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하수, 중수, 고수?
눈은 얼굴에 있으니, 팔의 끝자락에 있는 손보다 높은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고수(高手)들은 이 당연함에 저항한다. 고수(高手)는 일반인들보다 높은 손을 갖고 있는 것일까? 눈은 낮은 손보다 높은 손을 더 쉽게 인식한다. 고수는 일반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섬세한 손을 갖췄다. 눈은 높으나 솜씨가 서투르며,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나와 다르다. 당연함을 뛰어넘어 탁월함에 이르렀기에 고수(高手)다. 안목의 탁월함보다 손으로 비유되는 실천의 탁월함을 더 가치있게 여긴 조상의 지혜가 이 사자성어에 담겨있다.
질문에도 고수가 있을까? 있다면 누가 질문의 고수일까? 고수의 질문은 하수나 중수의 질문과 얼마나 다를까? 안고수비(眼高手卑)한 질문술사이기에, 질문의 고수(高手)들의 노하우를 탐하게 된다. 운 좋게도 그동안 많은 질문의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질문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다. 피터드러커의 다섯가지 가장 중요한 질문은 지금도 영리/비영리 기관의 경영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남기고 있다.
Q1.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Q2.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Q3. 고객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Q4. 우리의 결과는 무엇인가?
Q5. 우리의 계획은 무엇인가?
고수의 질문이라고 해서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경영자들에게는 다르다. 이 질문들에 진지하게 답하다보면, 그 특별함을 인식할 수 있다. 드러커의 질문이 경영자들에기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경영자가 고민해야 할 바를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야 할 관점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질문 자체가 특별하기 보다는 특별한 입장에 서 있는 이들에게 적합한 질문을 던졌기에 특별하게 질문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마주하고 답하다보면, 질문에 답하기 전과 질문에 답한 이후의 조직의 변화를 목도할 수 있게 된다. 드러커는 또한 지식근로자들에게 자기자신을 알기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 볼 것을 요구했다.
첫째,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What are my strengths?)
둘째, 나는 어떻게 성과를 올리는가? (How do I perform?)
셋째, 나는 읽는 자인가 듣는 자인가? (Am I a Reader or Listener?)
넷째, 나는 어떻게 배우는가? (How do I learn?)
다섯째, 나는 일을 어울려서 하는 편인가, 혼자 일하는 스타일인가? (Do I work well with people, or am I aloner?)
여섯째,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What are my values?)
일곱째,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Where do I belong?)
질문 하나 하나에 온전히 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드러커의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 또한 내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고, 전문가로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질문이 조직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고, 리더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고수의 질문에 숨겨져 있는 특별함은 무엇일까? 하수의 질문과 비교해서 바라보면, 그 다름을 더 깊이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를 망치는 길이다. 그 사람의 가능성이 이미 발현되었다고 믿고 그를 대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
_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하수는 자신을 위해 묻는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묻는다. '이렇게 하는게 맞지요?'와 같이 상대의 인정과 평가를 바라고 묻는다. 타인의 의견은 오직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중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최소한 자신이 모르는 것을 타인이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우려는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중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와 같이 상대의 의견에 대해 열린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긴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고수는 자신을 위해 묻기 보다는 상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묻는다. 자신의 앎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알아야 할 것들을 깨닫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질문을 활용할 뿐이다.
하수의 질문은 표면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에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리지 못한다. 다쳐서 귀가한 자녀에게 '어디서 넘어졌니?'를 물어보는 질문은 자녀에게 도움이 되기 보다는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질문이다.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이 아프겠다. 괜찮니?'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호기심보다는 상대를 아낄 때 물을 수 있는 질문이다. '내가 뭘 도와줄까?'라고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상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 사랑하는 능력이 커질수록 질문의 수준도 하수에서 고수로 높아진다.
Q1. 당신의 질문엔 상대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는가?
하수는 지금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을 묻는다. 결과는 드러나있기에, 집중하면 누구라도 눈으로 볼 수 있다. '이번달 매출은 얼마인가요?'라는 질문은 장부를 뒤적이면 누구라도 답할 수 있다. 결과를 만들어 낸 과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시적으로만 볼 수 있다. '어떻게 이처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나요?'라고 물어봐 주어야, 상대가 성공의 과정을 다시 인식할 수 있다. 과정을 돌아보면, 과정을 반복하거나 개선해서 결과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고수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의도'까지 묻는다. 왜 그런 일을 시작했는지, 내면의 필요와 욕구, 즉 동기를 물어보고 살펴보게 한다. 의도가 행동을 낳고, 행동이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결과는 쉽게 보이지만, 의도는 물어봐주기 전까지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어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하수는 정해진 답을 찾기 위해 묻는다. 정답을 맞추면 만족하고 묻기를 그만두는 것이 하수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파악해야, 다시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거나,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수가 "정답은 뭔가요?"라고 묻는다면, 고수가 될 수록 "만약 ~~하면,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와 같은 인과 관계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묻는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면, 어떤 원인 때문인지 묻고 탐구해야 중력의 존재와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원인과 결과를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과관계 속에 숨어있는 다른 원인이나 전제까지 집요하게 탐구하게 되면, 인식은 더욱 확장된다.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점수를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하는 힘' 자체를 키워주는 것이 고수다. 고수의 질문은 상대가 지혜롭게 될 수 있도록 돕는다.
Q2. 당신의 질문은 상대를 더욱
지혜롭게 하는가?
하수는 상대를 하수로 대하고 묻는다. 하수는 상대를 하수처럼 대하기에 스스로 하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낮은 차원의 질문에서 훌륭한 답변이 나오기는 어렵다. 자신의 한계가 질문의 한계가 되곤한다. 하수는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여 물으며, 상대도 자신처럼 자기 이익에 집착할 것이라 가정하고 묻는다. 하수의 질문은 상대와 자신 모두에게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중수는 상대에게 도움을 주려고 물으나,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함을 떨치지 못한채 물으며, 결국 자기 욕심만 채우는 것에 그치게 되기 쉽다. 중수는 상대를 위하려는 선한 의도를 품고 있으나,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부족하기에, 효과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곤 한다. 어찌보면 뿌리깊은 오만함으로 하수보다 더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잘난 사람 옆에 있으면, 자연스레 위축되는 것처럼 중수의 존재들은 하수에게 독이 되기 쉽다. 다행인 것은 하수는 고수를 이해하긴 어렵지만, 중수는 고수를 알아차릴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겸손한 중수가 오만한 중수를 극복하는 단계다. 겸손한 중수가 되어야, 비로소 모든 존재에게 배울 수 있는 그릇이 된다.
고수는 하수 안에 잠든 고수를 볼 수 있기에, 남들이 하수라고 업신여기는 이들에게도 존귀하게 대한다. 그리고 하수의 존재로 인하여 고수가 쓰임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하수에게 더 큰 고마움을 느낀다. 고수에겐 하수가 없다. 아직 고수인 걸 깨닫지 못한 고수 후보만 있을 뿐이다. 고수는 상대방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신뢰하며 묻기에, 상대에게 본질적인 도움을 주며, 의도치 않게 자기 자신도 유익함을 얻게 된다.
Q3. 당신의 질문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담겨 있는가?
고수의 질문엔 상대에 대한 존중, 인식을 확장시키는 지혜로움, 그리고 상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담겨있다. 고수의 질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고수라서 다르게 질문하는 것이다. 좋은 질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의 진정성 있는 질문이라서 훌륭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수는 자신이 하수인지 모르고 묻는 것이고, 중수는 고수인척 묻는 것이며, 고수는 고수답게 묻는다.' 나는 하수인가, 중수인가, 고수인가'를 묻는 것은 하수다. '어떻게 고수가 될 수 있는가?' 이건 중수의 질문이다. '누구와 만나 질문을 주고 받을까'를 묻는 것이 고수다. 물론 고수는 다른 고수를 찾지 않는다. 친구를 찾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Q4. 당신은 질문의 고수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고수답게 질문하고 싶은가?
2016. 8. 11. 질문술사
[덧붙이는 글]
1) 아버님이 큰 수술을 하셔서 계획했던 글쓰기가 많이 미뤄졌습니다. 다행히 수술을 잘 진행되었고, 현재 회복중에 있습니다. 쾌유를 기원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가을이 되기 전에 출간될 수 있도록 다시 힘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2) 아버님이 입원한 서울 모 병원에서 며칠 머물다보니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개인노트에 질문의 하수, 중수, 고수에 대한 단상 몇가지를 끄적여, 페이스북(링크)에 올렸습니다. 며칠 사이에 600명이 넘게 공유해주셨더군요. 사실 반응에 조금 놀랐습니다. 고수가 하수보다 더 우월하다는 뜻으로 끄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 질문이 상대와 만나거나, 세상과 만나고 있는지 돌아보자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글쓰기도 재개할겸 가볍게 메모들에 대한 설명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봤습니다.
3) 글쓰기하수의 부족한 글 읽고 피드백 남겨주시고, 함께 질문에 머물고 의견도 주시는 독자분들 덕분에 힘이 많이 납니다. 더 좋은 질문들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