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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06. 2024

체제전환을 넘어 문명전환으로

WORLDING : 세계감, 세계관, 세계상

우리는 모두 각자가 지나온 시대의 트라우마를 가진다. 나에게는 그게 입시 교육과 제로섬 경쟁 시스템이었다. 이미 자본화된 교육은 계급 이동 수단은커녕 양극화를 가속하는 수단이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네 아빠가 마지막이었어."라는 엄마의 말은 안도스러운 동시에 좌절스러웠다. 직감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굴러가는 사회는 더는 지속불가능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다른 삶의 방식, 대안을 절실히 찾아 헤맸다. 



1. 세계감(感): 기후위기 시대를 감각하다 

기후위기와 디지털 시대가 결합하면서 어떤 전환의 지점에 놓여있음을 감각한다. 블록체인, AI 등 기술 발전이 이 전환을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존 서양 남성중심적 사고가 답습되는 모습을 볼 때면 오히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좌절감이 앞선다. 더욱더 여성과 소수자, 비인간 동물과 기계를 아우르는 생명 자체를 고민하게 된다. 전환에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경제, 정치, 사회 모델이 필요하다. 총체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체제가 아니라 '문명' 그 자체다. 이념이자 제도다. 문명의 뿌리가 바뀌어야 사회 구조적 문제도 바뀐다. 체제 전환을 넘어 문명 전환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의식과 제도의 공진화다.  



2. 세계관(觀): 새로운 북극성을 설정하다

현재 세계질서를 만들어 온 근본부터 알아야 한다. 이럴진대 더는 타인의 생각에 기생할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여 세계관을 세워야 한다. 20대는 눈과 발이 근질근질하여 이리저리 떠돌면서 살았다. 한국을 넘어 미국, 인도를 거쳐 유럽과 동남아를 떠돌아다녔다. 당시의 여정은 세 권의 책으로 귀결됐는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헬레나 노르헤지의 <오래된 미래>이다. 다시금 나의 심지가 되어줄 책을 찾기로 했다. 이번에는 여행 대신 집콕을 택했다. 책이 손에 잡히고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 대운이 바뀌면서 공부운이 들어온 덕분인가..!) 


12월 무렵 독서 기록장을 정리해 보니, 완독 기준으로 60권가량의 책이 리스트업 되었다. 한 달 평균 5-6권을 읽은 셈이다. 그중 몇 권과 짧은 단상.   


     케이트 레이워스 <도넛경제학> : 진짜 경제란 지구 살림살이!

기존의 경제학은 선형적인 완벽한 모델을 그리기 위해 가설을 설정했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21세기의 경제학을 위한 직관적이고 명료한 이미지를 제시한다. 도넛이다. 생태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공간, 우리는 도넛 위에 산다. 덧) 그림과 연극 대본을 활용한 전개 방식도 인상 깊다. 예술적 관점과 경제학적 관점의 융합이랄까.    


     최광진 <한국의 미학> : 한국 문화의 정수가 궁금하다면?

개인적으로 미학의 관점으로 체계화한 '한국 문화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한국 문화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발굴하는 것에 성공한 책이다. 특히 저자의 논리 정연한 전개와 명확한 구조화가 이해를 도왔다. 덕분에 미학을 현실과 동떨어진 것, 피상적인 학문이라는 편견을 깰 수 있었다.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의 발흥> : 종교로부터 배우는 커뮤니티

사회학적 분석과 역사적 맥락의 결합, 거기에 신학적 교리의 맥락 적절성을 잘 조화시킨 걸작이다. 지나친 다원화는 기성 기관의 과부하와 자원 약화를 야기하고, 사회 해체의 원인이 된다. 오늘날의 mbti, 요가, 별자리, 운세, 강점 검사의 유행은 오히려 새로운 영성의 필요성에 대한 반증 아닐까. 덧) 기독교의 발흥은 여성들에게 달려 있었다.   



3. 세계상(像):  커뮤니티3.0을 상상하다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상상이 필요하다. 마침 웹진 다른백년에 기획 칼럼을 연재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주제는 <커뮤니티 3.0> 였다. 일견 거창해서 흠칫거렸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그동안의 관심사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단어인 듯하여 수긍했다. 첫 글은 커뮤니티 연대기로 시작했다. 인서울에서 탈서울, 탈조직을 거쳐 탈중앙으로 나아가는 여정과 고민을 다뤘다. 넥스트 커뮤니티를 정의하고,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한 미래 마을(혹은 도시)을 상상해 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커뮤니티는 복잡하기 때문에 글로 통역하는 일이 필요하다. 작게나마 내러티브를 만드는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글을 써가는 행위 자체도 배움과 얽힘의 과정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과 현재의 느낌과 미래의 상상을 조합하고 조화롭게 조립했다. 글을 써갈수록  팜프라촌과 남해 마을살이 경험이 빛을 바래기는커녕 점점 더 빛을 발해 가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개인적으로 특정 주제를 두고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생각 정리와 방향 설정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나를 키웠다. 막연한 생각도 어찌 됐든 글로 풀어내면, 내가 쓴 글이 오히려 나를 인도하기도 했다. 연재를 마치고 나니 칼럼 전체가 패치들의 배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 다른백년 <커뮤니티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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