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감정

프롤로그 - 여행은 우리에게 생각지 못한 감정을 준다.

by Ollein

"일상이 아닌 낯선 곳에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여행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답 속에는 "여유"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목적지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짐을 꾸려 떠난 여행의 현실은 달랐다. 여유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 일상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했고 아침은 허둥지둥 먹거나 건너뛰기 일수였다. 누군가 보았으니 보아야 했고 먹었으니 맛보아야 했다. 앞서간 사람들이 보고 경험한 것을 확인하고 그곳에 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니 여유는 고사하고 여행은 의무가 되어갔다. 피곤함과 허무함이 몰려왔다. 결국 빛없는 세상에 갇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무기력한 사람처럼 떠날 수 없었다.


어느 해 봄. 우내 무기력했던 나는 꾸물꾸물 올라오는 아지랑이 온기에 힘을 얻어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세상으로 나와 길을 걸었다. 길 위에는 마을과 산과 바다가 있었다. 들판에 핀 꽃은 향기를 주었고 나무는 그늘을 드리워 쉼터를 만들어 주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늘 한 자리에 있던 것들은 누군가 보았으니 보아야 하거나, 누군가에게 자랑할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너무 평범해 관심 없이 지나쳐 금세 잊어버릴 것들이었다.


걷는 여행은 고생스러웠다. 발목이 시큰 거리고 어깨가 결리고 등이 아팠다. 인적 없는 곳에선 식사를 거르거나 목을 축일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길 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 만큼 멋진 것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여러 날이 지나도 길 위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이 생각났다. 횡단보도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세수를 하다가도 퇴근하는 차 안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도 생각났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어 잠깐의 후유증이라 여기며 금세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억을 따라 차오르는 여운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되어갔다. 그립다는 것은 보고 싶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은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형태도 냄새도 자취도 없어 오직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은 여행의 감정이었다.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한 그루 나무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감정을 느낀다. 우리 감정은 늘 똑같은 일상처럼 단순해지고 메말라 간다. 위험을 느낀 사람들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에 생기를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다행히 감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어서 낯선 곳에 도착면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기쁨, 놀라움, 후회, 외로움, 망설임. 그 감정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잊을 수가 없다. 감정은 여행 이야기와 섞여 자신 고유의 감정이 된다. 같은 향을 내는 향수라도 시간이 지나며 살갗의 냄새와 섞여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향을 내는 것처럼,


여행은 우리에게 다양한 감정을 준다. 여행의 감정은 의도된 것이 아닌 우리 본연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롯이 내 것인 감정들 하나하나 모으면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 주연은 나의 마음이며 조연은 여행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다. 조연은 그 수가 꽤 많지만 대단하지는 않다. 길 위에 있는 돌멩이, 먼지에 덮인 풀, 하늘을 나는 새 처럼 지극히 일상 같은 것들이다.


신은 우리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감정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능력도 주었다. 감정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주연이 되어 여행을 떠나고 수많은 조연들을 만나 감정을 쌓는다. 하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호빵처럼 자신 이야기에 담긴 따끈따끈한 감정을 가슴에 품는다. 우리의 감정이 세상 풍파에 점점 힘을 잃어갈 때 우리는 잃어버린 감정들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수많은 조연들이 세상에 있는 한 여행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친 우리가 힘을 얻기 위해 세상 어딘가에 꽁꽁 숨어 있는 나만의 감정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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