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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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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일 May 22. 2021

연어

-3-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찾아왔습니다. 여기 이쪽으로, 창가 쪽에 앉으십시다. 이곳 주인장과는 오래된 사이입니다. 그런데도 늘 저렇게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하지요. 하지만 이런 류의 어색한 대치 상태가 어쩐지 저를 항상 이곳으로 발걸음 하게 만듭니다. 과연 영리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분한 친절과 관심은 주정뱅이들이 아니라 거리의 어린아이들에게나 필요한 법입니다. 이를 테면, 훌륭한 술집 주인이란, 말할 때보다 침묵할 때를 더 잘 아는 법이고 그저 맛있는 술과 좋은 음악을 대접함으로써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편이지요. 자, 무얼 마시겠습니까? 제가 대접하도록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 못 고르시겠다면, 제가 골라드리지요. 제 아버지께서 자주 드시던 건데 물론 마음에 드실 겁니다. 여보세요, 여기 핫 토디 한 잔, 아일레이 위스키 한 잔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낮에 마시는 술이란 것이 밤에 쓰는 연애편지만큼이나 위험한 법이지만 역시 그것들만큼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물론 취하기엔 이른 시간입니다만, 중세 유럽의 수도승들처럼 음식 삼아 술을 마십시다. 그 시대의 수도승들이 실은 모두 위대한 양조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들은, 자기 자신보다 이웃을 사랑했고 거짓이 아닌 진실을 섬겼으며 빵 대신 맥주를 마셨습니다. 신을 곁에 두고 싶어 한 것만큼이나 술을 가까이했지요. 사십일의 사순절 기간 동안 오직 물과 맥주만을 마시며 금식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직접 술을 빚고 기도를 드리며 성배에 가득 따라 마셨습니다. 오, 성배에 따라 마시는 술이라뇨. 어쩐지 우스꽝스럽지 않으십니까? 고약하기로는 술이 제일이고, 고상하기로는 성배가 제일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실은 그렇기에, 그 각기 다른 두 가지의 아찔한 낙차가 되려 충격과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곳에선 누구나 정숙한 여자의 음탕한 밤 생활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한답니다. 아 성배 말입니까? 실제로 보신 적은 없으신 모양입니다. 저 또한 운이 좋아 마주했을 뿐입니다. 찬란한 빛깔의 금속 잔에 알알이 파묻힌 보석들의 영롱한 자태는 눈을 혼곤히 하고, 양각으로 아로새겨진 무늬들은 참으로 아름답지요. 무늬 틈 사이사이를 비집고 파고든 피부의 감촉, 손으로부터 전해오는 그 작은 압박을 느끼며 달큼한 꽃과 허브와 숙성된 과일의 풍미를 잔뜩 머금은 그 미지근하고 혼탁한 맥주를 입에 한가득 들이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잔에 코를 박고 입을 대는 순간 가장 먼저 올라오는 비릿한 쇳냄새를 뚫고 코와 혀를 헤집어 놓는 그 풍만한 향취와 달콤쌉싸름한 알코올 맛, 아스라이 작게 터지는 탄산의 촉감이 목젖을 간질이고 어디서 기인했을지 모를 정체불명의 시큼함이 이어 다시금 구미를 당기게 만들지요. 체면을 채 차리기도 전에 볼썽사납게 빈 잔을 핥고 입술을 쩝쩝거리고야 마는 것입니다. 얼큰한 상태로 기도를 드리고, 목놓아 노래를 부르며 신을 찬양하다 잠에 빠지는 겁니다. 쉽게 취하는 사람은 쉽게 잠들기 마련이지만 잠을 자는 동안엔 죄를 짓지 않게 되고,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같은 주정뱅이들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자, 저기 우리가 주문한 술이 나오는군요.

 맛이 어떻습니까?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제 아버지께선 늘 핫 토디 한 잔을 다 비우고선 장식으로 나온 시나몬 스틱을 담배 마냥 빨아대시곤 했습니다. 그 모습이 퍽 안쓰러워 저도 한 번 따라해 본 적이 있습니다만, 영 어색해 금방 그만뒀습니다. 지금 제가 마시고 있는 건,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 출신의 위스키입니다. 그 고장에서 나는 위스키들은 모두 하나같이 개성 강한 향을 지닌 탓에 다른 지역의 위스키들과 확연히 구별되지요. 일종의 소독약, 화학 약품스러운 냄새를 풍기는데, 그 점이 마음에 들어 약처럼 마시고 있습니다. 가령 술맛 나는 약인 셈이지요.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힘도 솟게 하는, 이보다 훌륭한 약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제게 도시의 소식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으로 내려온 지도 어느덧 5년째입니다. 제가 여기 와서  일이라곤 슬퍼해야   슬퍼하고, 기뻐해야   마땅히 기뻐한  말곤 없습니다.  본능에 충실했지요.  마을 선생 노릇을 자처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웃에게 친절하며 어린 딸과 아내가 제게서 도망치기 전까지 그들을 돌봤습니다. 작은 텃밭을 가꾸고,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오랜 시간 병간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시시해져 버려 그만두었습니다. 도시에서 말입니까? 저는 교사였습니다. 8 동안 과학을 가르쳤지요.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딱히 불행했다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돈과 섹스와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가장 문명화된 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란 것들이 죄다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것들이었지만  역시 그런 얘기들을 좋아했지요. 도시에선, 어떤 새로운 곳을 가고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나던 간에 뻔한 얘기와 뻔한 생각들 이었습니다. 페스트가 오랑시를 집어삼켰듯, 도시 전체가 진부한 것들로 전염돼 몸살을 앓고 있는 듯했죠. 아버지는 이런 시대를 못마땅해하셨습니다. 젊은 시절엔 혈기왕성하고 촉망받던 무용수였습니다만 당신 아내를 잃고선 몸도 마음도 고장 나버리고 마셨죠. 저희 집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많은 부분을 세심하게 신경 써드렸지만 어떤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보니,  점심때가 되면 식사도 거르고 집에서 나와 사람을 피해 한적한 공원으로 향했답니다. 도시의 늙어버린 모든 이들이 그렇듯, 피둥피둥 살이 오른 비둘기들을  삼아 시간을 보내곤 집으로 돌아오셨다는군요. 예전과 달리 부족할  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음에도 아버지는 불행해했습니다. 풍요가 새를 날지 못하게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제가 이곳으로 내려온 이유도,  모든 파국을 맞이하게  이유도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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