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민정 May 25. 2022

C.P. 카바피 <이타카 Ithaca >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

살다 보면 감당하기 벅차고 힘겨운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순간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 나의 삶에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진로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기도 한다. 원래 가고자 했던 길을 가보지 못하고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 아쉽고 조바심이 나지만, 나는 상황을 선택할 수 없고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삶'에 대해 한없이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런데 '삶'을 '살아간다'는 행동을 들여다보면 결은 달라진다. '삶'을 태어나서 살아가다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이라 생각하면, 그저 끝까지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선형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속도로 걸을지, 길을 걷다 다른 길이 나오면 어떤 길을 갈지, 무엇을 마음에 담을지, 무엇을 지나칠지, 이 모든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삶'을 '살아간다'는 행위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은 역경의 순간도 담담히 맞이할 수 있는 잠깐의 여유를 준다. 이 고난이 끝이 아니며, 지나면 길은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 Odysseus는 이타카 Ithaca의 왕으로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떠나는 그에게 이타카는 출발지이자 다시 돌아올 목적지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하는 길에 여러 바다를 떠돌며 기이한 일을 겪게 되고, 이 모험담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담겨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스 카바피(Constantine Cavafy, 1863-1933)의 시 <이타카>는 오디세우스의 이 여정을 시로 노래한다.


일단 출발지를 떠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목적지에 도착한들 그곳이 원래 생각했던 곳과 같을지도 알 수 없다. 출발지도 예전에 기억하는 그곳과는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길을 떠나기 전과 같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내가 그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다. 내 손으로 직접 낸 길을 거쳐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잠시 편안히 한숨을 돌려 본다. 오랜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 해변에서 자신만의 평온을 즐기는 오디세우스가 떠오른다.


< 이타카 Ithaca >

                      -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Constantine Cavafy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모험과 발견으로 가득하기를.

라이스트리콘, 키클롭스,

진노한 포세이돈을 두려워 마라.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

네 생각이 고결하고, 

숭고한 감동이

네 정신과 육신에 깃들면.

라이스트리곤, 키클롭스,

사나운 포세이돈 -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네가 맞이할 여름날 아침이 수없이 많으리,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서게 되면. 

페니키아 시장에서 멈춰 

고운 물건들을 사거라, 

자개와 산호, 호박과 흑단을, 

온갖 관능적인 향수를,

수많은 관능적인 향수를,

그리고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그곳에 이르는 것은 네게 정해져 있으니

그러나 절대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그 길이 오래 걸리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 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정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하여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다.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그 가득한 경험으로,

그때야 이타카의 뜻을 이해하리라.


Ithaka

BY C. P. CAVAFY

TRANSLATED BY EDMUND KEELEY

C. P. Cavafy, "The City" from C.P. Cavafy: Collected Poems. Translated by Edmund Keeley and Philip Sherrard. Translation Copyright © 1975, 1992 by Edmund Keeley and Philip Sherrard. Reproduced with permission of Princeton University Press.

Source: C.P. Cavafy: Collected Poem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5)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51296/ithaka-56d22eef917ec

매거진의 이전글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