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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수모(humiliation)

수모를 삼키고 나아가는 삶

by Stella Kim Feb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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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덮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차가운 시선, 혹은 갑작스러운 비난이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고 무력감 속에 가둔다. 수모는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자존감뿐만 아니라 우리가 쌓아온 사회적 위치, 타인과의 관계, 심지어 존재의 이유마저 흔들어놓는 감각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 수모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명예는 절대적이었다. 시민들은 공공의 조롱을 가장 두려워했고, 아테네의 정치가들은 한순간의 망신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도, 그가 당한 수모 때문이었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들 역시 한 번의 치욕이 곧 사회적 사망을 의미했다. 수모를 이겨내지 못하면 곧 몰락이었고, 가문의 이름을 더럽힌 자는 회복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에게는 결투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농노들에게 수모는 그저 감내해야 할 숙명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적 가치가 수모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가문의 이름을 더럽힌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수치였다. 수모는 개인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과 가족, 심지어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감정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수모의 형태는 변했다. 근대에 들어 인간은 더 이상 광장 한복판에서 공개적으로 조롱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모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방식이 정교해졌다. 계몽주의와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수모는 점점 더 내면화되었고, 사회적 처벌의 도구로 사용되던 공개적인 망신은 새로운 형태로 변모했다. 푸코는 수모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권력의 작용이라고 보았다. 그는 규율 사회에서 수모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중요한 도구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반복적인 모욕과 창피함을 통해 개인은 사회적 규범에 맞춰 길들여지고, 수모는 결국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프란츠 파농은 식민지배 아래에서 반복되는 굴욕이 한 사회의 정체성을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분석했다. 수모는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수모는 더 빠르게, 더 가혹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소셜미디어는 단 몇 초 만에 개인을 몰락시킬 수 있고, 정치적 논리는 상대를 망신시키는 방식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는 타인의 수모를 소비하면서도, 언제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연예인도, 아티스트도, 기업가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지드래곤 역시 수차례 대중의 시선 속에서 수모를 마주해야 했다. 그가 겪은 논란과 비난들은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도 있었지만, 대중은 때로 진실보다 조롱을 더 즐겼다. 그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순간들을 지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몰락을 기대했고, 그의 실패를 기정사실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경험 속에서 자신을 단련했고, 더 단단해진 것도 같다.


“난 나를 믿어.” 그의 가사처럼, 그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수모를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며, 때로는 수모에 압도되어 무너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겨내고 성장한다. 니체는 인간이 극복하는 존재라고 했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삶의 부조리 속에서 길을 잃고, 수모를 견디지만, 결국에는 그 경험을 딛고 나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수모를 웃어넘기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되새기며 더 단단해진다. 심리학자들은 수모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기연민과 재해석, 공동체적 연대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수모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수모는 우리를 주저앉힐 수도 있지만,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다.


나는, 나의 세계는 수모와 함께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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