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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Jun 07. 2018

그곳이 어디였는지, 지금도 나는 모른다

길을 잃는다는 것

육중한 무언가가 하늘로 치솟았다. 너무 한적하여 경계하는 것을 망각하고 있던 꿩은 내 발소리에 놀라 무겁고 굼뜬 몸으로 풀 숲을 헤치고 날아올랐다. 덩달아 놀란 나는 그제야 방향을 알려주는 표식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휴대폰을 켜고 지도를 보았다. 화살표가 실처럼 가느다란 길 위에서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상 모든 길은 어디든 통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믿기엔 너무 막연했다. 나는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길 위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목표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나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았고 목표로 향하는 길이 아니면 외면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은 강박이 되었다. 마음 건조해지고 푸석해져 부스럼이 일어났다. 부스럼은 마음을 간질였고 가려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목표만을 쫓는 삶에서 잠시 멀어져야 했다. 그래서 길을 걸었다. 그런데 길을 잃고 보니 또다시 목표로 가기 위해 길을 찾아야 했다. 한숨이 나왔다. 목표만 강요하는 삶을 피해 온 여행에서 또다시 목표 안에 나를 가두고 있니.


길을 되돌아 표식이 있는 곳까지 가면 잃어버린 길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계속 걸었다. 목표를 버리고 싶었다. 따가운 볕에 목덜미 빨 열기가 오를 즈음 커다란 팽나무가 보였다. 고단한 삶을 보낸 듯 마디마디 휘어진 가지들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 나무를 보 제 마음대로 뻗은 가지들 큰 곡선으로 경계를 이루어 뭉게구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우주에서 본 지구 모습이 생각났다. 바다와 땅과 초원이 있는 지구는 푸르고 싱그러웠다. 나무는 지구 어딘가 있는 푸르름 중 하나였다.


나무 아래바람이 불었다. 히 차갑거나 오랫동안 열기를 남겨 놓지 않는 온화한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이마에 송글 거리던 땀이 가시자 고요가 찾아왔다. 불안 사라졌다. 언제 이런 바람을 맞아 봤을까? 언제 이런 고요 속에 나를 두어 봤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나무 아래에서 쉬는 동안 시간도 목적도 사라졌다. 남아있 계획도 걱정되지 않았다. 가끔은 길을 잃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잃어버린 순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해 보장받고, 보장받을 수 있 모든 것이 사라진다. 현재까지 과정은 멈추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당황한 사람들은 대안을 찾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지만 쉽게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이 급다. 머릿속에는 잃어버린 것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새로운 방안을 마련한다 해도 미숙하고 어설프다. 잃어버린 것이 자꾸만 생각나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얻는 것은 좋은 것이고 잃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평등하게 고르고 둥근 지구처럼 얻는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잃는 것을 피하려 한다. 무언가를 얻는다는 기대 그 사실을 망각하 한다. 우리는 늘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야 하지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 앞에선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길을 잃다. 계획했던 여행의 결과 잃어버렸다. 성공적으로 계획을 수행해 얻으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면 틀에 맞춘 여행의 결과 뿐이다. 우연히 나는 길을 잃었고 목표 속에서 허우적 대는 나를 발견했다. 저항했고 예정에 없던 길을 걸으며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것은 잠재되어 있던 여행의 이유라는 것을. 그 결과 잊지 못할 휴식도 얻게 되었으니.


나무를 떠날 때 나는 다음을 기약할 증표를 남기거나 간직하지 않았다. 그날 내가 걸었던 길은 잃어버려야 할 길이었다. 목표가 되지 말아야 할 . 그래야만 각박한 세상을 피해 온 어느 길 잃은 여행자가 둥근 나무 아래에서 바람과 싱그러움과 고요를 만나 평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모른다. 나무가 있는 곳, 그곳이 어디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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