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04화

아들 새끼, 아들 녀석

by 리얼라이어

아버지 일기에 나와 관련된 기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초등학생 딸아이 둔, 출가한 지 좀 된 내 얘기가 많이 나왔다면 오히려 아버지 살아생전에 속 꽤나 썩인 아들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자라서는 제 뜻대로 행동하려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인 ‘품 안의 자식’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마냥 헤아리지 못했던 아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임을 아버지 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알게 됐다. 참으로 어리석은 아들이 아닌가!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2017년 4월 22일. 이 날은 나도 똑똑히 기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기에는 ‘아들 새끼’라고 적혀 있다. 아들 새끼. 얼마나 부화가 치밀었으면 그렇게 쓰셨을까! 아마도 일기를 쓰면서도 당일에 겪었던 아들과의 동행 길이 머릿속에 떠올라 손으로는 쓰고 입으로는 ‘못된 놈’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상황은 이랬다. 사촌동생의 결혼식 참석 차 부모님을 모시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가야 했는데 우리 차 보다 공간이 넉넉한 아버지 차로 이동하기로 이미 결정한 터였다. 해서 전날 엄마가 아버지에게 세차를 권유하였으나 깜빡 잊고 못하셨나 보다. 내 눈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지저분하지 않았으므로 예식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기에 차 좀 닦고 가자는 엄마 말에 나는 대충 대답을 하고 말았다.


닦으나 안 닦으나 똑같은데?
시간 없으니 그냥 가요!

그 날 저녁에 알았지만 아내에게 내가 한 말을 들은 아버지의 표정을 전해 들었다. 매우 노여워하셨단다. 그래서 아내가 차량 청소용품을 가지러 우리 차로 향했었나 보다. 난 그것도 모른 채 시간 없다며 아내한테 핀잔까지 줬다. 여기서 끝났으면 ‘아들 새끼’라고 까지 표현하지 않으셨을 텐데 사건은 출발 후 10여분 만에 일어났다. 가는 길이야 나도 대략 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좀 더 단축시키려고 내 모바일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에 의지했다. 순간, 아버지는 고속도로는 이 쪽이라며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고 나는 내비게이션 말에 따라 핸들을 움직였다.


내비게이션이 이쪽이래요.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어쨌든 고속도로는 나와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뒷좌석에 있는 엄마나, 아내는 이미 예견을 한 듯했다. 아버지의 역정과 엄마의 중재, 그리고 옆구리를 콕콕 찌른 아내까지 누구라 할 것 없이 차 안의 공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물론 처음에 나도 아버지 말과 행동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죄송한 마음에 급 후회를 했다. 내비게이션은 고속도로 방향으로 안내하지 않았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다음 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서 전 날의 일에 관해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결국, 아버지의 일기에는 하루 만에 ‘아들 새끼’에서 ‘아들 녀석’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화 한 통화에 마음이 누그러지셨다니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아버지 일기에 등장하는 나는 이 사건을 제외하면 모두 ‘아들’, ‘아들 녀석’, ‘아들 내외’ 이렇게 불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날의 일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


오랜 숙원이던 내 땅 찾기에 고민을 하다 드디어 오늘 측량을 해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田을 찾았다. (중략) 찾고 난 다음 대단한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지만 몇 년 아니 평생 묵은 숙제를 푼 것 같아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진작 해야 할 일. 아직도 다른 것에 미처 하지 못해 마음 한 구석은… 아들 녀석이 고생을 하였다. _ 2017년 2월 13일 월 맑음
아들 녀석이 김치를 가지러 집에 왔다. 항상 귀여운 아들이다. 딸도 그렇고. 나이가 30이 훨씬 넘었는데도 말이다. _ 2016년 11월 19일 토 맑음
어제께 오는 길 아들에게 잘못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내 딴엔 우리 손녀가 자랑스러웠는데 내 이야기의 전달이 그게 아닌가 보다. 몹시 후회되고 미안함이…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내 본 뜻은 그것이 아니라고 전화를 하였는데 글쎄다. 왜 이리 내가 못났는가? 후회와 잘못함이 나이 먹어 이것이 뭣이란 가? _ 2016년 7월 10일 일 맑음
아들 녀석이 전화를 했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집사람도 없고 해서 순간적으로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이 잘 안 떨어져 생각이 없노라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 아내 없이 점심 먹기란. 아들. 미안해. _ 2016년 4월 24일 일 맑음


아버지의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그 날의 일이 떠오른다. 그 날의 나는 아버지의 눈에 나이가 많아도 귀여운 아들이었고, 고마운 아들이었다. 또 그날의 아버지 당신은 스스로가 미안한 아비였다. 아니다. 내가 철없고 모자라고 못난 아들이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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