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03화

여행의 맛

by 리얼라이어

2016년은 아버지가 칠순이 되는 해였다. 전부터 가족 간 아버지 칠순에 관해 여러 의견을 교류한 바 있었고 다양한 의견 속에서 제주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정했다. 10년 전 아버지 환갑이 되는 해는 친인척이 모여 잔치를 했었다. 따라서 칠순도 잔치를 해야 하지 않겠나 했지만 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셨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요즘 세상에 팔순이면 모를까 칠순 잔치한다고 사람들 불러 모으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집안의 가장 어른인 작은할아버지가 칠순 잔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하자면 아버지 칠순 잔치는 당시 나의 경제적인 여건이 다소 여유롭지 못하여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장자면서 한국 나이로도 적잖은 나이인데 경제적 이유로 이를 걱정을 하고 있으니 자괴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식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 건지...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이제 여행 날짜와 여행 동선을 짜는 일만 남았다. 이것은 나와 아내 그리고 여동생 몫이었다. 여동생이 지난 몇 년간의 4월부터 6월 제주 날씨를 조사해온 덕에 확률적으로 가장 비가 오지 않을 날로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우리 내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상의를 하여 몇 가지 여행 동선을 짰고, 여동생이 부모님으로부터 귀띔으로 들은 몇 가지 안을 추가하여 동선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하여 아버지 칠순 기념 제주 가족여행은 2016년 5월 21일(토)부터 23일(월)까지 2박 3일로 정했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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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내 아내는 여행경비를 꼼꼼하게 관리하고 지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때마다 부모님의 눈높이 이상으로 역할을 수행했던 아내는 당시에 부모님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받았다. 사실 아내는 여행 출발부터 끝날 때까지 메모를 멈추는 법이 없었고, 각 여행지에서 빠른 계산과 통이 큰 행동으로 식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씻기 전에 지출한 경비 내역을 정리했던 아내의 모습에 다시 한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딸아이도 초등학교 1학년 답지 않게 투정 한 번 없이 오히려 분위기를 돋우는데 많은 역할을 해주었다. 워낙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손녀라서 그런지 손녀가 힘들어할새 없이 두 분은 손녀의 컨디션을 수시로 체크하셨다. 역시 딸아이는 실전에 강하다.


여동생의 자료조사 덕분에 여행 삼일 동안 빗방울 하나 내리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맑은 날씨만큼 마음의 위안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여동생은 새언니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일에 옆에서 잘 보조해주었다. 그리고 부모님 옆에서 이것저것, 여기저기 장단을 잘 맞췄다. 어릴 때는 그렇게 살가운 녀석은 아니었는데… 오빠로서, 아들로서 괜스레 머쓱해졌다.


7번 올레길에서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조금 불편해진 다리 때문에 걷는 것을 다소 부담스러워하셨는데 엄마의 발맞춤 덕으로 문제없었다. 다녀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올레길 중 7번이 매우 인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걸어보니 완만한 굽이와 매력적인 경치 때문이리라. 나는 가족사진보다 경치를 감상하며 걷는데 열중했다. 그때마다 두 분께서 뭔가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다가 또 걷다가, 벤치에 앉아 계시다가 또 뭔가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웃으셨다. 인상 깊은 모습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손을 놓지 않으셨는데 아내가 그 모습을 보며 나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부끄럽게… 어쨌든 7번 올레길에서 손잡고 걸었던 아버지, 엄마의 뒷모습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명장면이었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그런데, 아들인 나는 어떠했길래... ‘좀 더 후하게 해 주지. 아들 녀석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크고 기술이 답답하다’는 아버지 말에 쉬이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대략 알고는 있으나 나도 할 일과 할 말은 한다고 한 것이 아버지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아버지의 일기를 보지 못했다면 이 또한 생각이나 했었겠나 싶다. 기분 좋은 여행에 아들인 내가 괜한 오점이 된 것 같아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이 상당하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맛’은 '여정'과 ‘여운’을 아우른다. ‘여운’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운치라고 되어 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당신의 칠순을 기념하여 다녀온 제주 가족여행의 ‘여운’은 일기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연일 기록되어 있는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가슴이 먹먹하여 일기장을 잠시 덮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일기장을 폈다. 아버지, 엄마 이름의 노란색 보딩패스가 눈에 들어왔다. 스테이플러 세 개로 고정된 보딩패스가 매우 귀여워 보였다.


사진 © 슬로우 스타터


그리고 그 해 7월 30일, 가족뿐만 아니라 외가 식구들과 함께 모여 아버지 칠순 생신을 축하드렸다. 전야제가 화려 했다는 후문이 기억난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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