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설계하는 디렉터 JOHN의 창업현장노트
한번 가고 안 가게 되는 카페가 있다.
대부분 이미지를 파는 카페 핫플레이스가 그랬다. 보기엔 좋았지만 두 번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 어떤 영화는 10번을 봐도 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지. 대부분 영화는 한 번 보게 되지만 어떤 명작은 10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카페도 그렇게 되려면 그 이미지가 명작이어야 하는데, 우리가 과연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굳이 카페를 그 정도까지(희대에 명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싶다.
어떤 업계 종사자들, 카페 오너들은 젠틀몬스터에서 기획한 카페 '하우스 도산'을 종종 말한다.
파격적이고, 멋진 공간이라 감탄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멋진 공간에 얼마나 가봤을까? 나 조차도 멋진 기획이라 말했지만 지금까지 2번 정도 갔다. (그래도 두 번이나 갔네...)
'하우스 도산'을 별로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젠틀몬스터는 기업 이미지를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즉, 성공적인 카페가 아닌 기업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한 것이다. '하우스 도산'은 어떤 경험을 제공할까? 아마 대부분 '충격적이다' '멋지다' '독특하다' '갸우뚱...'... 이런 경험들을 했을 것이다.
맞다. 젠틀몬스터의 이미지가 제대로 먹혔다. 젠틀몬스터는 카페를 기업 이미지 전달에 제대로 활용했다.
그런데 우리는 카페를 이렇게 접근해서는 안된다. 우린 카페로 오로지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 매일 가는 카페에 관심이 많다.
유명하진 않아도, 핫플레이스가 아니어도 괜찮다. 사람들이 매일 갈 수 있다면 그 카페는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이미지를 파는 카페 핫플레이스 말고, 미식을 파는 카페 핫플레이스가 우리가 가야 될 길이다. 다음에 또 오고 싶고, 누군가를 데리고 오고 싶은 그런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스타벅스가 대표적이다. 기업 브랜드이지만, 백번 천 번 가본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는 성공적인 카페 모델이다. 기업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나... 싶지만 그래도 롤모델 브랜드로 꼭 삼아야 한다.
우린 그런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카페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아니, 그런 카페를 만드는 게 내 목표다.
마침, 맛있는 빵을 카페에서 팔고 싶은 오너를 만났다.
이 오너는 맛있는 빵을 파는 카페를 만드는 게 간절한 소원인 듯했다. 오랜 꿈이라 했던가? 처음 미팅 때부터 그 분위기가 남달랐다. 나 또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에 임하는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클래식.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이다.
클래식하다.
고전적이며 격과 품위를 갖춘 매력이 있다.
이런 수식어가 어울리는 디자인 방향성을 잡았다. 트렌디하진 않지만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질리지 않는 스타일을 입히고 싶었다. 마치 청바지와 같고, 잘 맞춘 정장 같은 스타일.
빵과도 잘 어울렸다. 심지어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커피도 볶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요즘은 워낙 취향이 다양해졌다.
그래서 창업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과거엔 창업자를 위한 다양한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작은 디자인 하나도 선물일 수 있었다. 위 사진에서처럼... 커스텀 문손잡이 하나만 맞춰도 의미 있는 선물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조차 어렵다. 이젠 창업자의 취향을 현실로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항상 고민이다. 창업자의 취향이 묻어있는 공간이어야 할까...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해야 할까?
정답은 없을 수 있다.
창업자의 취향도 매력적이라면 소비자들에게 매력일 것이고, 소비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면 이 또한 매력적인 공간이다. 단지 내 경험상 창업자의 취향이 매력적이라면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첫 창업에는 과감히 자신의 취향을 잠시 접으라고 조언한다.
그게 맞다.
나도 처음엔 내 취향대로 만들었는데,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작업은 공장 제작 가구와 현장 제작 가구를 비슷한 톤으로 맞추는 일이었다. 보통은 공장 제작 가구와 현장 제작 가구는 톤이 다르다. 사용한 자재가 다르고, 작업한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설프게 다를 바 정말 다르게 일부러 만드는 게 보통이다. (난 그랬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그런 결과를 원치 않았다. 한 톤으로 맞추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작전을 펼쳤다. 한 곳에서 자재를 수급해 공장과 현장에 배송을 시켰다. 그리고 공장에서 제작한 가구는 최종 마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으로 전부 배송시켰고, 마무리는 현장에서 했다.
사실 굉장히 번거로운 작업이다. 이런 귀찮은 작업을 협조하는 공장도 별로 없거니와 현장에서도 번거로울 수 있다. 작은 가구도 아니고, 몇 사람이 한 번에 옮겨야 하는 가구라면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내 팀들은 내 소원을 들어줬다.
번거로운 작업도 즐겁게 작업해 주었고, 그 덕분에 현장에서는 한 톤으로 분위기를 맞출 수 있었다.
멀리서 쳐다보는 카페 bar 전경은... 만족스러웠다.
출입구는 자재의 사용은 전혀 다르게 했다.
차가운 금속이지만 우드에서 사용한 스타일과 같은 스타일로 장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출입구는 다르게 하고 싶은 의도는 있었다. 만약 같은 우드로 했다면... 왠지 공간이 지루했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매력적인 이유는 전혀 다른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처럼 주 출입구만큼은 공간의 지배적인 분위기에서 조금은 벗어난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결과도 만족스럽고,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잘 만들어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프로젝트에 큰 애정을 갖지 마라고... 오해 없길 애쓰지 말라는 말하곤 다르다.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내 것이 아니기에...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나와 비슷한 개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같은 소리를 한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나 보다.
카페 오너들은 서운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오너도 자신의 카페에 애착을 가져야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여기 빵은 정말 맛있었던 것 같다.
오너 자체의 기술력도 좋았지만, 이 프로젝트를 기회로 만난 파티셰의 솜씨가 굉장히 좋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촉촉하고 맛있는 빵은 처음 먹어봤을 정도로...
이 프로젝트 이후로 제빵이라는 분야게 큰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 베이커리카페 '데일리박스'
▶️ 약 70평형
▶️ 설계기간 4주 / 시공기간 7주
▶️ 공간 전체 설계 / 냉난방기 / 간판 및 사인물 / 제빵실 / 장비 구성 및 납품 / 음료 메뉴 교육 / 카페 브랜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