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많은 볕이 들어 따뜻했던 시절이었더라면...
무료하고 딱딱한 일상에 지친 어떤 이들이 숨 쉴 수 있는 환풍구라던가 탁하게 막힌 삶의 공기를 정화시켜 줄 환풍장치를 찾는다면 나는 축축하고 음습하게 젖어버린 어두운 과거와 내면의 습기를 덜어줄 제습기를 찾는다.
과연 서른이 넘어버린 지금 나는 그 제습장치를 찾았는가 아니면 곰팡내 나는 그런 과거의 그림자 속에 머물러있는가.
말 많고 웃음기, 장난기 많은 나는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할 적에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묻지 않는 것이 그들의 과거지사, 특히나 어린 시절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나만의 불문율이 있다.
매일이 살얼음장 위를 걷는 것만 같은 불안감과 공포심에 떤다거나 내놓고 뭐 하나 갖고 싶다, 하고 싶다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살 떨리는 시간의 연속을 매일의 삶으로 살아야 했던 나는 하루 세끼 식사 말고도 눈칫밥을 덤으로 먹어야 했던 아이였다.
동네에 자전거를 타고 나와 놀 때에도 '때'가 되면 집에 가 공부하는 척이라던가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고 집에서 이런저런 큰 소리가 날 때에는 그러한 소음들을 무시한 채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척을 하며 흐르는 눈물을 머금어 버린 채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동화책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저리는 오금에 힘을 주어 빨리 이 소동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던 아이였다.
동화책에 나오는 어떠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라던가 따뜻함을 주어야 마땅한 가정의 모습은 말 그대로 동화 속 이야기에 불과했으며 행복한 이야기의 결말이나 가족끼리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고받는 모습마저도 그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동화 속 우화에 지나지 않았다.
감히 내놓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고 갖고 싶은지 조차도 말할 수 없었던 항상 겁에 질려있던 나의 어린 날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여덟 살 어린 날의 나는 매일 밤 '소동'이 있은 후 겁에 질린 채 억지로 잠을 청해야 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동이 틀 무렵 눈치껏 일어나 눈치껏 알아서 준비하고 학교로 향해야했다. 입김이 나오기 시작하던 시월 초순 학교 운동장에 얼마나 오래 살았을지 모를 크디큰 플라타너스 나무 밑동에 멍하게 앉아 시리도록 맑은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며 해바라기를 했다.
여덟 살의 나이는 여전히 너무나 작고 연약하며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그야말로 여전히 '아기'에 속하는 나이가 아닌가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길에 지나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생들을 볼 때 그 아이들의 연약함과 숨결조차 작은 그 모습에 동물로서의 보호본능을 느끼며 행여 나의 작은 움직임이 그들에게 어떤 아픔이 될까 멀직히 떨어져 걷는 습관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 역시도 새순 같은 연함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함을 가졌던, 여전히 작은 아이였을텐데 그 시절의 나는 슬픔, 분노, 불안 그리고 공포라는 감정들과 너무도 친숙해져 있었고 찬란한 가을볕 아래 홀로 앉아 시린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러한 유익하지 못한 감정들을 홀로 삭혀야 했던 코끝 시린 시절이 내가 기억하는 그 어린 날 그 자체이자 전부로 자리매김해있다.
서른이 되기 직전, 대뜸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여전히 불쌍하게만 여겨지는 어린 날의 나를 위한 짧은 글을 일기장에 꾹꾹 눌러 담았던 적이 있다.
" 영문도 까닭도 모른 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꿇어앉아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던 어린 날의 나야, 온 가족들이 아침부터 한밤 중 까지 집에 붙어있어야 하던 주말과 공휴일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그 시절의 나야,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따뜻함이 사치인 것을 너무 빨리 알아야 했던 아가야, 홀로 그 모진 소동과 슬픔, 공포를 견뎌야 했던 꼬마야, 기쁨과 행복이라는 감정보다 체념과 눈물을 먼저 배워야 했던 소년아, 나이 먹어버린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무력함을 느낀다.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서 그 모든 힘듦을 삭여야 했던 꼬마야, 집 뒤 흙이 가득한 야트막한 둔덕에 올라앉아 내려앉는 해를 올려다보며 그 모든 시련을 홀로 삼켜야 했던 여덟 살의 나야 그때도 지금도 나는 너를 어떻게 해줄 수 없음에 다시 한번 무력함을 느낀단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에도 내가 나인채로 태어난다면 조금 더 일찍 그런 나를 보듬어주고 조금 더 빨리 볕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어린 시절의 너를 꺼내어 축축하고 눈물로 얼룩진 곰팡내 나는 유년기를 따뜻하게 말려주고 움추러든 날개를 바짝 말려 조금 더 멀리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해주마. 아무래도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구나."
이 내용을 실컷 적어놓고는 나 혼자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지 모른다.
아마 서른이 되어서는 조금 더 다른 삶을 살자, 어두운 유년 그리고 학창 시절의 그림자에서 나와 더 당당하고 꼿꼿한 인생을 살자고 글을 썼던 것 같다. 눈치 보지 말고 움추러들지도 말며 내가 나인채로 살아가자, 자존감을 한껏 드높이자 그렇게 서른의 삶을 맞이하자 적었던 글인 것 같은데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그늘에 가려져있다.
한때에는 일 년 365일 중 364일을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채워 보냈고 남은 하루는 원한(怨恨)에 사무친 채로 한 해를 꼬박 채웠던 적이 있다.
그 힘 없이 터덜거리며 걷던, 시리게 푸르던 하늘을 멍하게만 올려다보던, 새 순같이 유약했던 여덟 살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게 여전히 힘이 든다. 때로는 그 모습을 외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입김이 나기 시작하고 눈이 부시고 시릴 만큼 드높고 푸른 하늘을 뽐내는 가을을 가장 좋아하며, 매 년 가을이 오면 그 여덟 살의 나는 여전히 나를 찾아오고 때론 나를 괴롭게 한다.
그때의 나를 지켜주어야 했던 것은 과연 나여야 했을까 나를 세상 바깥으로 꺼내준 존재들이어야 했을까.
조금 더 많은 볕이 들어 더 따뜻했던 시절이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