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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요가생활 Oct 21. 2019

일상 요가 생활 - 일상

일상에서 요가의 의미



일상과 요가, 요가와 일상. 이것은 나의 최대 관심사이다.


요가를 처음 일상으로 접했을 때는 단지 운동이었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 생활을 하며 굳어가는 몸을 움직여주고, 생활 체력을 길러줄 수 있는 운동.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요가원에서 연말인지 연초인지 아무튼 추운 계절에 특가 행사를 시작했을 때 6개월인지 1년인지를 한꺼번에 등록했었다. 운이 좋게도 저녁에 수업하는 선생님이 나에게 잘 맞아서 열심히 다닐 수 있었다(사실 원장님은 좀 안 맞았거든). 주 3회를 꾸준히 다니며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핫요가와 힐링 요가는 물론 인사이드 플로우에 아디다스에 빈야사와 아쉬탕가 그리고 플라잉 요가까지 안 하는 수업이 거의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즐거웠고 집에서 혼자 머리 서기 연습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이런저런 계기로 요가 강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요가는 배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요가에 투자했는지 모르겠다. 아침저녁으로 수련을 하고 해부학과 철학 등 몸과 요가의 정신에 관한 이론 공부도 이어갔다. 강사 자격을 취득하고 여행을 가서도 여러 요가원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수업을 듣고 경험하고 인도까지 가서 강사 트레이닝 과정을 또 들었다. 강사가 되려면 남들보다 아는 것도 많아야 하고 몸으로 동작을 보여야 하는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정말 부지런히 배우고 수련했던 시기였다.


인도에서의 강사과정 중 한 달 동안 합숙 생활을 하며 그제야 요가가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 즉 생활 방식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요가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하루에 고작 몇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모두 바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티 요가가 있고, 카르마 요가가 있다. 요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귀환했을 때는 요가적인 생활 방식까지 생각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어떻게든 요가를 일로 만들어야 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기회를 얻기도 또 잃기도 했다. 기쁨의 순간과 좌절의 순간, 그리고 기대와 불안이 교차해서 찾아왔다. 제대로 된 요가 강사가 되고 미래를 꿈꾸기 위해 또다시 여기저기로 수업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요가는 나에게 무엇이 되고 있는가? 내 삶은 무엇이 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말하며 요가를 가르치고 있는가? 회의감이 들었다. 다시 요가에 대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시기가 찾아왔다.




삶이란 단어는 너무 거창하게 들렸다. 배포가 크지도 않고 현실적인 편인 나는 뭔가 거대한 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요가의 궁극적 목표, 삼매에 듦으로써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윤회를 끊어내고 거대한 하나의 힘으로 스미고 싶은 소망도 없었다(사실 그전에 사후세계 자체에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은 그저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생 그리고 나의 일상, 일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일상을 잘 살아가는데 요가가 많은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요가의 궁극적 목표를 위해 일상을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탑 다운 방식보다는, 하루하루 일상을 잘 꾸려 전체적으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나에게 더 와 닿았다.


일상을 만들어내는 생활 방식을 스스로 세워보고자 할 때에는 다양한 곳에서 힌트를 얻을 수가 있다. 특히 종교나 문화는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지. 나는 한국의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 여성이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가톨릭을 약간 접했지만 무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적 성향과 취향과 나만의 철학을 정립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요가의 철학을 만났다. 요가는 일종의 종교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속에 세상의 근본 원리가 있고 그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지 종교적인 인간이 되지 못하는 나는 요가 철학의 실천적인 부분에 더 눈이 갔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요가에는 박티 요가와 카르마 요가라는 개념이 있다. 박티 요가는 헌신의 요가로 신에 대한 신심을 이야기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에는 신이 깃들어 있고 그것은 나와 같으니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박티 요가의 실천은 모든 행위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이를 사랑과 존중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카르마 요가는 우리가 모은 카르마(업)를 태우고 다르마(도리)를 다하고 살기 위해서는 그 결과에 집착이 없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실천은 필요한 일을 하되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일 자체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쉬탕가 요가(8지 요가)의 1단계 야마(금계)에서는 내가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나 그 구성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나아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실천을 요구하며 2단계 니야마(권계)에서는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한 실천을 제시한다.


사실 비슷한 실천들을 다른 종교나 문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요가는 스스로 정진하여 어떤 틀을 깨고 나가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이 나와 잘 맞다고 느꼈다. 특정한 신을 믿고 그 대상에게 소망과 감사를 말하기보단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는 형식을 취하는 명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혈혈단신으로 가기보단 주변 사람, 사람을 넘어선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방식이 또 좋았다.  하지만 전통도 변화고 종교도 변화한다. 옛 인도 문화권에 속해있는 요가를 그대로 현대의 한국에 사는 내 일상에 가져올 수는 없었다. 또다시 고민이 필요했다.



그 하나하나의 고민은 이 일상 요가 생활의 글이 된다. 반복되는 내 일상의 루틴을 어떻게 요가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내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선택의 순간, 나는 어떻게 요가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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