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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Oct 08. 2019

위로를 만드는 '연결'의 스위치

연결되어 있음을 챙기고 즐겨라!

나도 모르게 나를 기도하고 있었다. 

한 2년 가까이 배가 아팠다.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가도 소화제 외에는 다른 처방이 없었다. 내시경과 초음파, CT를 찍어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딱 살 만큼만 갑갑하고 아팠다. 지루한 통증으로 약간 지친 마음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상을 올린 적이 있는지 미국에 계신 페친이 새벽기도마다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댓글이 달렸다. 기간을 정해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거다. 참 오래 유지되어 온 초창기 페친이긴 하지만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었다. 다만 오래된 페친이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커 오고 있는지도 알고 계신 분이긴 했다. 그래도 의외였다. 감사한 마음은 너무 당연했고 뭐랄까 든든함, 행복감, ‘살만 하구나’ 하는 느낌, ‘통증을 견딜 만 하구나’하는 자신감과 함께 큰 위로를 느꼈다. 몰랐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촘촘하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무엇과, 누구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일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은 견딜 만 해진다.  아니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고 지금도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일상이 마냥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찾지 않거나 바라보지 않는 일상의 버릇 때문에 연결을 인식하는 수용기가 퇴화된 것뿐이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SNS로 쉽게 연결되는 시대라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듯해도 그 영혼 없는 느슨한 연결이 상처가 될 때도 많다. 하지만 그 느슨한 연결이 실제로 강력한 연결을 이끌어 낼 때가 종종 있다. SNS의 푸념 섞인 글에 만난 지 30년도 넘어가는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고등학교 때 가슴 아픈 일이 있어 학교를 가지 않았는데 내가 집까지 찾아와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평생 그 말에 위로를 받으면 살고 있다고 했다. 사실 1초의 순간도 기억나지 않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일이었다. 나도 원하지 않게 누군가와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30년 동안 한 번도 기억하지 못했던 그 연결을 인식하는 순간, 갈등과 푸념을 날아가버린다. 누군가의 지지와 인정이 나에게도 늘 있었구나 싶었고 감사했다. ‘긍정적인 연결감’을 찾는 것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데 인식하지 못하고 활성화되지 못한 채 위기나 위로의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태어나 하나의 객체가 되면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었지만 불안하고 파도를 타는 심리적 위기감을 늘 가지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무리나 집단에 소속되어 그 위태로움의 안정장치를 만들며 살지만 그 속엔 또 다른 단절의 갈등과 아픔이 있다. 생존을 위한 연결을 벗어나지 못하는 절망감,  형식적 연결에 나의 존재가 소외되어 가는 단절감을 쉽게 느낀다. 그래서 내 마음과 이어져 있는 '연결감'을 찾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행위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하루 한 끼의 밥을 먹듯이 말이다. 마음의 안정과 확장을 위해서 연결감을 느낄 스위치! 

누구에게나 연결을 위한 '큐'를 가지고 있다. 

 영화 아봐타에 나오는 나비족은 같은 종족이나 동물, 자연과 연결할 수 있는 ‘큐’를 머리끝에 가지고 있다. 동물을 탈 때도, 식물과 교감할 때도, 종족끼리 사랑과 정신적 연결을 위해서도 이 큐를 연결시킨다. ‘샤헤일루(Tsahaylu)'라는 행위를 통해 나비족은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고 보다 큰 존재로 확장한다.  인간의 뇌에서 그냥 존재할 수 있는 시냅스가 서로 연결되고 활성화되면서 무한한 확장과 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우리도 누군가와 마음을 연결할 '큐'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활성화된 뇌의 시냅스가 사용하지 않아 굳어버리는 것처럼 일상의 경쟁에서 밀린 우선순위로 퇴화되었을 것이다.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 번에 스위치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일상에서 연결감을 살리자고 말하니 옆에 있던 지인이 추억 하나를 이야기해 준다. 너무 나쁜 스케줄에 쫓기며 숨가프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스트레스로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자료를 찾다가 20년 전 유학할 때의 책을 뒤지다 보지도 않던 사전에서 잊고 있었던 선배의 쪽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20년 전, 도서관에서 선배가 남긴 장난기 섞인 메모였다. "공부 안 하고 침 흘리면 잡아간다~" 아무것도 아닌 메모를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단다. 그때보다 훨씬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데.. 나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있었는데..."지금 난 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 쪽지가 바쁜 일상에 스스로 잊혀가는 자신을 위로하더라는 것이다. 그때 선배의 기억과 연결되면서 잠시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챙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일정한 시간을 내서 과거의 사진을 감상하는 시간은 빼놓지 않고 챙긴다고 했다. 

 


주기적으로 귀중한 것과 연결하는 의식들이 필요하다.     

시나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묘한 충전감, 든든함, 카타르시스는 어떻게 오는 것일까?

그 글 속에 연결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같을 수도 있고 내 경험과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의 위로가 그 속에 있다. 그렇게 글 속에서 생각과 마음, 경험이 연결되며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느끼게 된다. 자연으로 들어가거나 하늘, 산, 들 풍경에 빠져 있으면 우리의 뇌파는 자연스럽게 안정된다. 물론 심장박동과 혈압도 같이 동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자연의 파동에 맞춰서 사람의 인체 내부도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씽잉볼과 같은 안정적인 소리의 파동을 듣고 몸으로 느끼고 있으면 우리의 몸은 비슷하게 동기화되면 안정된다. 모두 긍정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안정감과 회복력을 갖는다. 보다 더 큰 의미와 존재를 느끼며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만들 수 있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평소에 누리지 못했던 훨씬 큰 위안과 평안을 만들어 주는 도구가 된다. 사람, 자연, 기억, 추억 그 무엇이든 연결하면서 연결의 시냅스를 활성화시키는 일은 하루를 접으면 잠을 자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누일 곳을 만드는 일이다. 영혼에 산소를 공급하는 가장 좋은 일이 주기적으로 귀중한 것과 연결하는 의식들이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행복한 의식을 많이 한다고 한다. 잠시 시간을 내어 바람이 부는 탁 트인 공간에 얼굴을 내밀고 바람을 기다리며 자연과 연결하는 의식조차도 모두 행복을 만드는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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