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아 Feb 23. 2022

#17. 유튜브 세계에서 선비로 살아남기란...

<보통유튜버 이야기> Chapter 2. 유튜버 이야기

해피새아다움 //



일주일에 한개씩, 100편 이상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동안 나는 꾸준히 고민했다. 


"나만의 색깔은 뭐지? 나다운 건 대체 뭐지?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란 건 뭐지?"


시시각각 빠르게 바뀌는 유튜브 세상 속에서 정신없이 흘러가다보면, 내가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던 이유도, 어떤 작은 목표의식 같은 것도 잊어버린 채 그저 시간만 지나갈 것 같았다. 또다시, 다른 사람이 나를 선택해주기만을 기다리는 내가 되어,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이놈의 생각들 탓에, 조금은 가볍게 접근해야하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나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10분짜리 영상을 만들면서 <꼭 지켜야 하는 신념> 같은 것도 있었다. 심지어 유료광고 제안이 들어와도 이 신념을 핑계로 거절하기도 했다. 간혹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 같은 것을 통해, 채널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때면 언제나 '어그로(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받았지만, 변할 수가 없었다. 어떤 게 좀더 쉬운 길인지 알면서도.... 






종종 친구들과 놀다보면 이런 일이 생길 때가 있다. 가벼운 장난으로 한 사람을 곤란하게 하고, 그걸 보면서 모두가 웃는 상황. 함께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는 별 일 아닌 것으로 지나갈 수 있지만, 치부가 들춰졌거나 놀림 받은 사람은 그 날의 그 자리가 불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런 일 없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재미를 위해 누구 하나 눈살 찌푸려질만한 영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캣콜링(여행지에서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휘파람을 부는 일종의 성희롱), 인종차별, 최악의 숙소 문제, 여행에서 맞이한 최악의 경험들 같은 소재는 대부분 잘 팔린다. 사람의 호기심이라는 건 '대체 이건 무슨 일인가' 싶을 때 발동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여행의 순간들을 소중하게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영상이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뿌듯한 영상이었으면 했다. 누군가 한국을 여행하면서 '무표정하고 성격 급한 사람들', '매운 것만 먹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영상을 만들면 우리가 보기엔 조금 아쉽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좋은 것,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괜히 조롱하는 느낌도 들고. 


나는 여행 유튜버로서, 내가 다녀왔던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영상을 보았을 때 "나의 동네, 나의 나라를 이렇게 담아주었구나" 하고 행복해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비록 조금 재미가 없을 지라도. 




그리고 거기에 하나를 더해, 혹시 가능하다면 맑은 콘텐츠로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원했다. '맑은 콘텐츠로 세상을 바꾼다.' 모교의 모토 중 한 문장인데, 역시나 신념처럼 생각하고 있는 문장이다. 미디어가 가지는 힘을 나의 이익뿐만 아니라 선한 곳에도 돌려보자는 것. 


여행을 하는 내가 찾은 방법은 남을 위한 여행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큰 힘을 가진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졌다. 필리핀으로 떠났다. 그러나 망고를 사들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후원하고 있던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를 통해, 내가 후원하고 있는 아동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었다. 


휴가를 위한 여행과는 사뭇 달랐다. 도심 속 큼직한 도로에서 안쪽으로 딱 두 블록, 이런 곳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 한 빈민촌을 찾았다. 마닐라에 가면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커다란 쇼핑몰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데 엉켜 살고 있었다. 흔히 상상하는, 유리창이 없는 집, 천막집과는 차원이 다른 집도 있었다. 3-4층짜리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에, 건물 외벽을 양쪽에 두고 나무판자로 천장과 바닥만 만들어 그곳을 집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2층, 3층으로 이어지는 집. 주소지도 없이 남의 건물 사이에 끼워진 그 곳에서 3대째 살고 있다는 가족이 여럿. 거기에서도 아이들은 마냥 맑고 수줍게 웃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그 웃음들을 열심히 기록해 영상으로 만들었다. 


영상에는 그런 힘이 있다. 직접 가보지 못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히 보여줄 수 있는 힘. 이전까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다며, 함께 좋은 일을 시작했다는 댓글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 작고 작은 나의 힘이지만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른다. 


같은 시간, 바닷가 리조트에서 휴양을 하며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도 있었고, 유튜브 조회수가 보장되는 인기 여행지에 다녀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나다운, 나답고 싶은 일에 도전해본 순간이었다. 





여전히 마냥 선비같은 나는, 어쩌면 이전보다 힘이 더 빠졌다. 필리핀에 찾아가던 그 열정이 코로나를 맞아 꽤나 식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모습을 나답다고 말하고 싶은지를 고민한다. 앞으로도 고민에 잠겨 숱한 밤을 지새울 것이고, 좋다고 여기는 일들에 꾸준히 도전할 것이다. 해피새아다운 삶을 위해 : )




Let's make an ugly face! @Philippines. 2018.


이전 22화 #16. 오늘은 마감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