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05화

사모곡(思母曲)

by 리얼라이어
사진 © 슬로우 스타터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가끔씩 읊는 한시다. 워낙 유명한 한시라서 그 의미는 잘 알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다만, 중학교 시절 주관식으로 나온 한문 시험에서 정답을 맞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저 시험 문제 풀이를 위해 단순히 외우기만 했을 뿐 성인이 되어서도, 출가를 해서도, 기억 속에 먼, 나와 인연이 있을 것 같지 않을 한시였다. 그러나 아버지 일기장 속에 손 글씨로 또박또박 쓰인 한자 하나하나와 뜻풀이가 된 이 유명 한시는 지금 내 마음 한 자리에 안착하고 말았다. 지금부터는 살아계신 엄마를 떠올리라며 말이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오늘 어머님 제삿날이다. 절을 올리면서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마음속으로 어머님께 절을 드렸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다.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님에게 아량을 부리려고 술을 많이 먹었습니다. 죄송합니다. 70회에 드리는 이매 사모곡(思母曲)) _ 2016년 4월 25일 월 맑음


출가 후 바쁜 생활을 하는 나머지 평일에 있는 제사에 참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도 그런 아들의 생활을 잘 알고 있기에 특별히 서운해하거나 필참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다만, 가급적이면 할아버지 제사는 큰 손주로서 예를 갖췄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시긴 하신다. 따라서 할머니 제사가 주말이면 어김없이 친가로 가서 제사를 올리지만 이 해는 평일인 관계로 참석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날 아버지의 마음이 매우 무겁고 쓸쓸하셨나 보다. 엄마 말에 의하면 ‘한 오백 년’ 노래를 수십 번 부르다가 주무셨다고. 너무 구슬프게 불러서 엄마 또한 눈물을 흘렸노라고.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6.25. 66주년. 내 나이 4살 때, 일어난 민족의 대 참극이다. 어머님을 잃고 할머니의 품에서 유년기, 소년기, 그리고 청 장년기를 보낸 6.25의 직접 피해 당사자이다. 어머니의 몸을 비이지에 묻고 온전히 모시지 못하고 지금껏 70 인생을 하늘을 우러러보는 못난 아들이 되었다. 지뢰로 인한 어머님의 시신을 모시지 못하고 한 많은 눈물과 설움으로 지내고 있으니 이 또한 통탄할 일이 아닌가? 어머님 용서하세요. 죄 많은 아들은 눈물로 어머님께 용서를 비옵니다. 두 어머님. 용서하세요. _ 2016년 6월 25일 토 맑음


이렇게 아버지는 유년기부터 청장년을 당신의 할머니 손에서 보내셨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증조할머니인데, 할머니의 기억은 전혀 없지만 증조할머니의 기억은 아주 또렷하여 이따금씩 할머니가 보고프면 옛 기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내가 14살이 되는 해. 증조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삼우제를 지낸 후 새벽까지 ‘한 오백 년’ 노래를 부르셨던 걸로 기억한다. 내 기억 속 그 날의 ‘한 오백 년’은 매우 슬펐다. 몰래 눈물을 훔치며 끝까지 아버지의 노래를 들었다. 아버지 일기장 속 매년 6월 25일은 이처럼 당신의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리움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은 저 하늘 위에서 아버지 당신의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매일 얘기꽃을 피우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계시겠지? 아마도 ‘한 오백 년’ 노래는 더 이상 구성지게 부를 일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 할머니, 증조할머니 3대가 흥에 겨워 덩실덩실 어깨 춤추고 계심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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