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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Apr 21. 2018

홀로 하는 여행은 치명적이다

홀로 여행한다는 것

홀로 하는 여행은 부담스럽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는 타인과 의견 공유가 아닌 내적 갈등을 통해 로 결정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 했을 때 오롯이 혼자 겪어야 하기에 외롭고 두렵기도 하다. 게다가 평소 혼밥을 못하는 성격이라면 당장 끼니를 해결할 일 막연한 사소해 보이지만 결고 사소하지 않은 일을 겪어야 하다.


그와 달리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심적으로 부담이 적다. 낯설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쳐도 의지 할 수 있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지는 각자의 성격, 취향,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배려와 이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일정을 선택해야 한다면 상대 나의 생각을 절충해야 한다. 항상 좋은 결과 있는 것은 아니므로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한쪽 주장이 너무 강하면 유대의 끈이 끊어질 수 있다. 서로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엉켜버리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행한 여행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주로 홀로 여행한다. 자주 있는 일이다 보니 그런 나를 사람들은 혼자일 때 느끼는 두려움이나 긴장감이 없을 거라 생각다. 그 생각은 오산이다. 혼자이기에 드는  불안은 늘 변함이 없다. 특히 홀로 앉아야 할 좌석 번호가 적힌 비행기나 기차, 버스표를 받는 순간 걱정은 최고조를 이룬다. 함께가 아닌 나 한 사람 만을 위한 번호는 의지할 곳 없는 혼자라는 현실을 실감 나게 한다. 나로부터 시작해 나 스스로 끝맺어야 하는 여정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긍정적인 반전도 있는데 지정된 좌석에 홀로 앉아 있다 보면 묘한 설렘을 느낀다. 이제부터 당신은 혼자이니 무엇에도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떠나보라는 격려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늘 고민한다. 다양한 관계,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는 번뇌는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언제든 찾아와, 의심, 원망, 타협, 체념, 포기 같은 감정들 사이에서 집착하고 갈등하고 방황하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를 원망한들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민 해결주체는 결국 자신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계들이 얽혀 있다 해도 고민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해결하기 위해 싸워야 할 대상도 자신이다. 결국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므로 의지 할 곳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외롭고 힘들다.


홀로 하는 여행은 이중적이다. 외롭고 힘든데 외롭고 힘든 마음도 치유해 준다. 혼자여서 외로울 것인데 외로운 마음을 치유해 준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치유란 힘들게 하는 원인을 지워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내면의 투쟁을 중재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이때 중재는 법관이 판결을 내리듯 정해진 시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다가온다. 너른 들판을 걷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곡선으로 굽이친 길이 보일 때나, 때를 놓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구름 사이로 나오는 빛에 매료되어 허기를 잊을 때, 깜깜한 밤 달빛을 의지해 걷다 막다른 길을 만나 되돌아갈 때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에 다가온다. 이때 느끼는 기쁨은 스스로행동과 선택으로 인해 느끼는 기쁨이기에 자부심을 갖게 한다. 또한 홀로 이겨낸 두려움은 자신감으로 바뀌어 힘들었던 마음을 묽게 해 준다.


그러나 변화된 마음을 금세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변한 것을 아는 것은 시간이 흐른 후, 이전과는 달리 고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고민을 고민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자신도 모르게 고민이 멀어진 사실을 깨닫고 나면 비로소 자신이 고민했던 이유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발견된 이유들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비겁하고 당당하지 못했거나 관대하지 못했던 마음, 고집과 아집으로 배려하지 못했던 마음, 방향도 모른 채 막연한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릴 뿐 한 발짝 물러서 세상을 보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 바라보기 두려 내 안의 나를 알게 됨으로써 힘을 얻는 것이다. 힘의 강도는 내가 얼마나 먼 곳으로 왔는지, 얼마나 유명한 곳으로 왔는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많은 화려한 도시인지는 상관이 없다. 그보단 홀로 계획하 판단하고 행동한 결과로 마음에 새겨진 힘만큼 강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홀로 하는 여행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떠난다면 홀로 세상과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숨어있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여유 있게 대처하는 자신에 놀라며 스스로를 대견해하거나, 복잡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지 않는 결단성 있는 행동, 그와 달리 선택의 기로에서 대담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 이전엔 알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따르고, 이끌어야 하는 일상을 숙명처럼 사는 삶을 떠나, 오로지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할 때 발견되는 마음이다. 처음이라면 홀로 여행하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지만 숨어있던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것이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값지고 고귀한 일이다. 홀로 하는 여행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과 갈등하고 싸우며 자신을 알아가게 한다.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던 고민을 이겨낼 힘도 얻는다. 내가 의지할 마지막 근원인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얻은 것이기에 요요 현상도 없다. 이처럼 매력 가득한 홀로 하는 여행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물론 한번 시작하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치명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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