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빠살이] 마흔여섯 아빠의 뱃살 빼기 무한도전 이야기
배 위로 손을 올려주세요!
다소 짓궂은 포즈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거리낌이 없다. 마침내 드러난 둥그런 뱃살에도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디지털 줄자로 허리둘레를 재보니 37인치에 육박했다. 얼핏 보기에도 틀림없는 복부비만. 가능하면 숨기고픈 40대 남자의 치부도 당당히 웃어넘기는 그는 아빠살이 18년 차 이성원(46) 강사다. 그를 만나 '근자감'의 이유를 자세히 들어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음식 앞에 죄송할 다이어터들에겐 못할 말이지만, 그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른 체질이다. 적어도 30대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자 상황이 급변했다. 슬림한 체형은 유지됐지만, 복부가 눈에 띄게 나오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ET 체형이다. 평생 살 때문에 고민해 본 일이 없었기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참 난감하고 낯설었다. 강사인 그는 당장 학생들의 입에서 그 변화를 감지했다. 앉은자리에서 강사를 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배로 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복부 비만을 지적하는 학생도 하나 둘 생겼다. 명절날 친척들도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무례하게도(?) 배를 '쓰윽' 만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는 의연했다. 남자가 마흔 즈음되면 당연히 생기는 나잇살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의 사진이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2년 전쯤에 교회 사람들이랑 봉사 활동을 간 적이 있어요. 끝나고 다 같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어요. 나중에 사진을 받아서 봤는데 정말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죠. 햇빛 때문에 그림자가 졌었는데. 마른 상태에서 제 배가 너무 도드라지게 보이더라고요.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어휴..."
그동안 방치했던 뱃살이 밝은 태양 아래 난데없이 노출되자 그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태양을 피한다고 없어질 뱃살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날 그는 뱃살을 빼기로 결단했다.
피부가 하얗고 도수가 높은 안경에 단정한 헤어스타일이다. 게다가 목소리 톤이 고급 지다. 외모가 그 사람을 특정하진 않지만, 눈앞의 그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프로 도전 덕후다.
"처음에는 뱃살 빼려고 헬스장을 가려했어요. 그런데 막상 가려니 마음먹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좀 더 접근이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줄넘기가 생각났죠. 한 1000개쯤 하면 뱃살이 빠질까 해서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줄넘기는 뱃살을 빼기 위한 본격적인 도전이었다. 무작정 줄넘기를 들고 놀이터로 나갔다. 도전 첫날, 그는 1000개를 채우지 못하고 몸 져 누웠다. 생전 움직이지 않았던 근육들이 단체로 비명을 지르는 통에 며칠을 꼼짝없이 앓았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한데 그는 다시 놀이터로 나갔다. 그리고 기어코 줄넘기 1000개를 달성했다.
"줄넘기 도전할 때 뭐가 가장 어려웠냐고요? 그냥 밖에 나가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물론 저는 뱃살 나온 사진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나가기가 좀 수월했던 것 같지만요. 하하. 그리고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같은 SNS에 도전을 시작한다고 표 내는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뱃살 빼기 위해서 한 달 동안 줄넘기 1000개씩 한다고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 약속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게 되더라고요. 사실 결심을 결단으로 옮기는 게 말이 쉽지 참 힘든 일이죠. 그래서 도전의 시작은 우선 방문을 여는 것부터인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중요하죠. 일단 시작만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뱃살을 빼기 위해 시작한 줄넘기 도전은 스노보드, 플랭크, 당구, 팔 굽혀 펴기, 훌라후프, 걷기, 턱걸이, 악력, 외발자전거, 크런치, AB슬라이드, 버핏 테스트, 피아노, 저글링 등 다양한 종목으로 이어졌다. 2년간 시도한 도전이 무려 15개다. 거의 두 달에 한 개꼴이다. 처음엔 숨이 넘어갈 듯 힘들었지만, 도전이 꾸준하게 이어지자 신기하게도 몸이 조금씩 적응하는 걸 느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몸과 마음에 이전보다 자존감이 커졌다. 그리고 멋지게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꼈다. 그 모든 과정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가 운영하는 채널 '힘내라 40대'는 다른 40대들과 도전 경험을 공유하는 게 본래 목적이지만, 사실 그가 도전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 역할도 했다. 구독자들의 눈이 자신을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방문을 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도전을 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도전'이라 부르기엔 너무 평범한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는 도전이 꼭 대단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도전 목표를 처음부터 크게 세우면 시도조차 못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부담스러운 탓이죠. 도전은 크기가 아니라 '시도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작게 꾸준히 할 수 있을 만큼 부담 없는 목표를 가져야 해요. 처음에는 그렇게 시도하다가 단련이 되면 자연스럽게 목표가 커지게 되거든요. 그럼 결국 큰 도전도 할 수 있게 돼요."
그렇게 시도된 작은 도전들을 그는 '바늘 도전'이라 말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란 속담에서 따온 말이다. 그가 시도한 다양한 바늘 도전은 주로 40 평생 하고팠던 것들이나 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어느 날 교회 목사님이 외발자전거를 갖고 오신 적이 있었어요. 서커스에서나 보던 자전거에 눈이 휘둥그레졌죠. 그땐 '저건 운동 잘하는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난 절대 못 탈 거라고 생각했죠. 그랬던 외발자전거가 이제는 제게 새로운 도전이 됐어요. 첫 도전 후 3주 만에 100미터를 갔을 때, 그 짜릿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피아노는 결핍 때문에 시작한 도전이에요. 어릴 때 저희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을 했는데 저는 피아노가 너무 치기 싫어서 배우지 않았어요. 자장면집 아이가 자장면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런데 살아보니 피아노를 배웠다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당장 군대 갔을 때도 반주자가 없었거든요. '피아노를 배웠다면 좋았을 텐데'하며 아쉬워했어요. 그래서 피아노 배우기에 도전했죠."
그는 추천할 만한 도전으로 주저 없이 '걷기'를 꼽았다. 암사대교에서 행주대교까지 하루에 5만 보를 걸었던 도전이 그에게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안겨줬다면, 한 달간 매일 2만 보 걷기 도전은 그에게 꾸준한 운동의 효능을 깨닫게 했다.
"예전에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하고 기력이 없어서 소파에 누워만 있었어요. 그런데 매일 걷기 운동을 하면서 눈에 띄게 체력이 좋아졌어요. 아침에 1시간, 점심 먹고 회사 근처 올림픽 공원서 1시간, 퇴근 후 집 근처에서 또 1시간을 틈 나는 데로 걸었어요. 비가 오면 이마트 안을 걸었어요. 무조건 하루에 2만 보를 채웠죠. 나중에는 정말 보약 한 채 먹은 것처럼 피곤이 사라졌어요. 힘이 남아돌더라니까요. 덕분에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사실 하루 2만 보는 저처럼 사무직 직장인에겐 무리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살면서 한 번은 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어요. 절 믿고 딱 한 달만 해보면 몸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느낄 겁니다."
작심삼일은 괜한 말이 아니다. 작심삼일을 3일마다 반복하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만큼 '꾸준함'은 어려운 일이다. 뱃살이 그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겠지만,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슬럼프를 물었다. 그런데 그는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놨다.
"도전하다 보니 나랑 안 맞는 게 있더라고요. 한두 달 해봤는데도 흥미가 안 생기면 과감히 포기합니다. 도전이 스트레스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의 도전 목표는 하나를 오래 하는 것보다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거든요. 결국,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나랑 맞는 평생 취미를 찾아가는 게 제 도전 과제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단조롭게 살아온 저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죠."
그는 결혼 18년 차 아빠다. 세 살 연하 아내와 아이 셋을 키우는 40대 가장이다. 결혼 초기엔 일만 하느라 시간적,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당연히 취미는 사치라 여겼다. 빠듯하게 벌어 생활하던 시기라 취미를 가질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 키우는 데 긴 세월을 투자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픈 지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이만큼 키우고 나니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단 걸 깨닫게 됐단다. 이제 그는 돈 없이도 다양한 도전을 통해 만든 취미를 즐기고 있다.
"그동안 너무 틀에 박힌 생활을 하다 보니 후회가 되더라고요. 직장과 집을 쳇바퀴 돌듯 돌며 그 울타리를 애써 넘어서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참 단조로운 삶이죠. 그런데 이렇게 도전을 하다 보니 다양한 직군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삶에도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겼어요. 도전이 주는 활력소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에게 슬럼프가 있다면 지금일 것이다. 6개월 전 뱃살 빼기 3종 세트(AB슬라이드, 버핏 테스트, 풀업)를 잘못된 자세로 시도하다 20년 만에 디스크가 재발했기 때문이다. 꼼짝할 수 없었다. 당연히 도전도 중단됐다. 그 사이에 33인치까지 줄었던 허리둘레가 다시 37인치까지 늘어났다. 그는 바른 자세를 먼저 배우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 그래도 도전의 가치를 몰랐던 예전보다 마음이 많이 단단해졌다. 그의 웃음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건강하려고 시작한 도전인데 아프면 나쁜 도전이잖아요. 그래도 몸이 많이 좋아져서 조만간 다시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도전하는 삶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변화시켰다. 가장 가까운 아이들은 더 이상 그를 '바쁜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뭐든지 할 수 있는 아빠'라고 말한다. 당장 그의 저글링 도전도 막내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막내가 학교 수업인 저글링을 아빠에게 배운 후 한껏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저글링이 준 건 자신감뿐만이 아니었다. 막내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말수가 줄었는데, 이번 저글링 도전을 통해 아빠와 더 자주 이야기하게 됐다. 도전이 멀어진 부자지간을 돈독하게 해 준 것이다. 그는 아들의 변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뿌듯했다고 고백했다. 도전이 준 값진 선물이다. 옆에서 그를 바라본 아내의 생각도 궁금했다. 인터뷰 도중 그가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직접 물어보자고 제안했다.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차분하다. 아내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바늘 도전의 효과를 증언했다.
"예전부터 기타를 치고 싶었었는데 어렵고 힘들어서 꾸준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도전하는 남편을 보면서 매일 꾸준한 노력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깨닫게 됐어요. 실력이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꾸준함이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1월부터 다시 기타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매일 연습했더니 지금은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그는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40대 아빠들에게도 도전을 권유한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그 통로다. 40대 아빠 구독자들은 그가 직접 시도한 다양한 도전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도전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물론 그가 유튜브에 올린 도전 영상에 '너같이 시간이 많은 사람만 하는 거지, 먹고살기 바쁘면 할 수 있냐?'라는 댓글도 있다. 그는 그 댓글에 너무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자신도 도전하려면 돈과 시간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40대 아빠들에게 '나 같이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외친다.
"우리에겐 나머지 40년이 남아있어요. 그걸 위해서라도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매일 한 장씩 일기 쓰기 같은 소소한 도전이 내 삶을 바꿀 수 있어요. 요즘 현대인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 공황장애가 많다고 하잖아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돌파구가 꼭 필요한데 40대 아빠들에겐 도전을 통해 취미를 발견하는 게 필수라고 생각해요. 남편, 아빠, 상사, 부하, 사위 등등 우리 40대는 해야 할 역할이 참 많아요. 짊어지고 가야 할 것들이 많은 나이죠. 특히 직장문제같이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여러 가지 도전을 통해 평생 취미가 생기면 또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어요. 전 외발자전거를 좋아하는데 어쩌면 나중에 자전거 가게 사장님이 될 수도 있잖아요. 40대 여러분, 더 나은 인생 후반전을 위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선 작은 도전부터 시작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도전은 결이 다르다. 보통 도전이라 함은 기록을 달성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는 여러 가지 도전을 시도한다는 게 목적이다. 성공이 아니라 시도가 목적인 것이다. 산악인 엄홍길처럼 히말라야 16좌 완등이 도전일 수도 있지만, 16좌를 두루 경험하는 게 목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도전을 통해 많은 경험치가 쌓이길 원한다. 그래서 좀 더 큰 사람, 단단한 사람, 마음이 여유롭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에게 도전의 의미를 물었다.
"저에게 도전은 이성원이란 사람의 파이를 크게 만들어주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실패하는 확률을 줄여나가는 과정이 도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실패를 겪으면 더 단단해질 수 있잖아요. 그 경험치가 제게 남은 인생 후반전을 살아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알림] 이 글은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