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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Oct 21. 2022

낭만은 가장 거친 곳에

시와 사막의 모래

 여행의 끝무렵이었다.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긴 여행의 끝. 그동안 많은 험난한 일을 겪었지만 이번 여행은 더욱 만만찮을 거라 기대했다. 우리는 사막에 가는 중이었다.  

 시와 가는 길, 버스가 잠시 휴게소에 정차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보이는 건 오로지 휴게소와 내가 내린 버스 뿐. 나무도, 언덕도, 돌도, 풀 한 포기도 없었다. 난 지평선 한가운데로 걸어나갔다. 360도 돌아도 보이는 건 지평선 뿐이었다. 드넓은 연극 무대 위 작은 세트장에서 나와 휴게소와 버스만이 장면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뛰어도 내가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사람들은 날 볼 수 있을 테였다. 어디로든 갈 데가 없어지자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같이 여행하는 동행자가 있는데도 잠깐 떨어져 사막을 바라보고 있자 한없이 고독해졌다. 사막이란 이런 곳이구나. 외롭고 황량한. 의문이 들었다. 이런 곳에도 낭만이 있을까? 

 시와는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마을이다. 카이로에서 기차타고 지중해를 끼고 있는 알렉산드리아로 3시간, 알렉산드리아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7시간 가량 가야 닿을 수 있다. 그토록 멀지만 여행객들은 시와에 간다. 사막 투어를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이집트라는 소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시와에 가지 않았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속 사막 한가운데 있는 황토색 마을을 그렇게 실감나게 상상하며 읽지 못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나귀들. 흰 터번과 발까지 길게 내려오는 원피스 차림의 남자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래 언덕. 휴게소에서 보던 황량함과는 달리, 사막에서 상상할 수 있는 낭만을 모두 갖춘 완벽한 마을 시와. 

 시와엔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막 투어 여행사가 있었다. ‘알리스 코너’라는 이름의 이 여행사는 말그대로 알리의 방구석 같은 곳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알리스 코너를 찾기 위해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시와 마을은 아주아주 작아서 몇 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었다. 열심히 돌아볼 필요도 없이 마을 한 구석에 여행자들이 가득 모인 곳을 발견했다. 여행사라기엔 너무 작아서 그냥 흙더미로 만든 동굴 같은 방 하나에 간판만 붙어 있는 정도였다. 몇 사람이 채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방 안팎으로 현지인들 여행객들이 바글바글했다. 기에 눌린 우리는 말도 못 붙이고 곁을 서성이고 있다 겨우 누군가에게 사막투어 하러 왔다고 말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투어를 하러 떠난 사람도 있고 볼일을 보고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겨우 여행사가 조용해질 때쯤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문도 없는 입구였다. 흙으로 한쪽 구멍을 뚫어 놓은 직육면체 같은 방이었다. 그래도 바닥에 카펫과 방석들이 제자리에 얌전히 놓여 있었고 몇 가지 손님을 응대할 도구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우린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행사 직원이라기엔 알리의 친구들 느낌이 더 나는 남자들이 싱글벙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우릴 바라봤다. 다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겔라비야라 불리는 발까지 오는 긴 원피스를 입은 차림이었다. 콧수염을 멋드러지게 기른 사람도 있었고 어리고 순진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은 내 옆에 앉아 주전자에 생 민트를 가득 넣고 차를 끓였다. 차가 팔팔 끓어 오르자 찻잔에 보석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백설탕 조각들을 한가득 넣고 민트차를 부었다. 그리곤 한 잔 한 잔씩 우리에게 마시라며 내어주었다. 설탕의 달콤함과 알싸하고 상쾌한 민트향이 동시에 혀와 코를 찔렀다. 몸이 따뜻해지며 기분 좋아지는 맛있는 민트차였다. 이제야 안정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잔을 금세 마시고 또 한 잔을 얻어 마셨다. 

 “너무 많이 마시진 마. 민트가 독하거든.”

 그러면서도 남자들은 계속 민트차를 끓여 내었다. 남자들은 우리가 사막 투어를 하고 싶다고 하자 투어 종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흔히 여행사에서 사무적으로 여행 패키지 설명듣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편한 자세와 태도로 말을 했다. 이 작은 시와에서 잘나가는 여행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자체가 그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처럼 여겨졌다. 어린 소년도 한 명 있었는데 투어에서 일을 하나 맡아 하는지 이미 사회 생활에 익숙해져 능구렁이가 돼 있었다. 소년은 우리에게 돈다발을 자랑처럼 보여주다 나중엔 가지란 시늉을 했다. 내가 됐다고 손사래치자 입에 돈을 물려주었다. 그들은 때론 거만했고 때론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들의 거만함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천진난만함이 있어 우린 줄곧 즐겁게 대화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투어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주인장 알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투어를 이끌고 인기를 얻게 된 알리란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같이 앉은 남자들 중 알리가 있는 줄 알았지만 말을 하다보니 그들 중 알리는 없었다. 정작 예약을 하려면 그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알리 오네.”

 누군가의 말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 절로 눈이 커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태어나 이제껏 본 남자 중 가장 잘생긴 사람이 들어오고 있던 것이다. 알리는 키가 크고 훤칠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터번을 쓰고 긴 원피스 차림이었지만 그의 외모는 다른 사람에 비해 확연히 눈에 띄었다. 현지인이라기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늦어서 미안. 투어하고 싶다고?”

 그와 함께 사막 투어를 한다면 누구라도 가고 싶을 것이다. 알리는 헐리우드에서 당장 데려가 배우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빛났다. 그는 시와의 셀러브리티였다. 누군가는 알리의 부모님 중 한 명이 외국 사람이라고 했고, 어릴 적 이집트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자랐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의 눈빛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소문이 사실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익숙한 눈빛이었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이들의 일상 생활에 함께 어울리면서도 어딘가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있다. 대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동기가 있었다. 평소에 항상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재밌는 말만했던 친구는 만나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함께 어울리는 일은 드물었고, 가끔 모임에 나와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자기 소식을 전했다. “연극 동아리에 들었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깜짝 놀랐다. 후에 그가 올린 연극을 보러갔을 땐 더욱 놀랐다. 진지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 있는 친구가 매우 낯설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알던 장난기 어린 모습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친구가 제 자리를 찾았다는 걸 그 연극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우리와 함께 어울리면서도 이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알리를 보며 그 친구가 떠올랐다. 민트차를 따라주는 알리는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있지 않는 듯 했다. 다른 직원들은 여행사에서 일하는 자부심과 거만함이 있었지만 알리에겐 그런 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겐 꿈꾸는 듯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의 눈은 시와 너머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진 몰랐지만 사막과 어울렸고 동시에 어울리지 않았다. 

 알리는 우리에게 투어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가 했던 설명 중 장거리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와 오래도록 여행을 같이 할 수도 있어. 사막에서 잠자고 지내며 열흘 아니면 그보다도 더 길게 여행하는 거야. 한 달이 될 수도 있지.”

 알리와 함께 사막에서 지내는 한 달은 어떨까 잠시 상상해보았다. 생각만해도 낭만적일 것 같았다. 알리는 상대방에게 그런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알리스코너’의 가장 강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투어를 같이 하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다는 것. 여행사에서 잡아준 투어를 따라가다 현지 가이드가 나오는 게 아니라 가이드 할 사람과 바로 이야기한다는 게 이 여행사의 강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가이드가 매력적일 수록 여행사가 잘될 수밖에. 

 “내일 이 앞에서 만나. 00시에 지프가 출발할거야.”

 우린 투어 시간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알리와 함께 여행한다는 생각에 괜히 설렜다.

 그러나 다음 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알리가 아니라 심술궂게 생긴 털 많은 아저씨와 순박해 보이는 아저씨 둘이었다. 심술 아저씨는 짧은 머리인데다 얼굴 전체에 수염이 나 있고 웃을 땐 마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당 같았다. 순박 아저씨는 어리숙하지만 착하고 친절한 인상의 사내였다. 둘은 영화에 나오는 콤비 같았다. 알리는 뒤늦게 나타나 짐 싣는 걸 도와주고 심술 아저씨와 몇 마디 나눴다. 짐을 모두 지프에 싣자 알리는 말했다. 

 “잘 다녀와. 이따 만나.”

 알리가 함께 가지 않는단 걸 안 우리는 실망했지만 이내 잊었다. 심술 아저씨의 투어도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아저씨는 악당답게 우리를 사막에서 가차없이 굴렸다. 모래가 가득한 사막을 달리는데도 차는 자비심 없이 덜컹거렸다. 어찌나 흔들리던지 우리는 지프 천정에 머리를 여러 번 찧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짐과 같이 앉은 우리를 뒤돌아 보며 악당처럼 아하하하 웃고 엑셀레이터를 더 밟았다. 차가 속력을 내고 우린 뒤로 몸이 기우뚱하다 이내 다이빙 하듯 앞으로 쏠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중력에 의해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우린 엄청난 높이의 모래 언덕을 내려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몸이 제자리로 돌아온 게 느껴지자 난 절로 몸을 돌려 우리가 내려온 모래 언덕을 보았다. 웬만한 고층 아파트 높이의 언덕이었다. 게다가 거의 절벽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각도란! 아저씨는 우리를 보며 내 운전솜씨 어떠냐는 듯 능글맞게 웃었다. 난 아저씨를 바라보며 쌍 엄지를 올려 세웠다. 

 우린 사막의 여러 곳을 보았다. 이젠 다 사그러진 사막의 옛 마을, 클레오파트라가 목욕을 했다던 목욕탕, 아주 오래전 이 사막이 바다였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조개더미,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 있는 맑은 오아시스. 우리를 오아시스에 풀어놓은 아저씨들은 모래 언덕이 소파인 듯 편하게 누워 담소를 나눴고, 우린 모래 한가운데 앉아 푸른 오아시스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저 멀리 한 소년이 소 한 마리를 끌고 천천히 걸어와 오아시스에서 물을 먹이고 있었다. 문득 사막의 모래가 궁금해 손으로 모래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우면서 까슬까슬한 촉감이 느껴졌다. 이번엔 한움큼 파보았다. 햇볕을 받지 않은 속 모래는 시원했다. 파놓은 안쪽 모래는 겉의 것과 다른 모양이었다. 구덩이에 손을 넣어 한 주먹 잡으니 마치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가 손에 쥐어졌다. 어찌나 부드럽던지 아기 고양이의 털뭉치 같았다. 예상치 못한 고운 느낌에 흠칫 놀랐다. 빈 병이 있다면 집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였다. 

 사막은 어디나 그런 부드러움을 숨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황량하고 쓸쓸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기처럼 약하고 여린 면이 있었다. 심술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겉으로 봤을 땐 악당 같았지만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투어를 이끌어 나갔다. 사막이 바다였던 자리에서 우리가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을 때 아저씨는 해가 지는 방향을 바라보며 신을 향해 경배의 절을 하고 있었다. 의외의 모습에 장난이라도 칠까 했지만 아저씨의 표정은 시종일관 진지했고 행동엔 정성이 깃들여 있었다. 우린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주변을 돌며 이미 딱딱하게 굳은 옛 바다의 자취만 발로 비벼댔다. 

 우리가 다시 알리를 만난 것은 사막 한가운데 마련된 텐트에서였다. 커다란 두 개의 텐트가 오늘 밤 우리가 잘 곳이었다. 다른 투어 일행들도 도착해 부산하게 짐을 풀고 있었다. 알리는 우리와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해가 거의 져 어둑어둑한 저녁 하늘 아래 제멋대로 쌓인 장작 더미가 주인공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심술 아저씨와 순박 아저씨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따뜻한 음식 냄새가 사막의 공기를 채웠다. 알리는 장작 더미 앞에 앉아 모닥불을 피웠다. 불은 이내 타올라 곧 있을 저녁 식사 시간을 기대케 했다. 사람들은 짐을 풀고 사막의 일몰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짐을 푸는 와중에 불을 피우는 알리의 옆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림 같은 자태였다. 해가 지고 나서 알리가 사라진 것을 알았지만 우리는 굳이 그의 행방을 묻지 않았다. 그가 다시 시와로 돌아갔다는 걸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투어를 떠나기 전 잠시 알리스 코너에 들러 민트차를 마셨다. 늘 그랬듯이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며 알리를 찾거나 투어에 대해 묻고 갔다. 여행객들은 누구나 비슷한 인상이었고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우리가 차를 마시는 사이 한 여자가 들어왔다. 키가 아주 작았고, 머리엔 사막의 여인들이 두를 법한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이제 막 핀 꽃봉오리 같은 미소를 지닌 여자였다. 입구에 앉은 누군가와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곤 이내 밖으로 나갔다. 대화하는 내내 그 꽃같은 웃음을 입가에 머문 채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장미 같을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누구라도 그녀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누군가 옆에서 말했다. 

 “저 사람이 알리 여자친구야.”

 알리의 여자친구라는 사람은 여행자였다. 우연히 시와에 왔다 알리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그녀가 잠시 앉았다 나간 사이 우리는 듣지 않고도 이미 눈으로 봐버렸다. 알리가 그녀에게 갔다는 걸 우린 알고 있었다. 이내 떠나야 하는 사람과 하는 사랑은 누가 뭐라해도 애타고 절절하지 않을까.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었다. 저 멀리 거무스름한 사막 뒤로 새빨간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우린 새벽 추위를 무릅쓰고 일출을 바라봤다. 해가 사막 언덕 위로 떠오르며 사방이 노란색으로 가득찼다. 장관이었다. 사막 언덕 사이로 몇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투어 일행들이었다. 이른 아침에 사막 언덕까지 다녀온 그들이 궁금했다. 

 “거기서 뭐 했어요?”

 인자한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Meditation(명상)”

 ‘명상’이라는 단어를 누군가에게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 새벽 사막의 고요함은 명상을 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웠으리라.  

 나의 여행은 어딘가로 떠나고픈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된 여행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좋은 일도 많았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키기 위해 항상 주변을 예의주시해야 했다. 시와의 오아시스에 앉아 아기 고양이 털 같은 사막의 고운 모래를 손에 쥐었을 때, 난 그동안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았다. 가장 거친 곳이라 생각한 곳에서 가장 여린 것을 본 것이다. 사막은 외로워보였지만 동시에 낭만이 있었다. 그 아이러니는 날 무장해재 시켰다. 사막은 그런 마력이 있었다. 나의 가장 여리고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나는 사막을 떠나오면서 아팠다. 차가운 새벽 공기 때문이었는지, 이상한 열병에 걸린 채 시와를 떠나야만 했다. 몸살 같은데 감기처럼 몸이 으실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더워서 오는 내내 버스 에어컨 바람에 얼굴을 대고 있어야 했다. 버스는 다시 그 연극 무대 같은 정거장에 섰다. 차마 내리지 못하고 축 쳐져 있는 나를 누군가 건드렸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옆 좌석에 앉은 이집트 남자가 날 안쓰럽게 바라보며 차가운 사이다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괜찮다고 사양하니 그는 다시 한 번 내밀었다. “Please.” 오는 내내 옆에서 끙끙대는 날 봤던 남자는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나보다. 난 사이다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한 탄산이 들어가자 오히려 살 것 같았다. 나의 열병의 원인은 모른다. 아마도 그건 내가 사막에 나의 가장 약한 무언가를 두고 왔기 때문이리라. 

 알리와 심술 아저씨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사막에 간다면 여전히 심술 아저씨는 모래 언덕 너머 신에게 경배를 하고, 꿈꾸는 듯한 얼굴의 알리가 어디선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방향으로 바람을 보내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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