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었다. 남편의 목소리가 문 앞에서 내가 자고 있는 침실까지 들려왔다. 뭐라고 중얼대더니 하는 말은 비가 온다며 출근할 때 우산을 꼭 챙겨서 가라는 말이었다.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비가 온다는 것과 우산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이 출근 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나도 출근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매일 느끼는 거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일만큼 힘든 일은 없는 것 같다. 최근에 급격하게 쪄버린 비루한 내 몸뚱이 때문인지 아니면 전날 핸드폰을 오래 보다가 충전도 못 한 체 잠이 들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일은 꽤나 괴로운 일이다. 언젠가 몸이 건강해져서 티비 속 침대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아침에 거뜬히 일어나서 상쾌한 하루를 맞을지는 미지수다.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신발장 앞에 섰다. 분명히 남편의 말이 기억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선택은 우산을 챙겨가지 않는 일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꼭 청개구리 같은 게 마음 한켠에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다. 갖가지 핑계를 대본다. 문을 열어 바깥을 보니 땅바닥만 젖어 있을 뿐 비는 오지 않고 있다. 핸드폰으로 날씨 앱을 켠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흐림으로만 나온다.
'그래 그럼 필요 없겠네. 괜찮겠지.'
결국 나는 신발장 안에 버젓이 놓여 있는 우산을 버려둔 체 밖을 나선다.
비가 오지는 않지만 비가 온다는 걸 혹은 왔었다는 걸 알아서 인가 기분이 흐림이다. 비가 오면 슬프고 눈이 오면 기쁘거나 슬프고 또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쓸쓸하다. 기분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요동치는 거라지만 날씨의 영향을 받는 건지 내 기분의 요동에 날씨가 탓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기분이 흐려지는 날이면 옛 생각이 난다. 옛 생각, 주제는 다양하다. 노래 가사에 꼭 등장하는 단골 고객인 첫사랑이나 괴로웠던 전 남자친구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추억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특정한 날씨에 특이하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 경우에는 우산을 챙겨주던 그 사람이 떠오른다. 우산을 청개구리처럼 챙기지 않아서 비를 맞기 일쑤였던 나에게 잠시나마 우산이 되어 주었던 사람이었다. 과거는 힘이 없어서, 현재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지만, 가끔은 그때의 내가 그리고 그 순간의 존재가 그리울 때가 있다. 현재가 행복한 사람이라면 과거의 추억이 지나가는 미소에 불과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현재를 후회하게 되는 추억이기도 하겠지. 다행히도 나는 전자다. 이제는 그런 일도 있었어. 하고 웃어넘기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지금의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언젠가는 웃음 지을 순간이 될 수 있기를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Ps. 비가 안 올 것이라고 장담했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비가 내리고 있다. 그것도 주룩주룩. 날씨의 영향을 안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만은 더 영향을 받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