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애진 Jan 01. 2022

프리워커의 역량에 대한 고민

탈회사 라이프 8주 차 - "언제나 변화의 파도 위에 올라탈 것.”

프리랜서로 일해보는 것의 장점 

퇴사를 한 후 앞으로를 고민하던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어떻게 보여? 나를 보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뭐야?” 이 질문에 세모는 답했다. “굳이 타인에게 계속해서 네 키워드를 물어볼 것이 아니라, 지금 너에게 들어오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맞는 말이었다. 퇴사 후 연락 오는 제안들이 곧, 시장이 결정하는 나의 기능과 가치였다. 


9월부터 6개의 제안을 받았으며, 3개월 동안 그중 5개를 진행했다.  모 브랜드 키트 제작 프로젝트를 할 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애진씨 너무 좋아요. 자기 디자인을 폄하하지 말아요" 시안 미팅 중, 작업을 보여주며 조금 부끄러워하며 설명하는 내게 클라이언트가 건넨 말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몸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일을 함에 있어 전공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경험이라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비전공자로서 디자인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직접 경험을 했다는 그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전공자가 아닐지라도 내가 여러 로고 작업을 하고, 디자인 프로젝트를 했었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일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이 내 경험들을 보고 내게 기대한 재주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세모가 말했다. 

“사실 초기에 팜프라는 진짜 별거 없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피드백이 온다고 느꼈거든. 여기에는 애진이의 역할이 진짜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뭐였을까 생각해보면 너가 만든 콘텐츠들과 글이었다고 생각해. 우리가 했던 일이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에너지를 진심으로 잘 전달하는 사람이 너였던 거야.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보편적으로 잘 푸는 재주가 있어. 내적으로 앞선 감각과 보편적으로 풀어내는 감각이 있다는 건 네가 가진 특별한 힘이라고 생각해.”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내가 팔릴만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자,
새로운 맥락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프리랜서로 사는 건 어때요? 

프리랜서가 처음 되었을 때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었다. 주변의 아는 프리랜서들을 찾아가 묻고 들었다. 


평생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살아온 실장님은 말했다. 

“이전에는 누끼만 따도 잘 살던 시기가 있었어. 그런데 이제는 디자이너가 애니메이션도, 영상도 해야 하는 때인 것 같아.” 

일찍이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던 실장님은 초기에는 동기들에 비해 많은 수익을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조금 더 큰 규모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더 경력을 쌓았어야 했다며 이제는 당시 동기들이 더 잘 번다는 말을 덧붙였다. 반면 당신은 매년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일도 코로나 이후로 뚝 끊겼다고 했다. 그래서 실장님은 내게 조금 더 경력을 쌓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을 추천했다.


벌써 6개월째 영상 PD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말했다. 

“나는 기획도 하고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해. 지금은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경쟁력 있는 것 같아.”

그 역시 영상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조금씩 관련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간 경우였다. 그가 영상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것, 내가 브랜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것. 지금 시대에는 그 자체로도 내세울 수 있는 값진 커리어였다.


종종 찾아보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말했다. 

“역량이 어느 궤도에 오른 후에는,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 수요를 늘리는 것이 훨씬 유리할 수 있다."

확실히 바래길 디자인 가이드라인 개발 프로젝트 이후, 웬만한 로고 작업은 부담이 줄었다. 일이 들어오는 영역은 대게 로컬과 소셜 섹터였는데, 모두 지난 인연을 통해서 연결된 것이었다. 디자이너 혹은 기획자의 실력 자체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소통'이었다. 나를 찾아온 클라이언트들에게는 그들의 상황과 지향하는 가치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가진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최고보다 최적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도 피봇 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는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야 한다. 친구 말마따나 투자나 사이드와는 관계없이 “커리어는 커리어대로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랜서로서 커리어를 쌓는 것은 프리랜서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그 변화에 잘 발맞추어 나아가야 한다.

이 관점에서 지난 10년을 보니 매번 변화의 물살을 타기 위해 변하려고 노력했던 내가 보였다. 몇 가지 변화의 지점에서 획득했던 능력과 경험을 정리해봤다. 


인문학적 관점 

노력: 막연히 인문학의 중요성을 확신했다. 인문학적 시선을 기르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을 가고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왜 그렇게 행동하며, 그렇게 행동한 심리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사람은 어떤 삶을 원하는가 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했다. 

변화: 많은 유형의 사람을 만난 덕분에 세상과 사람을 보는 관점에서 조금 더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다.

디자인 기술 (어도비)

노력: 생각보다 영문 전공이 맞지 않았고 예술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21살 겨울 무렵 토익학원을 다니라던 엄마 몰래 학교 앞 디자인 학원을 등록했다. 당시 두 달치 용돈을 모두 부었다. 

변화: 3년 뒤, 디자인 기술을 활용해 일을 하게 되었다. 

작은 집짓기 & 각종 목공 기술

노력: 오로빌에서 만난 작은 집을 보고 이를 기사로 썼다. 그리고 2년 뒤 청년 농부를 위한 이동식 목조주택을 지었다.

변화: 코로나 이후 근교에서의 삶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덩달아 작은 집 수요가 늘어났다. 미래에 집을 지을 때 웬만한 구조, 용어 이해 및 도구 사용이 가능하다. 

청년 마을 기획/운영 

노력: 농촌을 찾는 청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이들의 진입 장벽을 낮출 청년마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년마을 팜프라촌을 계획할 때, 선례가 없어서 어렵다는 말만 주구장창 들었다. 

변화: 3년 뒤, 이제 청년마을 관련 정책들이 온갖 지자체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연구 용역 일이 들어왔다. 

포스트 코로나 대응

노력: 코로나를 맞이하면서 급변하는 세상이 보였다. 관광객이 끊긴 유채밭의 유채꽃을 팔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변화:  코로나 수혜를 톡톡히 입었던 스타트업에 취직했고, 7개월 후 퇴사했다. 그리고 프리랜서 생활 4개월째에 돌입했다. 


그리고 여전히 변화를 위한 배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 평생이지 않을까. (예전에 누가 나보고 평생 달릴 팔자라고 했었다..) 그래도 변화가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된 지금 세상에서 살아가기 좋은 태도를 지닌 것은 개인적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도 가끔씩은 ‘나도 나이를 들면 변화하기를 거부하고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곤 하는데, 세모의 말을 듣고 이내 걱정을 버렸다. 세모의 말은 이러했다.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바뀔 수밖에 없지. 세상이 계속 바뀌니까. 일을 하지 않는 사람만이 안 바뀌는 거지. 예컨대 디자인만 해도 계속 바뀌잖아. 현장에 있으면 그 자체로 트렌드를 맞닥뜨리게 되는 거니까. 갑작스러운 응대가 지속되다 보면 그냥 내가 그걸 하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애를 쓰는 태도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사실, 변하는 세상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것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절대 불변성을 지향하지는 않으나, 의미 있는 가치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가며 이어나가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양극단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연결 지으며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다. 홈파밍을 하고, 발효에 관심을 갖고 관련한 일을 하는 것도 모두 그런 연유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메타버스/NFT 시장으로 뛰어드려고 한다. 최소 6개월은 프리랜서로 살아보겠다는 다짐은 곧,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 탑승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창작자로서의 삶을 시작해보겠다는 의미였다. 단순히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세계관과 서사를 구축하고, 이를 실현하는 일을 하고 싶다. 


당장은 변함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지금 내가 향하는 방향을 조금씩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각도를 꺾어 나가면 언젠가는 원하던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것임을 믿는다. 


“너는 굶어 죽을 걱정은 할 필요 없는 것 같아. 늘 너는 애를 쓸 테니까. 중요한 것은 애를 쓰는 태도 같거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