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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Jul 06. 2017

7. 옥토스 대령과 보석섬 - 2


 물길은 점점 드넓어지며 망망대해로 향하였다. 수면 위의 빛을 따라가자 매우 반짝거리는 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그만 바위섬이었는데 양쪽의 두 봉우리와 가운데 얕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갖가지 보석 결정체들이 마치 땅을 덮은 풀처럼 빼곡히 섬 표면에 박혀있었다. 이름 그대로 ‘보석섬’이었다.


 높은 천장 어디선가 한줄기 섬광이 비춰들고 있었다. 그것은 섬 중앙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결정체에 집중하여 쏟아져 내렸다. 거기서 반사된 빛이 옆의 에메랄드로 넘어가고, 또 거기서 반사된 빛이 다시 사파이어를 비추는 등, 마치 섬 전체가 하나의 보석 브로치나 된 것처럼 어둠 속에서 홀로 광채를 발하였다.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안식처(=배의 이름)가 목적지의 선착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섬 바닥에는 물이 여기저기 고여 있고 꽤 큰 물웅덩이도 여럿이었다.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각양각색의 보석들에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은 그제야 테이프를 떼라는 대령의 명령이 귀에 들어왔다.


“제군들이 서 있는 이곳은 바로 ‘보석섬’이다. 낮에는 저절로 솟아나 모습을 드러내지만 밤에는 물속에 가라앉으며 사라지지. 여기를 와본 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하지만 스톰펌 왕의 끈질긴 요청으로 억세게 운이 좋은 제군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왕께서 포상을 하나 더 내리셨다. 어이, 거기 놓여있는 걸 이리로 좀 가져와봐.”


 대령이 사파이어 결정체 옆에 놓인, 검은 비닐로 꽁꽁 싸맨 짐을 고개로 가리키자 수진은 날렵하게 움직여 그 앞에 갖다 놓았다. 그의 명령대로 펼치자 안에 8개의 헝겊 주머니가 들었는데 참가자의 이름이 각각의 겉에 적혀있었다. 대령이 앞으로 나와 자기 것을 챙기라 하자 그들은 부리나케 자기 이름을 찾아들었다. 주머니 입구를 봉한 끈을 풀자, 안에 망치 하나와 끌이 들어있었다.


“여기 망치와 끌, 주머니가 있다. 귓구멍을 파고 잘 들어라... (그가 몇 초 말을 쉬는 동안 아이들은 정말로 귀를 팠다.) 제군들은 여기 있는 원석 중, 딱 한 덩어리만 가져갈 수 있다. 그 기준은 여러분의 엄지손톱 크기이다. 마음에 드는 원석을 사이즈에 맞게 캔 후 지금 나눠준 주머니 안에 집어넣는다. 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들어라. 아무도 할당된 양과 크기를 넘겨 가져갈 수 없다. 그러니 절대 욕심내지 말도록.”


 우란 미스가가 손을 들고 입을 삐죽거리며 강한 불만을 호소했다.


“대령님께 충성, 저희 딥언더니아인은 다른 이보다 손이 작아서 손톱도 작습니다. 같이 고생하며 왔는데 보석 크기가 다르다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더군다나 안젤라를 보시면 엄지손톱이 아주 길어요. (뱀파이어는 대체로 손톱이 아주 길다. 이안은 아니지만.) 이 또한 공평하지 않잖아요?”


 안젤라가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뱀파이어를 두려워하는 평상시와 달리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역시 반짝이는 보석을 엄청 좋아하는 난쟁이 딥언더니아인의 피가 흘렀던 것이다. 대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그들에게 나누어준 쇠망치 머리 부분의 평평한 쇠못에 시선이 멈추었다.


“그럼 여기 쇠못의 머리 크기 이하로 정한다. 어때, 공평하겠지? 한 시간을 줄 테니 어서 작업을 시작해. 난 잠시 식사를 하고 오겠다.”


 그가 말을 마치며 사라지자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각자 마음에 드는 보석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뜬 채 섬 구석구석을 열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안은 돌아다니다가 항상 걸고 다니는 목걸이 보석과 비슷한 피전블러드 루비를 선택하였다. 카할은 이안이 발견한 루비 맞은편에 있던 블루 다이아몬드를, 해마는 블루 사파이어를, 안젤라와 왕허준은 투명한 다이아몬드를 선택했다. 티앤 단까오는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인 녹색 에메랄드를, 우란 미스가는 분홍 다이아몬드를 골랐다. 


 보석을 정하는 것은 그런대로 쉬웠지만 문제는 대령이 정한 사이즈에 맞게 결정체를 캐내어 다듬는 과정이었다. 절대로 못의 머리보다 크면 안 되었기에 딱 그 크기에 맞게 단단한 끌로 깨트려 조심히 다듬어야 했는데 다들 처음 해본 지라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매우 힘들어했다. 

 

 그런 와중에도 수진은 아직 자신의 보석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이리저리 섬을 둘러보던 중, 옅은 하늘빛을 띠는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원석이 얕은 물구덩이 안에서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욱 신기한 건 누군가가 버리고 갔는지 둥글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것을 끄집어내자 물속보다 더 아름답게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거렸다. 망치 못 머리에 대보니 사이즈도 딱 기준에 맞았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캠프에 오길 정말 잘했어. 이런 행운이 다 있다니.’ 


“와, 아쿠아마린이구나. 이거 굉장히 귀한 보석인데.”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티앤 단까오가 그녀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흥겹게 말하였다. 그 말에 더욱 신이 난 그녀는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그에게 싱끗 웃어주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돌연 차갑게 식는 것이 아닌가? 꼭 체한 사람처럼 식은땀까지 흘리던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이안과 서로 팔이 부딪쳤고, 그는 사과 한마디 없이 급히 지나쳐갔다. 이안이 멈춰 서서 인상을 쓴 채 그를 흘겨본 후 그녀에게 다가와 따지는 투로 물었다. 


“쟤가 뭐라 그랬어?”


“이것이 아쿠아마린이라고 매우 귀한 거래.”


“그것뿐이야? 근데, 쟤는 왜 저리 급히 가는 거야?”


“몰라. 갑자기 속이 안 좋은가 보지, 뭐.”


 자꾸 그녀에게 시근덕거리며 접근하는 티앤 단까오가 영 신경이 쓰이는 이안은 다시 한번 그의 뒷모습을 째려보았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바로 그를 포함시켰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먼 해안에서 높은 물기둥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기둥 뒤로 옥토스 대령의 육중한 몸체도 보였다. 그가 맹렬히 헤엄쳐 달려오자 옆으로 큰 파도가 일며 함께 따라왔다. 그는 멈추었고 파도가 섬 중앙까지 파닥 들이닥쳤다. 겨우 옷이 말라가던 아이들은 다시 흠뻑 젖어버렸다. 대령은 섬 앞의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근 채 그들을 재촉했다.


“모두들 선착장 앞으로 집합! 더 이상 시간은 없다. 주머니 들고 어서 줄을 서라. 검사를 시작할 테니. 너 이리 나와 봐!”

 

 제일 앞줄에 선 카할이 주머니를 들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물에 들어갈 테니 숨 좀 참아.”

 

 대령은 말을 마치자마자 매끈한 발로 그의 왼쪽 다리를 휙 감아올리더니 깊은 물속으로 풍덩 집어넣었다. 컴컴한 물속에서 조그만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바로 주머니 안에 넣은 보석에서 품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확인을 마치자 그는 물 밖으로 올려졌고, 대령은 발을 길게 뻗어 섬에서 꽤 멀리 정박해있는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안식처’에 그를 내려놓았다. 


 다음으로 왕허준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대령은 그를 들어 올려서는 다른 이보다 훨씬 더 세게 물속으로 푹 집어넣었다. 


“왜 이리 무거워? 얼마나 처먹고 살았으면.”


 그런데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몸 여기저기서 노란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것이 아닌가? 흡사 올림포스의 신이라도 된 듯, 50곳 정도에서 눈부시게 빛이 품어져 나왔다. 대령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그를 다시 섬 위에 떨어뜨리며 마구 화를 냈다.


“이 놈! 많이 처먹었을 뿐 아니라 욕심도 끝이 없구먼. 당장 보석들을 털어내지 못해? 그리고 주머니 안의 것도 너무 크잖아? 분명 쇠못 머리 크기 이하라고 했는데 귀가 먹었나? 당장 다 빼지 않으면 여기에 놔두고 갈 줄 알아!”


“난 이래 봬도 오나시아의 왕자야!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없다고. 내가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는 거야!”


 왕허준이 띠룩띠룩 살찐 얼굴을 찡그리며 크게 불평했다. 대령은 아까보다 더 노하여 그의 양쪽 발목을 확 휘감더니 그를 거꾸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심하게 털어대자 왕자의 몸에서 보석들이 과일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네가 오나시아의 왕자라면 난 이 섬의 황제야. 당장 남은 보석을 내놓지 못해! 안 그러면 남들 보는 앞에서 바지를 확 베껴버릴 줄 알아!”

 

 왕자의 얼굴은 분노로 씰룩거렸지만 더 이상 고집을 피워 받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는 팬티에 넣은 하나까지 다 털어냈다. 바닥으로 내려진 그는 상체를 푹 숙이더니 대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시면 기준에 맞는 보석을 얼른 찾아가지고 오겠습니다, 대령님.”


 그가 손발을 싹싹 빌며 공손히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령은 냉정히 거절했다. 대령은 그를 들어 바로 배에 태웠다. 빈손이 된 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으나 이미 게임오버였다.


 다음 차례인 이안이 앞으로 나서는데 바로 뒤에 섰던 안젤라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대령이 허락하자 그녀는 급히 섬의 봉우리 뒤편의 후미진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옷 속 여기저기에 숨겨놓았던 보석들을 마구 떨궈냈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오다가 제일 뒷줄에 선 수진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음흉한 미소를 띠며 그녀는 땅에 떨어진 골프공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수진의 뒤로 몰래 다가갔다. 그녀는 줄을 서는 척하며 뱀파이어의 날렵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단체티셔츠 등짝에서 길게 풀어져 나온 붕대 끝에다 그것을 재빨리 매달았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수진은 당당한 걸음으로 나아갔다. 숨을 있는 힘껏 들이마신 후 대령의 문어발에 몸을 맡겨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녀의 주머니뿐 아니라 등짝에서도 훤한 빛이 새어 나오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그녀는 순간 당황하여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물을 꿀꺽 삼켜버렸다. 다시 섬에 올려진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는 대령. 그는 그녀의 손에 들린 다이아몬드를 향해 아까 왕허준 때보다 더 심하게 호통을 쳐댔다.


“얘 좀 보게. 겉모습은 순진해선 등에 몰래 매달았단 말이지. 이런 욕심꾸러기 같으니라고. 얼른 내놓지 않고 뭐해!”


“이건 제 것이 아니에요. 제 것은 주머니 안의 아쿠아마린뿐이라고요. 정말이에요.”


“어쭈, 울긴 왜 울어? 지가 잘못한 주제에. 이 욕심꾸러기야, 운다고 봐줄 줄 알아? 너 역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어.”


“제 것이 아니라니까요? 전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전..잘못하지 않았어요. 제발 믿.. 믿어주세요, 제발요!”


 그녀의 흠뻑 젖은 얼굴 위로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두 손을 모아 애처롭게 애원했다. 그러나 대령은 냉혹했다. 한번 아니면 칼같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군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그녀의 주머니를 낚아채어 뒤로 훽 내던진 후 그녀를 바로 배에 태웠다.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 너무나도 억울한 나머지 그녀는 구석에 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면 마치 그녀의 부모가 돌아가신 줄로 충분히 착각할 수도 있으리라. 


 이안은 멀리서 쳐다볼 뿐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카할과 우란이 그녀의 어깨와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었다. 마침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를 손에 든 안젤라가 대령의 발에서 떨어져 배 안으로 우아하게 착지했다. 그녀는 수진을 흘끗 쳐다보고는 고소하다는 표정을 띤 채 이안의 옆으로 다가갔다.


“쟤가 저렇게 욕심이 많을 줄 몰랐어. 얼굴은 순진하게 생겨가지고, 그치?”


 무표정한 얼굴의 그가 말을 마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처음엔 매혹적인 미소로 그의 시선에 답하였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 그녀는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데 그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자신 쪽으로 훽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귀에 거의 스칠 정도로 매우 가까워졌다. 


“앞으론 절대 그러지 마.”


 그의 위협적인 어조에 깜짝 놀란 그녀는 애써 담담한 척 억지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다른 구석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둘의 그런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카할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안식처’가 출발하고 나서야 이안은 수진에게로 다가왔다. 카할은 혼자가 된 안젤라 옆으로 슬쩍 떠나고 우란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눈물 콧물로 엉망진창이 된 그녀의 얼굴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침을 튀겨가며 다시 서럽게 엉엉 울다가 이내 흐느끼며 말했다.

 

“내가 안 그랬어. 정말 안 그랬다고.”


“알아. 그러니 울음 좀 그쳐. 대신 내 루비 가질래? 알다시피 나한텐 이미 좋은 게 있잖아.”


“됐어. 이젠 보석이고 뭐고 꼴도 보기 싫어.”


 그렇게 울고 나서도 여전히 화가 다 풀리지 않은 그녀에게 그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그저 옆에 가만히 앉아주었다. 그녀 스스로 화를 푸는 수밖에. 옥토스 대령은 뒤에서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이전과 달리 훨씬 수월하고 편안하였다.



     

 푸다크 별궁으로 돌아온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 만찬이 차려진 홀로 모여들었다. 위원장은 저번처럼 식탁 가장자리의 가장 상석에 앉았다. 이번엔 실크롱이 그의 옆자리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들었다. 실크롱은 최고 스피드로 급히 식사를 마치더니 피곤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위원장은 그제야 참가자들을 향해 흐뭇한 미소로 말을 건넸다.


“자, 오늘 원석 하나씩 가지고 왔겠지요? 잘 간직했다가 요긴할 때 사용하세요. 참고로 한 가지 알려줄 점이 있는데, 보석섬을 나온 원석은 세 달 뒤면 시커먼 돌로 변합니다. 그러니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반지에는 제발 박지 마세요. 하하하.”


 모처럼 얻은 보석으로 기뻐했던 것도 잠시, 천장에 금이 찍찍 그어지더니 참가자들 머리 위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럼 그렇지. 공짜로 줄 리가 없지’라는 겸연쩍은 표정들이었다. 그런 눈치를 바로 알아차린 그가 통쾌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너무 실망할 건 없습니다. 세 달 안에 팔면 되거든요.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몰래 팔아서 용돈으로 쓰면 그만이잖아요?”


 공짜 용돈이란 말에 실망했던 그들의 얼굴에 새로운 희망의 서광이 비춰 들었다. 시커먼 돌로 변한다고 좋아하던 허준과 수진의 속은 반대로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거절했던 이안의 루비가 떠올랐다.


‘그냥 받을걸. 다시 달라고 해볼까?’ 

 

 허준은 보석뿐 아니라 사람이 아닌 문어, 그것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미친 것한테서 받은 모욕으로 왕자 체면이  깎아내렸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이 그의 입안으로 게걸스럽게 부어지고 있었다. 

 위원장이 후식으로 나온 아몬드가 가득 든 푸딩을 입에 넣은 채 말 몇 마디를 하고 있는데, 그만 아몬드 조각 하나가 잘못 씹혔는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 오른쪽으로 붕 날아가더니 그쪽에 앉은 허준의 왼쪽 뺨에 가 딱 달라붙었다. 위원장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냅킨을 내밀어 그것을 떼어 주었다. 하지만 기분이 매우 좋지 않던 허준의 얼굴이 붉어지고 온몸에서 내쉬는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 곧 그의 코와 입, 귓구멍으로 내부에서 폭발한 활화산 증기가 핑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위를 향해 크게 화를 냈다.


“왕자를 뭐로 알고 감히 나한테...”


 그는 쪼르르 달려가 자신의 방문을 쾅 닫으며 들어갔다.


“거참 예민하게 구네. 식사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자리에 앉은 버핏이 투덜거리며 남은 푸딩을 마저 퍼 먹었다. 이번엔 아몬드가 튀지 않도록 입을 꼭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리를 불쑥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오나시아 왕자한테 잘 보여 나쁠 건 없잖아. 나도 위원장이라는 계약직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혹시 알아? 나중에 내게 그럴싸한 정규직 자리 하나 제공할지? 그런데 그런 무례를 겸했으니. 식사 마치고 찾아가서 그에게 공손히 사죄해야지. 다시는 절대로 그의 옆에서 아몬드 푸딩을 먹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는 정규직을 얻은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실실 쪼개었다. 그런데 감히 어떤 이가 질문을 던져 그의 달콤한 상념을 깨뜨렸다. ‘도대체 누구야?’ 그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주위를 노려보았다.

    

“내일 일정은 어떤가요? 왜 미리 알려주지 않죠?”


 이안이 마시던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잔 안에 든 것은 쥐피) 물었다. 위원장은 헛기침을 한 후 짜증이 난 눈초리와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미리 알면 재미없잖습니까? 하지만 특별히 살짝 알려드리지요. 오전엔 실크롱의 강의를 듣고, 오후엔 딥언더니아 왕국에서 최고의 광부와 함께 석탄광산으로 향할 예정입니다. 딥언더니아가 석탄 수출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동맹에서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이 여기 딥언더아에서 캔 것이지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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