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02화

아버지의 일기장

by 리얼라이어

아버지가 남긴 세 권의 일기장은 마지막 기록인 2017년 9월 16일부터 뒷장을 넘겨가며 거꾸로 읽었다. 2017년 기록이 끝나면 2016년 12월 31일부터 뒷장을 넘겨가며 읽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읽는 날로부터 가장 가까운 날에 아버지의 일상이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병마의 징후가 어떤 식으로든 기록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갑자기 혈당이 떨어졌다던가, 입 맛이 요 몇 일새 크게 떨어졌다던가, 또 아니면 아버지 당신을 포함해서 가족 모두 별 일 아니 듯이 넘긴 짧은 문장이 라던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병마의 징후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 기록을 보는 순간 전철 안에서 크게 탄식하고 말았다. 주변에서 나를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크게 말이다.


모든 일기를 다 읽고 난 소감을 말하자면, 또 한 번 상주가 된 듯했다. 매우 뜬금없는 표현일지는 몰라도 슬픈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다. 매번 장례식을 다녀오기만 했지 처음으로 장례를 치르는 상주가 되어 보니 롤러코스터처럼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때만큼 아버지를 깊고 넓게 그려본 적이 있었나 싶다. 없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오히려 더 깊고 넓게 아버지를 그릴 수 있었다. 어쩌면 평생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희로애락이 아니던가! 더욱이 아버지의 문체를 따라 가면 그곳에 고스란히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보다 더 가짜 같은 아버지의 일상. 나는 주로 네 개의 감정을 표출하며 아버지의 일기를 읽어 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 그대로의 모습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로 화답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보다 더 진하고 진중한 문체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또한 엉뚱하고 아이처럼 순수한 기록을 읽을 때면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가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는데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체로 보아 매우 분노한 감정이었다. 딱히 누군가를 지칭하거나 상황이 묘사되지 않아 일기의 앞 뒷장을 들춰가며 정황을 유추해보지만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KakaoTalk_20191113_172035746.jpg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아버지의 일기 안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두 글자로 이뤄진 테마다. 가족, 아내, 서예, 운동, 친구, 날씨, 당구, 텃밭, 나라, 건강, 정치와 같은 것 들인데 이러한 테마가 아버지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당구 이야기는 아버지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잘 나타나 있다. 대략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당구에 관해 이렇게도 진중한 모습이었는지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란 매우 어려웠다. 나는 당구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딱 한번 아버지와 함께 당구장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나는 게임을 하지 않고 그저 구경만 했는데 큐걸이 하는 아버지의 모습만 생각날 뿐이다. 그 날 게임을 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기억이 없다. 다만, 아버지가 나보고 '넌 당구도 못 치고 지금까지 뭐하고 놀았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기억난다. 그러게 말이다. 아버지의 일기장에 아들과 당구 한 게임해서 좋았다,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이런 기록은 없으니 참으로 내가 어리석다. 그게 뭐가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부모님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당구장에서 딱 1시간만 있다 오면 될 일을 말이다.


KakaoTalk_20191113_172103915.jpg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이외에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같은 굵직한 뉴스뿐만 아니라 동네에 대형 슈퍼마켓이 오픈한 기록까지 아버지 눈길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뉴스와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다. 이러한 기록도 읽는 즐거움이 대단했다. 특히 메모와 같은 기록은 동그라미를 치거나 네모를 쳐서 쉽게 확인이 가능했다. 어떤 메모는 글씨 크기도 컸다. 기억이란 금세 잊어버리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억되거나 기억하고 싶은 한 부분만 기억될 수 있으므로 훗날 일기장을 들췄을 때 기억의 정확함을 기하기 위해서 그리 하셨으리라 짐작한다.


그림1.jpg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아버지의 일기에 관해 글을 써야지 했던 다짐을 2년여 만에 실행에 옮기게 됐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계속 이어질 글에서 나는 분명히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을 것이다. 아버지의 일기를 단순히 읽으면서 아버지를 추억했던 것보다 글을 쓰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귀한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특별한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이름 모를 타인의 사적인 내용이라서 특별히 읽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글을 끝까지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 엄마, 아빠는 지금 뭐하고 계실까?' 하며 부모님에게 전화 한 통 드릴 수 있는 따뜻한 글이 되기를 바란다. 단 1분이면 될 우리의 안부전화 목소리에 부모님은 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므로.


다음부터 이어질 글을 잠깐 언급하자면 아버지의 일기 안에 등장하는 몇 개의 테마를 에피소드로 묶어 하나의 화수로 완성할 계획이다. 테마마다 아버지 일기가 발췌되어 소개되고, 내 기억과 시선으로서 당시를 설명, 회상, 추측하는 식으로 살이 붙게 된다. 또한 아버지를 향한 내 마음을 담백하게 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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