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역에서 노량진역 방향으로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특색이라곤 딱히 없는 구간이라고 해야 할까? 학원 건물, 지하철역, 아파트, 상가, 버스정류장, 공원. 아무리 둘러봐도 뭔가 심심하다.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나마 노량진역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뭐라도 나온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을까?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습관적으로 질문을 던져 본다.
무작정 훑어봐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아 대방동과 노량진동에 대해 설명되어 있는 자료들을 뒤적여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묻혀 있었다. 현재의 모습만 바라보면 평화롭기만 한 지역이지만 과거에 군부대가 있었고 소규모의 철공소와 공장들이 있던 동네였다. 어딘가로 이전을 하고, 사라지게 되면서 비어버린 땅은 푸른 녹지공간이 형성되었고, 새로운 성격을 가진 건물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니 알 수가 없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례 1) 녹지화
도시 안에서의 녹지공간은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 아무것도 없는 혹은 무언가가 있었다가 사라진 빈 공간을 대체하거나 녹지의 필요성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생겨난 측면으로써의 성격이 강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아파트 단지가 새로 조성되었을 때 주변으로 의도적으로 녹지공간을 만든다. 혹은 도로나 길을 정비하고 나서 빈 공간을 채우거나 철도길이었다가 폐선이 되면서 녹지공간으로 조성되는 사례들도 있다. 이렇게 하나둘씩 들여다보면 생각 외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곳들이 많다.
" 현재 CTS 반대편 정도에서부터는 공업소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 공업소들이 철거되어 현재는 녹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방역에서 노량진역으로 향하는 길목에 CTS 방송국 건물이 있다. 그 건너편 길은 현재 녹지로 뒤덮여 길게 이어진 길로 되어있는데, 제보자에 의하면 공업소들이 줄지어 있었다고 한다. 왜 이곳에 있던 작은 공업소들이 사라지고 녹지로 사용되고 있을까?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공장, 노량진 수산시장과 같은 새로운 장소들도 생겨났다. 녹지와 새로운 장소. 이로써 공간이 재배치되었다.
사례 2) 미군부대 캠프 그레이 -> 스페이스 산림
"스페이스 산림". 대방역 맞은편, 신축건물이 생겼다. 일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 가족의 일과 삶의 균형을 지원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과거 이곳은 미군부대 캠프 그레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군과 관련된 시설들이 있었다.(현재는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고, 일부가 남아 있다. )
"1952년 이곳에 처음 들어선 '캠프 그레이'는 표면상 물류기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미군 '502 군사정보단'의 비밀스러운 첩보활동 공간이었다. '502 군사정보단'에서 일한 마이클 리가 쓴 < CIA 요원 마이클 리 >(조갑제닷컴, 2015)에 따르면, 해당 부대는 "A(알파), B(브라보), C(찰리), 3개 중대로 편성"돼 있었는데, 마이클 리가 속해 있던 "알파 중대는 한미 합동으로 북한 귀순병, 귀순 민간인, 자수간첩, 체포 간첩, 송환 어부들을 상대로 심문 작업을 했"고, "브라보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방첩활동을 했으며, 찰리 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대북공작 활동을 주 임무로 했"다고 한다."
캠프 그레이가 이전한 이후, 빈 땅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2007년 주한민 군으로부터 반환된 땅은 2011년 시설물 철거와 토양오염 정화작업을 마쳤다. 이후 주말농장의 텃밭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잠시였다. 2014년 미군기지 이전부지 활용에 대한 여러 가지 설문조사,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 정책토론회 및 박람회, 시민참여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가족 복합공간'을 조성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2020년 완공된 '스페이스 산림'이다.
혹여나 해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미군부대 부지였다는 것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흔적 하나 남겨져 있지 않다.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그땐, '왜 이런 공간에 텃밭이 있지?'라고 질문이라도 던져 볼 수 있는 빌미가 있었다. 새롭게 조성된 공간과 더불어 연계된 길과 주변부도 정비가 되었다. 그 결과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던 지하보도 입구가 건물 내부로 들어가 버렸다.
도시는 시대의 흐름과 동시에 어떤 목적성으로 인한 도시 조직의 형성과 사라짐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과정에서 공간이 재배치되고 성격이 변화하면서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 맥락에서 해석해보고 추적해보며 현시대 도시는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평소 주변에 어떠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노량진 극장
"사육신묘를 돌아 차를 세웠을 때 소방서가 그대로 있는 걸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현대식 유리 건물로 다시 지어졌고 빨간 소방차 하나 볼 수 없었지만 소방서 자리는 그대로였다. 뒤돌아 보니 극장은 간데없이 사라졌다". p221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 김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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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허구한 날 빨간 줄무늬 러닝셔츠 셔츠만 입고 다녀서 내 친구 유신이는 별명이 '빨간 러닝셔츠'이고 머리통이 약간 기울어진 경구는 그냥 '짱구'라고 불렀다. 화창한 어느 날 노량진역 앞에 극장이 지어졌다 양철 슬래브가 기왓장 보다 더 미끈하게 한옥 지붕 선을 본떠 올렸는데 그 선이 볼수록 크고 멋있었다 개업 축하 만국기가 빨랫줄 같은 긴 줄에 걸려 나풀거리는데 아는 국기라고는 태극기 성조기 일장기뿐이었다. 샛강江 하나 사이에 둔 여의도 비행장에서는 수시로 비행기가 뜨는데 빨간 러닝셔츠는 '노량진 극장 개관 축하 비행' 때문이라고 바락바락 우겨 그럼 내 중 뜨던 비행기는 무엇을 경축하려고 떴느냐 핏대 높여 싸웠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극장이지만 아직도 나는 노량진 극장에 다니고 있다 그 터에 자리한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 바닥 아래에는 그 고귀한 스크린 속의 수많은 영혼들이 그때 그대로 연기하고 있는 듯하다"
<노량진 극장, 박산>님의 블로그에서
극장이라니. 극장이 있을법한 위치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이는데 이들의 문장에선 또렷하게 <노량진 극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노량진 극장>의 저자 박산 시인의 말에 따르면 맥도널드 햄버거 자리가 극장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상도동 집 근처, 지금은 없어진 강남극장이나 노량진 극장에서 매주 1~2차례씩 영화를 봐왔다. 알랭 들롱-시몬 시뇨레가 출연한 미망인 , 더스틴 호프만의 스트로 독 졸업 , 샘 페킨파 감독의 게 터 웨이 나 한국영화 바보들의 행진 등이 그 당시에 본 영화들. 극장 앞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란 팻말도 워낙 단골인 그에게는 소용이 없었고, 이렇게 해서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4백여 편을 섭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영상 이벤트 쪽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영화사 신씨네 대표 신철 씨, MBC 구성작가 박경덕 씨 등과 함께 IF (image future)라는 뉴미디어 연구모임에 참여했다.
[내용 출처: 영화 전문점 키노 /이재순 씨(마니아),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3/09/22/1993092271601.html ]
사라져서 존재 여부조차 알 순 없지만 이따금씩 남아 있는 언론사의 기사자료와 누군가의 기억이 분명히 존재하였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노량진 극장은 공간의 재배치의 맥락에서 읽고자 하기보다는 노량진이라고 떠올렸을 때 가장 큰 이미지를 차지하는 <학원가> 말고도 다른 공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분명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았으며, 현재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의 이야기보다 <고시촌, 학원가, 고시생>이라는 키워드가 우선시 되는 것이 좀 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대표 이미지는 맞지만, 노량진 = 고시촌이라는 법칙은 이제 그만 강조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노량진 학원가가 조성되기 이전부터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 사람들이 살던 곳이 사라지면서 노량진 수산시장이 생겼다.(고시촌과 연결된 상도동으로 이어지는 길도 거대한 거주지역이다.) 강남 개발정책의 일환으로 강북에 있던 학원들이 이전하면 학원가가 형성되었다. 그 이전에는 크고 작은 공업소들이 위치해있었고, 대방역에서부터 이어지는 군사 지역으로부터 연계성도 아예 없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노량진역은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경인선의 시발점이었고, 현재는 노량진역 앞이 광장이 없어 보이지만, 과거만 해도 광장의 기능을 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대, 중앙대 학생들이 도보를 하면서 시위를 벌인 적도 있고, 실미도 사건의 마지막 종착지도 바로 인근에 있는 유한양행 건물 앞이었다. 좁은 범위의 노량진만 보기에는 살아 있는 근, 현대사의 이야기들이 곳곳에 묻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질문을 더하자면 왜, 동작경찰서가 노량진역 바로 앞에 위치하게 되었는지도 물음을 던져 볼만 하다. 광장과 연결고리가 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