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07화

다른 사람은 알랑가 몰라?

by 리얼라이어

아버지의 일기장 속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단연코 엄마다. 사랑꾼도 세상에 이런 사랑꾼이 또 있나 싶다.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버지 일기 곳곳에 잘 드러나 있어서 '엄마는 참 행복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더욱이 아내와 다퉜다는 내용은 2년 간 2번이 전부였고, 대부분 사랑스러움, 고마움, 미안함, 안쓰러움이 한 글자 한 글자에 온전히 담겨 있었다. 나 또한 아버지 당신의 아내를 향한 남편의 마음 씀씀이와 애틋한 감정을 따라가다가 몇 번이고 목구멍 끝까지 뜨거움을 느꼈는지 모른다. 다른 내용은 몰라도 엄마가 관련 내용을 쉽게 찾아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따로 메모해서 드릴 생각이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마누라와 집에서 하루 종일 쉬니(지내니) 정말 좋았다. 밥을 챙겨 먹어서가 아니라 같이 있어 대화를 나누며 함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좋은 하루였다. 역시 집사람과 같이 있어야 한다니까. _ 2016년 12월 11일 일 맑음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아내가 아침 일찍 일을 나가면서 평소에는 하지 않던 양볼에 뽀뽀를 하고 나간다. 갑자기 내가 귀여웠나? _ 2016년 6월 18일 토 맑음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밤사이 국지성 비가 천지를 뒤덮더니만 그 비가 오늘 아침까지 퍼부어 여행을 떠나는 아내의 발길을 잡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비가 서서히 그쳐 여행을 갈 수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피곤에 쌓여 다소 기력을 읽은 아내에게 이번 여행이 큰 활력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_ 2017년 7월 8일 토 흐, 비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모처럼 일찍 퇴근한 아내와 감미옥에서 설렁탕을 먹고 나니 그 기분. 다른 사람은 알랑가 몰라? _ 2016년 6월 24일 토 맑음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집사람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다. 반가움이 하늘을 찔렀다. _ 2017년 4월 19일 수 맑음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아내가 해준 메밀묵. 최고로 맛있었음. _ 2017년 2월 26일 일 맑음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오늘 부인의 적금 만기일이다. 덕분에 40만 원 돈의 거금을 손에 쥐어졌으니 이 아니 기분이 좋아질 수가? 부인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근사한테 가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마누라의 외식이 기다려지고 부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되지 않을까? 기분 좋은 오늘이다. _ 2017년 2월 21일 화 맑음


아버지는 교직에서 정년 퇴임 후, 주변에서 다양한 활동을 권유하였으나 모두 마다하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 하셨다. 더욱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몇 년을 제외하고 오랫동안 주말부부로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기에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한 그간의 세월을 못내 미안해하셨다. 따라서 아버지 일기 속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평온한 일상과 아내와의 에피소드는 어쩌면 은퇴한 시니어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마는 늘 바쁜 일상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아버지 퇴임 후에도 엄마의 시계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모임도 많고, 일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찾는 곳이 있으니 가야 하고, 일손이 부족하면 거들러 간다. 때로는 모임에서 주최하는 여행도 가야 한다. 대부분 엄마의 절친과 말이다. 반면 아버지는 이러한 당신의 아내 일상을 깊이 존중하며, 바쁘게 지내는 아내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아버지 나름대로의 방식을 찾아 일상을 보냈던 모양이다. 어디 매번 순순히 그러셨겠냐는 합리적인 의심도 들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큰 불평불만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아내와 함께 한 소소한 동행도 기쁨이요, 일찍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와 저녁을 같이 먹는 것 또한 큰 행복으로 여긴 듯하다. 마치 당구장에서 만난 오늘의 숙적에게 기싸움과 동시에 한껏 자랑하고 싶어 한 듯 말이다. ‘너, 이 기분 알아? 모르지? 아마 모를 거야!’ 하며 말이다. 정말 귀여운 아버지다. 엄마도 분명 그런 남편의 모습이 귀여워서 양 볼에 뽀뽀를 해주신 것이 아닐까? 사랑꾼도 이런 사랑꾼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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