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는게 너무 많다
여름에는 정말 살림하기가 싫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삼시세끼를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차린 건지, 너무 지쳐버려서 지난 여름에는 한동안 밥을 거의 안해버렸다. 자연히 배달앱을 엄청나게 많이 쓰게 됐다. 그때는 매일매일 평소에 일주일치 모인 것보다도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집안에 쌓였다. 특히 보쌈이나 족발 류를 시켜먹으면 배달 패키지 처리하는게 너무 귀찮아서 차라리 밥을 해먹는 게 나을 정도로 쓰레기량이 어마어마했다. 진짜 너무 심하다 싶은 죄책감 때문에 마트어플을 이용해 밀키트를 한가득 주문해봤다. 그래도 사정은 비슷했다. 배달음식 정도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마어마한 비닐 쓰레기 때문에 ‘이럴 거면 그냥 재료를 따로 사서 해먹는게 진심으로 낫지 않겠냐’는 내면의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양념 등이 하나하나 따로 포장되어 있는 비닐은 씻기마저 어려웠다. 막국수나 불족의 빨간 양념이 잘 안 닦이는 플라스틱 그릇은 수세미로 닦을수라도 있었는데, 닦이지도 않는 숱한 비닐을 일반 종량제 쓰레기통에 한가득 버릴 때면 정말 심난했다.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하면서 나는 슬퍼졌다.
이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리뷰를 쓸 시간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배달앱 평점을 매길 시간이 온 것이다. 리뷰를 쓸 때 요즘은 사진도 함께 남길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어딘가 주문을 하려고 할 때 포토리뷰를 먼저 쭉 살펴보고 주문을 하는 편이다. 단지 배달앱을 위한 사진일 뿐인데 사진을 예쁘게 찍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러다보니 나도 음식이 오면 뭔가 세팅을 해서 사진을 찍게 된다. 이왕 사진도 찍었으니 평점도 남긴다. 여기서 또 갈리는 ‘무엇이 착한 것인가’의 지점이 있으니 그건 평점을 몇점을 줄것이냐의 문제다.
나는 평점을 매길 거면 무조건 5점(만점)이다. 정말 ‘아닌’ 가게를 만나면 그냥 리뷰를 남기지 않고, 다시는 시켜먹지 않는 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근데 깐깐한 리뷰들도 많이 보게 된다. 국물이 식어서 1점 뺀다, 배달이 늦어서 2점 뺀다 하는 식으로 논리정연한 리뷰들을 보고 있자면, ‘그냥 5점 주는 파’인 나의 경우 내가 업주도 아닌데 은근히 불쾌해진다. 평점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배달을 시켜먹게 되는 현실에서, 약간의 불만족 때문에 남의 영업을 방해하는 될수도 있다는 게 나는 불편하다. 반면 리뷰와 평점은 정당한 권리행사이고, 무조건 만점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더 이상한거라는 사람들도 꽤 자주 만난다. 틀린 말이 아닌 걸 잘 안다. 어쩌면 많은 이용자들의 선택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깐깐하고 정확한 리뷰가 ‘선’일지도 모른다는 입장도 이해가 간다. 정답은 모르겠다.
눈, 비 오는 날 악천후 때 배달시키기에 대한 얘기도 빠트릴 수 없다.
악천후일 때 배달을 시켜먹고 싶은건 당연한 일이다. 밖에 나가기 어렵고, 밖에 나가기 싫으니까. 비올 때는 집에서 파전이랑 김치전이나 시켜먹고 막걸리에 배 두드리고 싶고, 눈이 펑펑 내리면 피자나 치킨을 끌어안고 오래된 영화나 보고싶다. 이런 날 배달을 시키는게 가게에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이냐에 대한 설전이 인터넷상에서 오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었는데, 주인에게는 좋고 배달하는 이들에게는 좋지 않다로 결론이 난 듯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 만고의 진리인가싶다. 절대적으로, 모든 면으로 선한 행동이란 어쩌면 처음부터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배달앱을 이용할 때마다 이런 고민들을 하게되겠지. 모두에게 착할 수 없다는 건 모두에게 나쁘기도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내가 유리한 쪽을 바라보면서 살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러고보니 배달음식이나 시켜주는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 근데 또 어떤 사람들은 엄마가 피곤할 때에도 집밥한다고 매달려있으면서 지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배달음식 쿨하게 시켜주는 행복한 엄마가 더 좋은 엄마라고 하던데? 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