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회사를 다녔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날이 굉장히 추웠던 날이었다.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퇴사를 하시게 되었다. 사실 퇴사라는 것은 회사를 정리하는 일인데 그분은 특히나 정이 많은 분이어서 회사를 많은 세월을 정을 주고 다닌 회사를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었던 것 같다. 어린 나의 시각에서는 잘리면 그냥 나오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분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퇴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는 회식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참 아이러니한 게 송별회라는 말인 것 같다. 떠나가는 마당에 떠나는 사람을 위해서 송별회를 한다는 것이 마냥 좋게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떠나는 사람에 대한 섭섭함과 아쉬움을 표하고 앞날의 행운을 바라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
-사전적 정의로서의 송별회-
의미는 좋지만, 내가 겪었던 송별은 다른 의미가 많았던 것 같다. 떠나는 사람은 둘째치고 회사에서 공짜 술을 먹을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았다. 회사가 크면 클수록 누가 나가고 들어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짜 고기와 술을 먹는 자리가 좋을 뿐, 그래서 옛말에 사람은 결국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의 송별회는 더욱 처참했다. 정작 송별회의 주인공이 빠진 자리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낯을 많이 가리던 그분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송별회에 불참하였고 이미 회식을 하자고 말한 부장님은 자신의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 회식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주인공이 없는 송별회는 더욱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도 애매모호해졌다. 그저 순종적인 몇몇의 직원들과 술을 좋아하는 술쟁이들이 공짜술을 얻어먹으려고 모인 자리가 되었다. 부장님은 주인공이 빠진 송별회의 이유를 연신 설명하였고 우리는 듣고 있지만 듣지 않은 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 부장님은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꼰대로 불렸었는데, 회식자리에 늘 가면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시는 분이었다. 듣고 있지만 듣지 않았는데 그날의 부장님은 우리에게 리액션을 바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거나하게 술이 취하던 중 많은 대화 중에 내게 들려왔던 이야기가 있었다. 평소에 조용히 일하던 직원분이었는데 그분이 최근에 아버지가 아파서 수술을 하시게 되어서 며칠 휴가를 내고 지방에 다녀왔더랬다. 대화의 소재가 없던 부장은 그 친구의 아버지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아버지가 어디가 아프셨는지 수술 후 어떻게 지내시는지 새삼 묻지 않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 어쩌고 계시고?"부장이 물었다.
"지금은 수술 마치고 지방에서 요양하고 계셔요."
"그래. 다행이네 연락은 자주 드리고 있고?"
"아뇨. 평소에 연락을 잘 안 해서"
"연락을 잘 안 한다고? 어째서?"눈을 빤히 뜬 체 부장이 질문을 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연락을 자주 하시니 저는 어머니를 통해 듣고 있어요."직원이 당황해하며 대답을 했다.
"아니 어째서? 자네 아버지 아닌가? 평소에 연락을 안 하는 게 말이 돼?" 부장의 당돌한 질문.
"아버지와 평소에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난 이해가 안 되네 부모님께 연락을 자주 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닌가? 심지어 아버님이 수술을 하셨다는데 연락을 안 한다니... 평소에도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인가 보네?"술 취한 부장은 목소리를 키워가며 흥분한 채 말했다.
"아니..." 직원도 더 이상은 그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던 같다. 중간에서 차장님이 부장을 말리기 시작했다.
"에이 부장님 요즘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00 씨가 무뚝뚝한 성격이라서 부모님한테도 그런가 보죠. 큰 수술도 아니라고 하고..." 차장의 말도 만만치 않았다. 저게 과연 누구를 위한 말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차장님이 부장을 말렸고 순간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그 후 우리는 말없이 고기를 굽고 회식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여전히 부장님만은 그런 분위기를 모른 체.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해야 하는데 자신이 살아온 삶이 맞는다고 믿으며 자신의 가치관이 맞는다고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구나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아닌데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럴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럴 수도 있지
자신에게 허용이 되는 것을 타인에게도 적용시켜보면 좋을듯하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라면 회식자리에서 가치관의 강요 따위는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직원에 입장에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한다면 저 부장님은 인생을 살아온 가치관이 그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인생은 모두가 다르고 저마다 하는 생각도 다르다. 다름에서 오는 매력이 충분히 있고 다름에서 오는 배움이 있는 것이다. 개미에게서도 배우라고 말한 것처럼 내 주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것이 맞는다고 강요하는 대신 타인의 가치관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자세. 나 또한 나이가 들어서도 이처럼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나아가 나이와 직책을 떠나서 모두의 생각이 그럴 수 있다는 존중을 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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