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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주 Oct 21. 2023

1. 워라벨하게 일하는 반쯤백수

관점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컵에 물이 반 쯤 남았을 때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쯤백수(semi jobless)’도 마찬가지다.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하루 8시간이라는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평균 4시간 정도 일하는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고 일정한 직업이나 정해진 일은 없지만 가끔씩 일하는 사람, 예컨대 비정규직 가운데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은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루 24시간을 3등분하여 8시간 노동과 8시간 휴식(식사포함), 나머지 8시간을 잠자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같은 정서적 습관은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성인이 되면서부터 생긴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가정을 포함한 집단의 일원으로 생활할 때부터 따라야했던 원칙이나 사회적 규율 같은 것이었다. 예컨대 방학 첫 날, 초등학생들에게 하루 일과표를 작성해 보라고 하면 어김없이 하루를 3등분하여 공부(일)하는 시간, 밥먹고 놀며 쉬는 시간, 그리고 잠자는 시간으로 구분한다. 물론 워라벨(Work Life Balance)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토, 일, 공휴일과 별도로 챙길 수 있는 휴가기간에는 일하는 시간이 노는 시간에 합쳐진다. 

그러나 나는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모든 시간을 일하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토, 일, 공휴일은 물론 휴가 기간에도 마찬가지다. 집중해서 일하는 때도 많지만 밥먹을 때를 포함하여 느슨하게, 때로는 TV와 영화를 보면서 마치 노는 듯 일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의 절반, 얼핏 12시간은 일하고 나머지 12시간은 노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반쯤백수란, 하루의 절반은 일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1년 365일, 매일같이 말이다. 

이쯤되면 나를 일중독(workholic)증 환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루의 시간을 이렇게 사용해야한다고 강요하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독재자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하루 24시간을 3등분하여 마치 기계처럼 행동할 때 마음의 안정은 물론 워라벨을 누리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물론 하루의 절반은 일하고 나머지 절반을 노는 것 역시 관점에 따라 반쯤백수 또는 일중독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 차이가 일과 삶, 특히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일을 내 삶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 것은 나 역시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하기 원하며 가족은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나 가까이 교제하는 지인들의 행복이 나 때문에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나도 더 많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결혼 후 지금까지 세 자녀를 키우면서도 아이들의 거의 모든 기념일에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기쁠 땐 함께 웃고 슬플 땐 함께 우울했다. 좋은 날엔 같이 케익을 자르고 아플 땐 함께 병실을 지켰다. 언제든 가족들과 함께했고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며 ‘워라벨’하게 살아 왔다.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일했고 언제 어디서든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삶의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일은 내 삶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물론 그렇게 설명해도 잔뜩 의심어린 시선으로 이렇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병원에 가야할 때 하필이면 그때 당신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물론 그 질문은 너무 쉬워서 1초의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일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그럴 땐 당연히 병원에 있겠지요.” 나는 일이 내 삶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했지만 일이 내 삶의 모든 순간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이런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 “당신의 인생에서 ‘일’은 어떤 의미입니까?” 

요컨대 하루의 절반은 일하고 나머지 절반을 노는 것을 일중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워라벨을 누리며 일하는 반쯤백수로 생각할 것이냐를 가르는 구체적인 기준은 일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모든 노동의 중심에 자리잡은 ‘인공지능(AI_Artificial Intelligence)’가 시간이 갈수록 일을 주도하는 주체와 방법을 바꾸면서 당신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에서 일은 언제까지 당신을 지켜줄 수 있을까? 또한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경우 돈벌이는 물론 생계수단을 떠나서라도 더 오랫동안 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끝까지 행복하기 바라는 당신에게 일은, 그리고 일을 하는 목적과 방법은 지금 이대로 괜챦을까? 더구나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내 아이들의 미래에 일이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그 모든 의문에 답을 찾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워라벨하게 일하는 반쯤백수가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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