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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Mar 11. 2018

갖고 가지 못할 짐, 갇고 오지 못할 짐

짐을 싼다는 것

여행 짐을 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모든 것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과, 홀가분한 여행이 되기 위해 최소한 무게로 꾸려야 한다는 상반된 조건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는 바지 한 장 티셔츠 한 장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짐을 쌀 때마다 비우다 채우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나에게 짐 싸기는 경험으로 축적된 익숙함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드디어 여행날이 다가와 어찌어찌 짐을 꾸려 떠나 짐에 대한 생각은 계속된다. 언제 도착할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거나 비행기 연착에 불평을 하다가도 빠트린 짐은 없는지 필요 없는 짐 없는지 생각한다. 그러다 결국 가는 비에 몸이 젖 모든 상황을 체념하듯 짐에 대한 염려와 걱정은 포기와 체념감정에 이르게 된다. 여행이 시작된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사실에 집착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큰 낭비이며, 집을 떠나온 이상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온다 해도 갖고 있는 짐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짐에 대한 걱정이 일단락되면 짐은 이전만큼 주목받지 못한다. 대신 짐은 여행 흔적을 하나씩 간직한다. 열차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밥을 먹다 바지자락에 남긴 음식 자국이나, 가도 가도 끝이 없 대지의 검은흙이 묻어있는 운동화와 이국의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흘렸던 땀이 배어있는 티셔츠 같은 것들이다. 반면 혹시나 하며 넣었던 여벌의 옷과 한 번도 펴보지 못한 우산처럼 아무 역할 못하는 짐도 있다.  짐들은 여행 중 일어날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한 불안의 소산들이다. 그것들은 여행이 끝나고 발견곤 하는데, 그때마다 겪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을 왜 그리 염려했는지 부끄러워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짐은 여행이 끝나지 않는 한 어디서든 함다는 것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숙소에서도, 버스를 타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는 순간에도, 깜깜한 밤 길을 잃었을 때도 짐은 늘 함께 다. 모든 상황에서 짐은 늘 곁에  내 여행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가 된다. 그 결과 짐은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짐은 언젠가는 버리거나 정리해야 할 것이지만, 여행 흔적이 남아있는 짐은 버려야 할 짐이 아닌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간직해야 할 짐인 것이다. 어딘가에 머물다 떠날 때 아쉽거나 슬프다면 그곳에 애착이 있다는 것이다. 노랑보다 더 노란 꽃들이 피어있는 벌판에서 맞았던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왔던 신선한 공기 냄새처럼 소소하지만 기분 좋 감정 같은 것들이다. 짐은 여행자도 모르게 여행 중 애착했던 대상들을 생각나도록 흔적들을 촘촘히 간직한. 집으로 돌아와 배낭 안에 있는 짐들을 하나하나 꺼낼 때마다 그리움이 깊어이유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짐은 늘 최대 준비라는 안전한 묵직함과 최소 부피라는 가벼움의 경계에서 여행자를 방황하게 한다. 그러나 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답을 찾으려 애 필요는 없다. 어디로 떠나든 어느 상황이든 내가 꾸린 짐 최선이다. 비록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짐이라 해도 그 짐 또한 간직해야 할 그리움 묻어, 여행의 이유인 마음의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곳을 여행하든 갖고 가지 못할 짐도, 갇고 오지 못할 짐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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