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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n 11. 2024

물들다

아모르파티

살며시 스며든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커튼을 저쳤다. 며칠 전 조카가 준 화분 속에서 아가 잎들이 글거린. 아가의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처럼 귀엽다. 시 누 라본 햇살과 머리만 보이는 초록빛의 잎들. 행복한 아침이다.

얼마 전, 아들 조언에 따라 햇살과 노을이 잘 보이도록 침대와 책상 위치를 바꾸고 란다를 정리했었다. 어른들 보시기에는 어정쩡한 배치지만 아들이 말한 아름다움이 뭔지 알 것 같다.

아들 때문이었을까? 문득 '물들다'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빛깔이 스미거나 옮아서 묻 것, 어떤 환경이나 사상 따위를 닮아 가는 것, 물들다.

들의 감성에 물든 아침이다.




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분주한 일들도 있었지만 글을 쓰려고 해도 이 생각, 저 생각이 먼지처럼 풀풀 날리며 정리되지 않아서 쓸 수가 없었다. 대신 난 낙서 같은 그림을 매일 한두 개씩 그렸다. 뭘 그렸는지 의미조차 부여하지 않고 그린 그림들이 제법 많아졌다. 그 그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그 그림들을 들여다보면서 알게 됐다. 아무렇게나 생각 없이 그린다고 해도 그 그림 안에는 내 생각이 녹아있다는 걸. 끊임없이 삶에 대해 고민하며 그걸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걸.


내가 그린 그림의 사람들은 좌우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사람들 안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는 생각 때문일 거다. 우리가 보는 부분이 다가 아니고 지금의 모습이 다가 아니다. 앞으로 성숙해질 모습을 미리보고 존귀함으로 대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병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하나로 연결한다. 처음 그림은 유리벽이라는 글씨를 쓰고 연결한 거다. 나에겐 "함께"가 중요하기 때문일 거다. 

내게 삶은,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며 함께 잠깐을 살고 가는 거다.

서로의 아름다움과 선함에 물들며.




아크릴물감이나 오일파스텔로 그린 그림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삶 같다. 눈에 보이는 부분은 단순하지만 누구의 삶도 단층이지 않으니까.

표현이 서툴러서 그리고 엎고를 반복하고, 결국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꽃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기엔 꽃그림이지만 그 안에서 여러 겹의 색들이 깔려 있다.

꽃으로 마무리되는 건, 우리 삶도 지금껏 지나온 모든 것들을 배경 삼아 꽃처럼 빛나길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울러 흩뿌린 물감이나 갈아 얹은 오일파스텔로 더 화사해진 그림처럼 우리 삶에 소망을 더해 더 아름다운 모습이길 바란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

며칠 전 라디오에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노래를 들었다. 난 이런 식의 가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은 그냥 넘겼을 텐데 그날따라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다가 '아모르파티'를 검색했다.

아모르파티의 '파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party가 아니다.

amor fati, Love of fate, 運命愛.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이다. 운명의 어두운 부분조차 그냥 참지만 말고,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이 검색을 시작으로 노래 가사 전체를 검색하고 니체를 검색하고, 영원회귀, 위버멘쉬 등 니체 철학에 대해 검색을 이어갔다.

이 노래의 가사를 쓰신 분은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셨고 아마도 가사처럼 살지 않으셨을 거다. 그래서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지 않으셨을까? 후렴 부분만 듣고 넘겼는데 전체적인 가사를 보면서 삶의 연륜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나에게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거만한 철학자였다.

이제 나에게 니체는 쓰러진 채 가혹한 채찍질을 당하는 말을 안고 한참을 울었던 사람이다. 어쩌면 니체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간절히 바랐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신을 부정하게 하고, 니체를 오랜 시간 힘들게 한건 아닐까?


난 신을 믿는 사람이고 니체 철학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검색한 부분에 대한 니체 철학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니체의 깊은 뜻을 따라갈 수 없으니 무의미한 생각이겠지만, 미처 답을 찾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난 니체의 마음 한 조각을 알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의 운명. 내가 사랑해야 할 운명은 뭘까?

난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면 바보 같다. 나를 챙기지도 못하고 가족들을 잘 챙기지도 못한다. 그저 난 보이지 않는 신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이 땅의 삶에 따스함을 남기고 가고 싶다. 그래서 처하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자처하기도 한다.


오른쪽 위의 그림은 식당에서 찍은 아프리카 여인들 사진을 보고 그렸다. 아프리카 여인들이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온 건 어쩌면 언젠가 내 삶과 관련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난 신을 믿기에 신이 원하는 삶이 운명이라면 난 기꺼이 내 운명을 사랑한다.




모든 철학과 종교, 예술은 삶에 대한 고민이고 표현이다. 그 가치를 아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그들의 고민과 노력을 존중한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를 통해, 타인을 통해 알게 되는 건 큰 조각의 일부일 뿐이다.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물듦. 기꺼이 난 나를 물들게 내밀고, 나로 누군가 물들길 바란다. 그런데 나를 망치고 상대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죄가 죄인지 모르는 문화 안에서 소신껏 아름다움과 선을 선택할 있는 힘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한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다.


아무거나 내어 물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지고 있는 가장 고운빛 내어 물들이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서로를 물들여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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