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고향, 이탈리아의 루카 Lucca를 그리며
과거의 경험은 무심코 흘러간다. 그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 의식하려 애쓴다 해도 그 당시를 똑같이 되살릴 수 없다. 그렇게 경험은 하나의 사건으로 남고, 과거는 기억 속에 잠든다.
일상에 적응하는 것은 금방이다. 일단 몸이 일상으로 돌아오면 곧 현재에 소속감을 되찾게 되고, 그러면 과거의 기억은 멀어진다. 어제 일도 마치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현재를 살아가며 떠올리고 싶은 좋은 기억의 순서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함이나 시급함에 따라 기억의 순위가 정해지고,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아닌 기억해야 하는 일들을 먼저 기억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좋은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떠올려 보고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되새겨보지 않으면 안 된다.
23살의 나는 6월 이맘때 대학교 해외탐방 프로그램으로 이탈리아 피사 Pisa에 있었다. 학교에서 돈을 지원받아 피사 대학교의 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대학교 박물관의 프로그램과 운영에 대해 조사해서 보고서를 써오는 일이었다.
지금 피사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피사의 사탑이 쓰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는 것. 피사의 사탑도 신비롭지만 그 옆의 하얀 성당이 참 아름답다는 것. 특히 이탈리아의 눈부신 햇살 아래 다채로운 하얀색으로 빛났다는 것. 식물 보존을 위해 특정 기간에만 정원을 개방하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소중히 다루는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진지한 문화. 오랫동안 현장을 지킨 사람에게서 나오는 단단함과 자부심이 느껴졌던 백발이 성성한 교수님. 이탈리아어로도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셨던 호탕한 직원분. 늘 같은 음식을 먹던 나에게 처음 먹어보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게 해 줬던 식당. 이런 기억들이 남아 있다.
실은 그때 당시에는 일을 제대로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 상황을 충분히 즐기지도 못했고, 좋은 줄도 몰랐던 것 같다. 당장 해야 할 일도 없는데도 일정이 끝나면 책임감을 시간으로 때울 수 있는 것 마냥 숙소에 들어앉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서울에서의 생활과 다름없이 지내다 일만 마치고 오는 건가 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혼자 있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같이 밥도 먹어주고, 주말이면 피사 근교의 작은 도시들을 데려가 줬던 현지 친구들이 있었다. 순수한 호의가 주는 감동이란 정말이지 오래 지속된다. 그 장면들은 흐릿해져 가도 그때 느꼈던 따뜻함은 여전히 살아 있어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하지만 이런 기억들도 현재 내가 의식하는 감정이며, 그때 겪었던 경험의 단면일 뿐이다. 그때 경험의 훨씬 더 큰 다른 부분은 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기억이 보고 싶었던 친구를 우연히 길가다가 만나는 것처럼 깨어날 때가 있다.
앞서 말한 그 현지 친구들과 함께 갔던 곳들 중 한 곳이, 피사에서 차로 한 시간이 안 걸리는 작은 도시, 루카 Lucca였다. 루카는 적분홍색 지붕의 집들이 모여 아기자기한 마을을 이루고 있고, 걸어서 온 도시를 다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루카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고 성벽을 따라 걸었다. 그 와중에 특별히 가 본 곳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생가였다. 푸치니가 쓰던 작은 물건들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던 것도 기억나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푸치니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친구의 모습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락과 힙합, 팝 음악에 편향되어 있었고, 푸치니는 교과서에서나 들어봤었다. 그런 나의 무지와 무관심이 미안할 정도로 그 친구는 푸치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고 그 모습에서 한 예술가에 대한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이것이 루카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고, 과거에 이탈리아에 있었던 기억도 아득해져 갔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며 음악을 듣는 폭은 점점 넓어져 클래식도 좋아하게 되었고, 저녁 수업을 할 때나 주말에는 오전에 방송하는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즐겨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곡인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가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오페라 "나부코(Nabucco)"의 합창곡으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도 불린다.
가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1)
가서 산기슭과 언덕에 앉아 보라,
부드럽고 따뜻한 곳,
조국 땅의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요르단 강둑에 인사하고
버려진 시온 탑에 인사하라.
오, 나의 조국이여, 정말 아름답고도 정말 잃어버렸다.
오, 추억이여, 정말 소중하고도 정말 사라져 버렸다.
예언자들의 황금 하프여,
왜 이제 버들가지에 걸려 아무 말이 없는가?
우리 가슴속에 추억을 되살리고,
지난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라!
솔로몬 성전의 운명을 기억하고,
비탄에 젖어 비명 지르게 하소서.
아니라면 하느님은 나를 강하게 하시어
이 고통을 견디게 하소서.
신기하게도 그날 베르디의 노래를 듣다가 루카에서 친구가 푸치니에 대해 해 준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음악가의 꿈을 키웠으나 가난했던 어린 푸치니가 피사에서 열리는 베르디의 오페라 공연을 보기 위해 루카에서 피사까지 걸어갔다고. 이 말이 사실일까? 나는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 보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가 해 준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6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학하던 푸치니는 1876년, 18살에 베르디의 "아이다(Aida)" 공연을 보기 위해 루카에서 피사까지 걸어갔다. 2)
이제 루카를 떠올리면 꿈을 위해 더 큰 세상으로 먼 길을 걸어가는 어린 푸치니가 떠오른다. 그 길을 걸으며 어린 푸치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슴에 꿈을 품고 걸었던 그 길이 힘겹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우연히 떠오른 기억이 되살아나고, 내가 길을 걷다 지칠 때에도 위로가 되어준다. 무엇보다도,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는 것처럼 외로울 때면 언제라도 꺼내보라고 든든하게 속을 채워준 여러 사람들을 기억해본다. 그때 우리는 같이 걸었고, 지금은 그 기억과 함께 걷고 있다.
1) https://en.wikipedia.org/wiki/Va,_pensiero 의 영어 번역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2) https://www.histouring.com/en/historical-figure/giacomo-puccini/
http://landofpuccini.it/braille/eng/sezioni.asp-idcat=1&idsez=11.htm
3)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Metropolitan Opera) 2001년 나부코 공연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https://www.youtube.com/watch?v=2VejTwFjw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