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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Oct 21. 2021

아무도 안 볼 때에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이유

죽기 싫어서이다

내가 자주 가는 쇼핑몰 앞에는 이상한 횡단보도가 있다.


그곳은 무단횡단을 하는 게 당연한 곳이다. 신호가 바뀌는데 유독 오래 걸리는 곳도 아닌데 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그곳을 자주 다닌 지 3년여가 지났는데 그동안 계속 그러고 있다.


버스를 타고 쇼핑몰 횡단보도앞까지 걸어가는 동안, 매번 갈등을 한다. 그러는 동안 함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의 90%는 자연스럽게 걷던 걸음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횡단보도를 가뿐히 건너간다. (빨간 불일 때 말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그들은 저멀리 걸어가고 있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다. 쇼핑몰 앞까지 걸어가면 횡단보도가 하나 더 있다. 지금 이만큼 늦어지면 그들은 더욱 더 멀어진다. 드디어 초록불이 켜진다. 아무리 발걸음을 빨리라도 이미 그들은 쇼핑몰 앞에 도착해있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두 개의 횡단보도를 한번에 건널 만큼 빠를 수는 없다. 나에게는 아직 하나의 횡단보도가 더 남아있다.


특별히 남들보다 느리게 살겠다는 신조를 가진 것도 아닌데, 내가 무단횡단을 절대 하지 않고 산지 꽤 오래되었다. 이유도 모르겠다. 다만 얼마전 친하게 지내는 작가님들과 ‘착한 척하는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런 삶의 태도들이 대부분 부모님에게서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던 걸 생각해본다. 어쩌면 부모에게서 배워서, 자식에게 배우라고 무단횡단을 하지 않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면 아이를 낳고나서는 의식적으로 무단횡단을 하지 않게 됐다. 정확하게 ‘애가 보고 배울까봐’서다. 사실 거창하게 ‘본보기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에서라기보다는, 무단횡단하다가 겪게 될지도 모를 위험이 겁나서였다.


예전에도 무단횡단을 하지는 않았지만 신호가 깜빡일 때 급하게 뛰는 경우는 종종 있었는데, 애가태어나고부터는그것도 멈췄다. 급할 때 손을 잡고 뛸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언젠가 조금 더 자란 아이가 나 없이 혼자 뛰다가 사고라도 당할까봐 걱정이 됐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따라하는 아이에게 “엄마랑 같이는 괜찮은데, 너 혼자 다닐 때는 이러면 안돼!”라고 말하는 건 우습지 않은가.


각각의 어른들이 의식적으로라도 무단횡단하지 않는 본보기가 되어주는 것만으로 훨씬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아이들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난다면 부모의 과실책임이 절반이라는 법원 판례도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인지도.


그런데 정작 이런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것이 선이다’는 개념 자체가 ‘근본 없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놀랐다. 무단횡단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범죄시 된 것은 사실 자동차회사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다. 길은 태초부터 보행자의 것이고, 자동차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무단’으로 침입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다. 그런 패러다임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자동차회사들이 엄청난 로비를 한 결과 지금과 같은 ‘무단횡단’ 개념이 자리잡은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실 때문일까, 지금도 나라들마다 무단횡단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각이 다르다는 게 흥미롭다. 역시 ‘선하다’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는 것이다. 그럼 무단횡단을 그냥 해버리는게 맞는 거 아닐까? 사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만큼이나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도 강한 나는 가끔 착한척하느라 꽉 막힌 사람이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안전’과 관련된 이슈인 이상, 태초에는 도로가 보행자의 것이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자동차의 것은 아님을 주장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게 맞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난(2021년 10월) 18일 새벽, 토트넘 대 뉴캐슬 경기가 있었다. 경기 중 갑자기 관중석에서 의료적 응급상황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주심은 즉시 경기를 중단시켰다. 구단 의료진까지 관중석에 투입됐다. 결국 경기는 상당시간동안 중단되었음에도 아무도 그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관중석의 상황이 해결되어 응급실로 이송되어갈때는 대다수의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 그 상황을 가장 먼저 발견해 주심에게 보고한 세르비아 레길론은 경기가 끝난 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축구경기장은 축구를 위한 공간이지만, 그 어떤 공간이라 할지라도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임은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 감동적인 사례였다.


이렇게 나름의 결론을 내렸음에도 다들 무단횡단을 하는 그 곳에 도착해서 “다들 하지 마세요!”라고 외칠 자신은 여전히 없다. 어쩌면 그 정도면 그 길은 횡단보도를 잘못 만든 거고, 건너지 않는 게 융통성없는 모습일지도 모르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한명의 아이라도 그것을 따라하게 된다면, 그건 내가 도로옆에서 낭비한 3분 남짓한 시간보다 분명히 값어치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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