섯 시간밖에 못 자나 하고 생각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친구 관계도 자연스럽지 못한 걸까, 이런 이유로 내 연애가 그토록 힘겨운 걸까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집이 베이스캠프가 아니라면 나만의 베이스캠프를 만들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졸업 후 해외로 취직했다. 귀국 후엔 새로 취직한 직장 상사 집에, 친구 집에 얹혀살다가, 직장 생활이 안정될 때쯤 전셋집을 구했다. 그 집엔 동생, 나, 친구 이렇게 셋이 살았다. 우리는 어렵게 구한 집에 '보금자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우리 식대로 아늑하고 포근하게 꾸몄다. 나에게 처음으로 '엄마아빠집(house)'이 아닌, '우리 집(home)'이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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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집이 생기자 엄마 아빠 집과 더 멀어졌다. 우리 집도 서울, 엄마 아빠 집도 서울이니 사실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데, 마음이 머니 거리도 멀어졌다. 엄마 아빠 집이 필요해야 가는데,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안보는 만큼 애틋해졌다. 아빠가 전화를 자주 하셨다. 처음엔 왜 이렇게 전화를 하고 그러나, 귀찮고 어색했다. 그런데 시간이 쌓이자, 아빠가 매번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용기가 났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아빠가 기막힐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힘들었던 날엔 아빠 전화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엄마는 달에 한 번씩 우리 냉장고에 유기농 먹거리를 채워주셨다. 쉬는 날 차 타고 서울을 가로질러 오려면 막히고 피곤할 텐데, 그 식재료와 반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다. 처음엔 베지테리언에게 소고기와 닭고기를 잔뜩 가져다 주니 어이가 없었지만,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며 냉동실을 육류 창고로 만드는 엄마의 억지가 이상하게 감동스러웠다. 엄마를 오래 고파하던 나는 엄마의 챙김에 고기 편식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니 이토록 가까울 수가 없었다. 세상 다정한 아빠, 세상 헌신적인 엄마. 생일이면 만나 외식하고, 휴가철엔 같이 여행도 가고.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우리 가족은 아무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뜻밖에 코로나19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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