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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Oct 21. 2019

관계의 가지치기

관계의 만족보다 비우고 솎아 낼 용기를 길러야 할 시점

인연 함부로 맺지 마라! 솎아내기

 농사를 짓기 위해서 시골로 온 것은 아닌데 이사한 집 뒤에는 감나무가 일곱 그루가 있었다. 정신없이 솟아 나온 감나무 가지를 자르다 보면 갈등이 이만저만 아니다. 가지를 잘라주지 않으면 쓸데없는 가지에 양분이 모두 소진되어 과실이 제대로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험이 없는 사람이 가지를 자르다 보니 어떤 가지를 자르고 남겨야 할지 모른다. 잘 다듬어진 수형 좋은 나무는 쓸데없는 가지가 많이 나지 않는다. 반면에 마구 잘린 굵은 가지들 틈에서는 정신없이 가지들이 쏟아지듯 나온다. 가지를 자르는 법을 배웠지만 도무지 어떤 가지를 잘라야 하는지 내내 갈등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 사람이 사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구 흩어져 솟아 있는 가지가 살면서 얽혀있던 인간관계 같다. 서로 얽힌 가지는 나무에게도 스트레스다. 그래서 서로 얽혀서 피해를 주는 가지를 먼저 잘라준다. 자르려고 하면 이것도 과실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자르기 힘들다. 과실나무나 조경수나 가지를 칠 때 전문가들의 공통점은 참 거침없다는 점이다. 많은 경험에서 그들은 소탐대실하지 않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가지를 칠 때뿐만 아니라 열매가 달릴 때도 ‘솎아내기’를 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어지는 결실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법정스님의 ‘인연 함부로 맺지 마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배신감이든 실망이든 아픔을 격은 사람들에게 아이러니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다. 법정스님은 “인연의 아픔과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다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진실 있는 사람이나 인연을 구분하는 것은 가지치기보다는 훨씬 힘들지만 ‘관계의 가지치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도 어렵고 난해한 문제다. 


관계에 얽매이는 운명

 70년 넘게 특정 집단을 종단 연구하며 인간의 행복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던 ‘그랜드 프로젝트’의 결과는 ‘관계’, ‘사랑’이었다.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은 사랑과 관계에서 오는 만족이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큰 아픔을 주는 것도 관계다


독일의 젊은 뇌과학자 프란카 파리아넨(Franca Parianen)이 쓴 ‘나의 뇌는 나보다 잘났다’의 많은 내용에서 인간의 뇌가 커진 것은 사회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관계 속에서 접촉하고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개발되고 조절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타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 관계 속에서 살아갈 동기를 얻고 관계에 만족할 때 뇌에서는 도파민, 엔도르핀, 옥시토신과 같은 활력과 행복감을 만들어 내는 호르몬이 분출된다. 그래서 인간은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관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사람과의 접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타인과의 관계가 생존이나 개인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미래의 담보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운명적이다’고 말할 정도로 관계는 중요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가 주는 위안과 만족, 쾌감에 중독될 수 있다. 피로한 사회의 단면에서는 이러한 중독적 관계의 집착이 있다. 단지 그 집착을 그때그때 포장하며 살 수밖에 없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사람에게 관계가 중요하다 보니 고통의 많은 부분이 관계 때문에 발생한다. 감당할 수 없이 솟아 오른 가치들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나무처럼 얽힌 관계를 지탱하는 것이 역부족일 때가 많다. 학교에서 인간관계론을 가르치다 보면 방어적이고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 힘든 학생들을 많이 만나다. 순수했던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이미 관계 때문에 겪었던 상처가 넝쿨처럼 자신들의 발을 묶고 있는 듯하다. 비단 젊은 20대 만의 아픔일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가장 좋은 관계는 그 속에서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는 관계다. 타인을 위해서 힘들게 자신을 내어주어도 결국 만족하고 행복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관계가 중요하다고 모든 관계에 온 힘을 쏟고 원하지 않는 것에 자신을 내어주다 보면 관계는 많은데 그 속에 자신이 없다. 좋은 관계는 그 속에 행복하고 의미 있는 자기 자신이 있다. 그저 감각적으로 즐거운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이다. 관계는 많은데 어떤 필요성과 이익 때문에 이끌리는 관계가 많다면 분명히 기(氣) 빨리는 관계가 되기 쉽다. 많은 관계를 만들지만 행복한 자기 자신은 없고 의무만 남아서 파편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관계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사람이 느끼는 것은 피곤함과 허무함일 가능성이 높다. 더 좋은 관계를 위해서 관계도 나에게 맞도록 선택하고 선량한 가지치기를 할 필요가 있다. 


자기 소외 속에서도 중독된 관계의 집착

존중이 사라지면 관계는 수단화된다.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타인의 목적과 누군가에게 수단화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쉽다. 인간에게 관계가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존중의 증거는 배려다. 배려가 별 것은 아니고 상대가 생각하고 행동할 때 나의 입장을, 나의 존재를 고려하느냐다. 누군가도 나를 필요로 하고 나도 그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좋은 관계 속에서 자기중심을 넘어 더 넓게 확장되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관계의 양이 많아질수록 관계의 질적인 부분에 더 몰두해야 한다.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 경쟁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 자신을 내어 보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투자되는 관계는 양적으로 팽창하는 관계를 만든다. 그 많은 관계 속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관계는 불가능하다. 거기다 이런 관계는 긴장의 강도도 높다. 양적으로 팽창하는 이런 관계를 가지치기하지 못하면 진실되고 밀도 있는 관계가 오히려 느슨해진다. 


사람들이 관계에 집착하는 것은 뇌의 보상회로가 크게 자극되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에서 만족과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이런 보상회로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관계 때문에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는 것인지 관계의 혜택이나 성과 때문에 활성화되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관계가 만들어주는 유리한 이익과 효율적인 성과 때문에 만족을 느끼는 것을 사람과의 관계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수단화된 관계 속에서 자기 소외를 느끼면서도 관계에 집착하기도 한다. 자기 소외와 불안감을 자주 느끼면서도 그 관계를 중요시한다면 집착이고 중독이다.  이때 관계를 선택하거나 가치 치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게 된다.


관계라는 습관에 분별과 용기도 필요

 최인철 교수의 <굿 라이프>에 보면 그의 연구팀이 수행했던 흥미로운 실험이 소개되어 있다. 행복한 사람들과 덜 행복한 사람들을 나눠서 행복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반납하는 대가로 얼마를 받고 싶은지 물었다. 그런데 행복감 높은 사람들은 행복감 하위 50% 미만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액수를 요구했다.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높은 가치를 매겼다. 물질적 보상이나 기대에 익숙해진 관계를 가지 치고 진정한 행복감을 주는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름대로 필요하고 의미 있다고 판단한 관계들이지만 때로는 멀리 떨어뜨려 혼자가 되어 관계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연결된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관계인지, 내가 선택한 관계인지 보다 명확해진다. 가끔 수많은 관계를 무시하고 오로지 관계 속에서 나를 느끼는 사람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 관계의 가지를 끊기가 쉬워진다. 관계도 습관이다. 어떤 관계 속에 사는가도 습관이다. 그 습관은 인연을 함부로 맺지 말라는 분별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듯하다.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해내야 할 일은 없고
내 마음에 상처를 줘가면서까지 지켜내야 하는 관계는 없다
-임경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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