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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Oct 21. 2023

시월의 어느 날 금요일 오후 4시가 되기 전

사랑의 마음이 담긴 노래를 들으며

알림이 왔다. 브런치 응모 마감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알림이었다. 누군가는 마감전까지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고치며 정리할 것이다. 올해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오늘은 무엇을 써야 하나였다. 그러나 글은 써지지 않았다.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회사일로 바빠서였다고 하고 싶지만 이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핑계라는 것을 안다. 왜 글이 써지지 않는지 생각했다.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이다. 열정이 사라진 것도 흥미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글 쓰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마음이 가지런하지 않고 여유가 없다. 여유는 시간의 여유가 아니다. 마음이 품는 여유다. 매일이 분주하고 복잡하다. 어딘가를 항해 달리고 있지만 목적지를 모르고 달리는 사람 같다. 현재만 중요하고 먼 곳을 바라보지 못해 조바심만 난다.


얼마 전 문득 어느 중국 여자 가수가 부른 노래가 듣고 싶었다. 전에 어디선가 잠깐 멜로디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짧았지만 여운이 애틋했다. 가수이름도 노래 제목도 모른다. 이리저리 인터넷을 찾았다. 노래는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이었다. 노래 제목을 한글로 번역하면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라는 사랑 노래였다. 왜 이 노래가 생각났을까...


금요일 오후 4시가 되기 전. 사무실 공기는 탁했다. 잠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불었다. 머리가 날렸다. 옷깃을 여몄다. 쓸쓸한 냄새가 났다. 가을 냄새였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겪는 일이 있다. 어~어 하다가 가을을 놓치곤 한다. 올해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가을은 바람과 쓸쓸한 냄새를 몰고 왔다. 반가웠다. 침착해 보려 했지만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반갑고 좋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며칠 전 찾아본 노래가 생각났다. '월량대표아적심'.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애틋하고 두근거린다. 마음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하늘을 보았다. 나를 하늘 끝까지 끌어올릴 듯 높고 파랗다. 구름이 흐른다. 노래를 듣는 내내 소곤소곤 말하는 연인처럼 마음이 설렌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가슴이 저미는 느낌. 오랜만이다. 일은 잠시 접어두어야겠다. 아무래도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가을이다. 가을은 내 지친 마음을 치유해 준다. 누군가는 스산한 바람이 싫겠지만 나는 더없이 좋다. 바람을 타고 온 가을 냄새가 온몸에 구름처럼 퍼져 나를 깨워 준다. 올 가을에는 애틋한 사랑 노래도 함께 한다. 일만 하게 하는 마취제를 맞은 마음의 마비를 풀어준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어딘가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끝이라 생각했던 곳은 끝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오늘이 마지막 일거라 기대하며 온 힘을 다해 애썼다. 하지만 또 나아가야 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 체.


가을이 나의 몸을 덮는다. 나는 실핏줄 가득한 눈의 긴장을 풀고 나도 알지 못한 몸에 고인 힘을 풀어헤친다. 그러고는 주먹을 세게 쥐지 않아도 이를 꽉 다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제는 가을바람에 흐르는 구름처럼 가을 속으로 흘러들어 가면 된다. 현실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은 가을바람이 주는 냄새와 맨 살갗에 닿는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사랑의 마음이 담긴 노래를 들으며. 시월의 어느 날 금요일 오후 4시가 되기 전. 나는 가을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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