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월드클래스’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감독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이다. 이 책에서 ‘담박하다’라는 단어를 새롭게 배웠다. ‘담박하다’의 ‘담’은 ‘엷다’, ‘조촐하다’라는 의미를 지녔고, ‘박’ 역시 ‘조촐하다’, ‘산뜻하다’의 뜻을 가진다. 손웅정 감독의 정의에 따르면,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한 상태’이다. 그는 삶을 대함에 있어, 언제나 담박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반면, 나의 삶은 산만하고, 즉흥적이었다. 내게 주어진 거의 모든 날들을 닥치는 대로 살았다. 바쁘면 우당탕탕 해결하고, 한가하면 맥없이 늘어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시간과 사람과 환경에 정신없이 끌려다녔다. 생활의 ‘항상성’은 매우 강한 자석과도 같아서 그 궤도를 쉬이 벗어날 수가 없다.
내 통제 하에 있는 삶이 아니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산 것도 내 책임이니 다시 쓴다. ‘통제하지 않고 내버려 둔 삶이기에'), 시도 때도 없이 우울이 찾아왔다 (사람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 때 우울증에 쉽게 걸린다고 한다). 나는 특정 활동을 성실히 반복하면서 나의 통제 영역을 조금씩 넓혀 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매일의 고정적인 루틴을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아주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의 암막 커튼을 걷는다. 그리고 이불 정리를 시작한다. 간밤에 어질러 놓은 안경이나 책 같은 것들을 모두 제자리에 정리한다. 깨끗하고 단정해진 방을 보면, 나의 주도 하에 하루를 시작했다는 뿌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단순한 행동이 하루를 위한 기합으로 이어진다.
얼마 전부터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일을 시작했다. 바로 ‘운동’이다. 나는 운동이라면 질색팔색이었고 그렇기에 운동 따위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물론, 신경정신과 주치의께서는 우울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라고 재차 강조해 오셨지만 말이다. 나는 겉으로 “네, 네”하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운동할 의욕이 있었으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요.’하며 냉소를 던지곤 했다.
구독하는 유튜브 목록 중 ‘키키 TV, 전지적 예능시점’이라는 채널이 있다. 최근 피드에 ‘하루 2분, 황금 복부 루틴’이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하루 2분? ‘노느니 개 팬다’라는 (개를 왜 패는지 모르겠지만...) 심정으로 한번 따라 해 봤더니, 웬걸, 도구 없이 맨몸으로 단 2분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진짜 운동을 했구나? 하는, 묘하고도 벅찬 감정이 올라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4월 ‘복부 만들기 챌린지 프로그램’이라는 별도의 라이브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고, 가벼운 운동과 클린식단을 아직까지 쭈욱 지켜오고 있다. 혼자였다면, 아마 못했을 것이다. 힘든 가운데 서로 격려해 주고, 동기 부여를 해주는 단톡방의 ‘동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지금 카톡이 하나 왔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이번 주말에 식단 한번, 10분 산책 한 번으로 스스로에게 선물해 주는 건 어떨까요?!”
운동은 귀찮고 괴로운 것이며 꾸역꾸역 하는 것이라 여겨 왔다. 시각을 달리 해보니, 오롯이 나를 위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괜히 마음이 찡했다.
아침 5시에 시작하는 이 루틴 역시 점차 항상성의 궤도에 오르는 중이다. 운동과 명상은 어쩌면 결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명상에서 강조하는 것은 ‘여기, 지금, 숨’인데, 운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세 가지에 집중하게 된다.
한편 ‘소유’를 지양하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자 한다. 바깥으로는 ‘최소한’의 것을 지니며, 안으로는 나의 ‘존재’에 집중한다. 손웅정 감독은 책에서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는 손흥민이 상으로 받아온 상장, 트로피, 훈장 등을 받아오는 족족 버렸다고 한다. 지난날의 성공으로 얻은 ‘소유물’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겸양을 버리고 오만해지는 것을 경계하였다는 것이다. 성공했던 과거는 과거로서 기억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던 경험과 그때 얻은 기쁨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의 표현이 거칠어, 아래 책의 문구를 인용한다.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소유당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무엇을 소유한다’라고. 하지만 그 소유물에 쏟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도리어 뭔가를 자꾸 잃고 있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특히 ‘관계’의 미니멀리즘이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를 보니 모르는 사람이 절반이었다. 남은 번호의 절반은 아주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서먹한 사람들이었다. 과감하게 그들 모두의 연락처를 지웠다. 주로 연락하는 지인과 가족들의 전화번호밖에 남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들과의 관계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연락처를 지우고 난 자리에 새롭고 건강한 관계를 심고 싶다는 소망이 들었다. 좋은 사람을 불러들이려면, 나의 심상부터 깨끗하고 올바르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첨언. 관계의 소유는 불가능하다. 상대는 상대대로, 나는 나대로 ‘존재’할 뿐이다. 여기 또, 손웅정 감독의 좋은 말씀이 있어 아래와 같이 인용해 본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가의 문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선택, 그런 건 내 삶에는 자리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좋은 것만이 진짜 좋은 것이다.”)
올 한 해 굳이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주로는 1~2평 남짓의 공간에서 읽고, 쓰고, 보고,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보석 같은 글귀는 지천에 널려 있었고, 사방으로부터 동기를 부여 받았다. 계기와 기회가 보일 때는 그것을 놓지 않고 꼭 붙잡았다. 계기가 인연이 되고, 인연이 운명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운명은 스스로 바꾸는 것이다. 나의 항상성도 궤도를 달리해 새롭게 안착되길. 그것이 이번달 내 목표, 나아가 이번 해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