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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06. 2024

경계인을 넘어 자유인으로

프리워커로서의 역할

1. 경계인: 대한민국 인구포럼

가을날, '커뮤니티'를 주제로 팜프라를 만들고 다시 서울로 떠난 이야기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현재 진행형인 팜프라에 대해 과거의 경험만을 가진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제가 적합한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심지어 발표 자리는  CBS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인구포럼>이었고, 온라인 생중계가 되는 꽤나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하지만 크고 멋진 이야기보다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말에 끝내 승낙했다. 청년마을 정책 시행이 3년이 지난 지금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3년의 경험 끝에 알게 된 것은 6가지였다.  


     1. 지역에서 커뮤니티와 비즈니스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우리는 커뮤니티" 혹은 "우리는 비즈니스"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는 뜻이다. 지역에서 커뮤니티는 곧 ‘신뢰’이기 때문이다. 고로, 비즈니스를 위해서도 커뮤니티는 필수 요소다.


2. 다양한 커뮤니티 ‘망’은 곧 나의 ‘안전망’이다.    

'단단한 내부 커뮤니티'는 생활에 뿌리내린 커뮤니티다. 남해를 예로 들면 귀촌 남성은 축구팀 ‘유배투스'로 모이고, 귀촌 여성은 동동마켓 셀러로 모인다. 반면, '느슨한 외부 커뮤니티'는 새로운 영감을 주는 커뮤니티다.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가진 사람,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는 장이다. 내부 커뮤니티는 씨줄이고, 외부 커뮤니티는 날줄이다. 씨줄과 날줄을 엮여 거대한 안전망을 직조해야 한다.      


3. 커뮤니티는 부분적으로 개방적이며, 접근이 쉬워야 한다.

예를 들어 팜프라촌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너무 무거웠다. 4-5개월의 장기간 프로그램이었다. (휴학이나 퇴사를 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는..) 그래서 한편 폐쇄적이었고, 유동성과 역동성이 적었다. 현재 팜프라촌은 ‘숙박, 1주일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더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기존에는 이미 팜프라를 알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이제는 팜프라를 모르고 오는 사람이 70%가 되었다고..!   


4. '우리’ 커뮤니티의 결속력과 단단함을 키우는 것이 먼저다.

처음부터 기존 커뮤니티와 지나치게 융합될 필요는 없다. 기존 커뮤니티의 중력은 무척 세다. 융합이 아닌 흡수가 될 수 있다. 대신 매개자/중재자와 잘 이야기해서 완충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두모마을에는 마을 어른들과 우리들의 사이를 조율해 주는 든든한 이장님과 사무장님이 계셨다. 또한 양아분교라는 완충의 공간 덕분에 우리는 ‘학교 애들’로 불리면서 최소한의 익명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마을살이에 익숙해진 후에야 마을회관에 인사를 가고, 두모큰잔치를 열어 어르신께 직접 인사를 드렸다.     


5. 함께하는 ‘공부’는 커뮤니티의 ‘의미’를 밝힌다.

현장에서 눈앞의 일에 치이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을 잃고 휩쓸리게 된다. 이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공동의 가치관과 비전이다. 이는 공동 활동의 ‘근거’가 된다. 공동의 가치를 끊임없이 상기하고, 수정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종교 커뮤니티를 생각해 보자. 기독교에서 매주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함께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전체 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요한 의식 중 하나다.    


6. 파이를 늘리기 위해서는 ‘경계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 3년 동안 정말 많은 청년마을들이 생겼다. 경험의 장이 넓어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점차 ‘제로섬 게임’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다. 일찍이 청년 지원 정책을 시작했던 지역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청년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정주하지 않았다고 ‘실패’로 봐야 할까? 아니, 오히려 ‘경계인의 탄생’으로 봐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경계인은 ‘관계인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지역과 도시 양쪽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다. 그래서 경계인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안과 밖으로 끊임없이 넘나드면서 창조성을 유지하고 결국 양쪽 모두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위 고향 없는 세대(였)다. 대부분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 애초에 지역에 대한 경험이 부재했다. 하지만 청년마을을 통해 많은 청년들이 지역살이를 경험하게 됐다. 잠재적 경계인이 확보된 셈이다. 이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지역으로 불러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험하고 돌아간 이들의 이야기와 이후의 활동들이 잘 기록되어야 한다.


참고) CBS 대한민국 인구포럼 in 전남



2. 자유인: 경계를 분해하는 버섯인간

작은 단체, 조직, 기업은 대규모 기업처럼 분업화되지 못한다. 어느 큰 부분을 담당하는 누군가를 채용하는 것도, 그렇다고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특정 기능 위주로만 서치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오히려 더 약해지는 길일 수 있다. 그 대신 우리는 각각의 위치에서 직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가치를 이해하면서도 두리뭉실한 역할을 수행해 줄 수 있는 존재들이 필요하다. 여러 작은 재능을 가진 다능인 프리워커는 이미 좋은 콘텐츠를 가진 작은 기업과 단체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프리워커는 경계를 분해한다. 일과 놀이를 재-통합한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가속화된 디지털화와 원격근무 덕분에 일터와 삶터가 일치되고 있다. 독립된 프리워커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수다. 어제의 경쟁자는 오늘의 협력자가 된다. 인간과 비인간이 얽혀 있는 세계에서는 차이도 모두 부분적·일시적이다. 중요한 것은 차이의 해소가 아니라 차이의 수용이다. 동학농민운동이 꿈꿨던 새로운 경제공동체는 모두가 절대적으로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여기 남는 것과 저기 부족한 것을 교환하는 경제생활이었다. 유무상자(有無相資)다."
- [커뮤니티3.0] 에필로그 - 세계 끝의 버섯 인간 중


버섯인간 프리워커는 경도되거나 고립된 부분을 분해하고 연결하고 얽히는 일을 한다. 한 곳의 주된 소득원 대신 여러 곳에서 다양한 소득원을 가진다. 옥구슬들을 꿰어 내는 실 같은 역할을 한다. 수도권에만 꽉 막힌 체기를 퍼트리자. 흐르게만 하면 된다. 만나게만 하면 된다. 노드로서 노마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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