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06화

저예요, 아버지 1

by 리얼라이어

저예요, 아버지!

늘 마음으로만 그리움을 전했는데 이제야 편지로서 제 마음을 표현하게 됐습니다. 써야지, 아버지 얘기를 꼭 글로서 남겨야지, 어서 써야지 써야지… 이미 수십 번 이렇게 머릿속으로만, 마음로만 지낸 2년 동안 아버지는 분명 ‘괜찮아, 괜찮아’ 하셨으리라 생각하니 여전히 철들지 못한 아들이네요. 마흔이 되던 작년 제 생일날, 나잇값 하며 살겠다고 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드렸었는데 어째 1년이 지나도 저는 말 따로, 행동 따로인지요? 많이 늦었습니다. 용서하세요!


아버지!

저도 아버지처럼 한 가정을 꾸리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 보니 아버지라는 그 존재의 무게와 책임감에 보다 현명하고 지혜롭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부부는 나름의 철학으로 부모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한 편으로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며 세상에 계시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픔에 잠깁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들춰봅니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표창장. 장남 00. 너에게 장자 대우도 못해줬고. 고생만 시켰는데. 한 가정을 무리 없이 행복하게 잘 이끌어준 너에게 고맙고 장하다. 뭇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행동이 반듯하다는 칭찬을 들으니 자식 농사는 잘 지은 것 같다. 부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장자로서의 몸 가짐을 잊지 말고 모든 가정사에 앞장서기를 바란다. 우리 내외 만난 지 32주년을 맞이하여 표창장과 약간의 격려금을 내린다.


기억납니다. 봉투와 함께 편지를 주셨는데 내용보다는 격려금에 큰 웃음을 보였었죠, 제가. 약간의 격려금이라고 하기에는 액수가 커서 한 동안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돈은 쓰고 없어졌는데 아버지 일기장 속 메모가 그 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해 주니 참으로 철없는 아들이네요, 저. 더욱이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것 같다고 하시니 그간 많은 염려와 심려를 끼친 일들에 깊은 후회와 죄송함은 모두 제 불찰입니다. 그중 어리석었던 제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이 섭섭하셨을지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알았습니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아들이 말을 했다. 내 이름의 영(榮) 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난감하고 섭섭한 이야기. 내일 호적계에 알아 볼일이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어저께 아들과의 일들에 신경을 너무 많이 썼는지 잠자리가 뒤숭숭한 가운데 아침을 맞이 하였다. 10시에 동사무소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아무 일 없으니 염려치 말라는 직원의 이야기에 근심을 덜었다. 즉시 아들에 전화를 하여 이야기하였더니 죄송하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놓였다.


이런저런 일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 괜히 제 이름에 관해 불만이 생기고, 혹 이름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인터넷을 뒤져 나름 신빙성 있는 자료를 찾았고 기회가 되면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야지 했는데, 하필 눈치 없이 어버이날에 아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셨으니 얼마나 서운하셨을까요? 더군다나 제가 다소 공격적인 어조로 말을 이어 갔으니 아들에 말에 이 상황과 자리가 매우 불편하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자세히 알아보겠노라며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셨어요. 이후 집에 오는 내내 제 마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되어 아버지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한데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그때의 제가 얼마나 바보 멍청이 같았는지 얼마나 큰 불효였는지 알았습니다. 저도 제 이름에 관해 문제없음을 안도했지만, 동사무소 직원 말 한마디에 근심을 덜었다고 하니 당시의 평안한 감정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했을 아버지 당신의 얼굴이 그려져 더욱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 진심으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남긴 당신의 일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도 아들에 대한 사랑과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아버지를 그리워했을 것 같아요. 살아 계실 때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렸던 아들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큽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아버지가 저를 그리고 가족 모두를 우리가 아는 것보다 그 이상으로 사랑하고 마음속 깊이 생각하셨다는 것을요. 아버지께서 자식을, 가족을 대하고 사랑했던 마음과 행동은 이제 아버지 당신의 손녀인 제 딸아이에게 전하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처럼 말이죠.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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