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지치지 않고 흘러가기
진짜 힘들 때, 해도 해도 도무지 답을 없을 때 우리는 “몰라, 몰라 나도 몰라”라며 포기하는 순간이 있다. 때때로 이런 순간이 약이 된다. 걱정과 문제가 풀렸다기보다는 이런 틈을 통해 원하지 않게 잠시 쉰다. 운이 좋다면 그 틈을 통해 해답을 얻기도 한다. 옆으로 여는 문을 당기거나 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이없이 깨닫는 순간이기도 한다. 감각이나 감정에 묶여 있는데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할 때다. 감정의 문제를 이성으로 풀려고 할 때 우리는 쉽게 지친다. 문제를 풀려는 마음에 집착하다 보면 감각과 감정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기 쉽다. 그래서 오히려 감정에 묶인다. 감각과 감정은 “쉬어라”, “그건 아니야”, “다른 곳을 한 번 봐”라고 말하고 있지만 알아차리기 힘들다. 힘든 순간을 그냥 받아들이고 허용할 때 오히려 일이 잘 풀릴 때가 많다. 고민이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포기라는 양식을 빌려 인정하고 허용할 때 묶였던 곳에서 풀려난다. 때로는 도전이나 저항보다는 포기가 유익할 때가 있다.
비틀즈의 렛잇비(Let's it be)가 위안이 될 때가 많다. “내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다가와 지혜를 말씀을 해 주신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암흑의 시간 속에 있을 때 내 앞에 서서 지혜의 말씀을 해 주신다. 내버려 두고 순리에 맞기라...” 진짜 힘들 때 이 노래와 가사를 듣고 있으면 막혔던 하수구가 뚫려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눈물이 왈칵 흐를 때가 있다. 우리의 의식이 투쟁하고 있을 때는 그 대상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에 갇히고 문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망치를 들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항상 판단하고 분별하느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집착하느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지치고 우울해지는 모른다. 매듭을 푸는 것보다 매듭을 끊어 버리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힘들고 우울할 때 그 원인을 찾으려 할수록 우울은 깊어진다. 힘든 현실을 부인하고 회피하려고 할 때 절망의 덩치는 커진다. 고통이나 감정은 인정하고 허용할 때 오히려 그 힘을 잃어버린다. 즐겁고 만족스러운 것은 끌어당기고 고통스러운 것은 밀어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것은 나쁜 것이라고 규정하고 무조건 밀어내려고 할 때 고통과 더 치열하게 싸우고 그 속에 묻힌다. 오랫동안 어깨의 통증으로 고생하며 얻은 선물이 하나 있다. 모든 순간을 인정하고 허용하려는 ‘의지’다.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통증이 유발되는 부위를 원수라도 만난 듯 집착해 싸우다 보면 통증은 더 커지고 증폭된다. 포기하고 내버려 두는 지혜에서 우리는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볼이나 요가 동작을 통해 압력을 가하고 그 통증을 고요히 바라보며 허용할 때 오히려 편안해질 때가 많다. 이때부터 힘들고 거부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애써 허용하려는 힘이 생겼다. 저항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외에 한 가지 기술이 더 생긴 셈이다.
“경험과 새로운 관계 맺기”, 만성통증을 치유하기 위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배우고 연구한 명상을 통해 배운 지혜 중에 하나다. 고통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해결하려고 저항할 때 통증은 더 커지고 민감해졌다. 만성통증은 더 깊게 뿌리내리고 평온한 일상을 완전히 장악해 버리기 쉽다. 통증이 생기면 이것을 나쁜 것으로 생각해서 무조건 피하고 없애려고 하다가 잘 되지 않으면 고통은 더 강해진다. 실제 감각이 만들어 내는 통증보다 이것을 불행하게 생각하고 없애려는 마음의 통증이 더 컸다. 한 번도 그 통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의 통증과 싸움만 커졌다. 통증을 해결하려다 통증을 바라보는 내 감정을 한 번도 돌봐주지 못했다. 통증을 허용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순간 통증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는 감정이 위로되고 전체 통증은 줄어들 수 수 있었다. 고통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무조건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감각이나 감정과 똑같이 그저 경험하는 것이다. 통증을 허용하고 인정하며 그대로 느낄 때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을 찾고 더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사람들의 불안을 극복하고 회복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라는 것이 있다.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 감각을 먼저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불안한 경험을 거부하지 않고 인정함으로써 관찰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이때 불쾌한 경험과 싸우지 않기 때문에 일단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경험을 과장하지 않는다.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있고 불안에 압도되지 않고 적절히 대처할 힘도 생긴다. 감정적인 부분은 쉽게 과장되고 증폭된다는 사실과 곧 사라지는 대상임을 알게 된다. 불안을 무조건 피하고 제거하려는 성급한 마음 때문에 불안을 증폭하고 지속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힘들고 막힌 순간에 인정하고 허용하는 순간을 늘려 나갈 때 불필요한 대치는 사라지고 오히려 잘 흘러갈 수 있다. 포기하고 내버려 둔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묵여 있던 것이 풀리면 내가 나아가지 못한 이유와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이 더욱 선명해진다. 인정하고 허용하는 순간을 선택하는 용기는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한다. 현재의 불안과 아픔을 인정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바라볼 힘이 생긴다. 힘든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는 오늘의 아름다움을 볼 여유나 의지도 잃어버린다. 고통의 순간도 인생이란 타임라인에서 소중한 나의 순간들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과 성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