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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 Lee Mar 03. 2017

한없이 깊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

<센서티브> 서평


 고3 때의 일이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반 안에서는 적막이 감돌고 저마다 불안감과 초조함을 숨긴 채 수면 혹은 공부를 이유로 총정리 문제집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나 또한 손톱만 물어뜯지 않았을 뿐, 그 누구보다도 수능 당일날 벌어질지 모르는 참사를 걱정하며 야자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에 뭔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툭툭- 툭툭- 툭툭 툭툭- 


처음엔 그 소리에 집중하지 않으려 보던 문제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계속되는 정체모를 소리. 이어폰을 꺼냈다. 음악을 크게 듣는 편이라 혹시나 피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꾹 참고 있던 중이라서 평소보다 소리를 더 작게 조정해서 MP3를 켰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이어폰을 꼈는데도 이어폰과 나의 신경 틈새를 파고들었다. 뒤를 보지 않은 채로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뭘까. 도대체 무슨 소리 일까. 상상조차 할 수 없어 결국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뭐야 도대체. 그 와중에도 소리는 계속 신경을 긁고 있었다. 바닥을 보이는 인내심에 인상을 찌푸리며 비스듬히 고개를 틀어 문제집을 다시 마주하려는 순간, 찾았다. 짧은 순간 내 신경을 꼬집고 비틀던 소리의 정체를.


그것은 내 책상 건너에 앉은 친구가 무의식 중에 다리를 떨어 책상과 닿는 소리였다. 그것이 친구의 가벼운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서 나는 어려울 것 없이 친구에게 웃으며 발소리가 너무 크다고 말하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홀연히 자리에 일어나 교실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도 그 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고 행여나 하는 마음에 걱정하는 친구의 마음도 상하지 않을 수 있는.


서평인데 무슨 자기 어릴 적 이야기를 세 문단씩이나 나눠서 장황하게 설명하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저 일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했다. 알고 있었는데, 확인사살받은 기분이랄까. 굳이 이유를 들어 해석하자면 첫 번째는 별 것 아닌 상황을 10년 지난 시점까지 A부터 Z까지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두 번째는 과도한 배려, 참사를 상상하는 과도한 걱정. 세 번째는 직접 말 한마디에 깔끔히 종료될 수 있었음에도 주저하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 이 모든 것들이 이 책 한 권에 모두 설명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뭘 저렇게까지.' 라던지, '아이고 답답아.' 등의 말을 듣는 민감한 사람에 관한 사용설명서, 혹은 당사자들에겐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 라 말하는 위로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에 대해 와 다른 글 찌질한 거 봐서 짐작은 했지만 저 정도였어..? 하지 않기를 바란다. 민감한 사람들을 조금은 빨리 이해할 수 있고 외향적인 사람들과 흥 터지게 놀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니까. 그렇기에 이 책의 모든 부분에서 동질감을 느낀 건 아니다. 필자 또한 아 이렇게까지 예민한 사람도 있구나 싶었던 사례들도 많았다. 작가 또한 서문에서 이 부분을 밝히고 시작한다. 예민하다는 것에는 관찰해보니 많은 특성들이 있고, 예민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1번 특성은 해당된다 하더라도 2번 특성은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고.


이 책은 여러모로(취향, 편집 등) 잘 쓰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로 진입장벽이 낮다. 표지에서부터 심리학을 표방하고 있으나, 학자 이름으로 시작되는 이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민감이 관찰기'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작가의 강연 활동과 실제 치료 사례를 토대로 민감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들을 서술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미사여구로만 이루어져  있어 입에 달기만 한 책은 아니다.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은 인정해야 하고, 부딪혀 나갈 것들은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양으로 측정하지 않고
질로 측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은 남들처럼 생산적이거나 효율적이지는 못하지만,
질적으로 우수한 일을 해낼 수 있고, 좁은 폭을 깊이로 상쇄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목차로부터 시작되는 친절함이 돋보인다. 문학 읽기가 익숙한 필자는 비문학을 접할 때면 목차로 그 책을 가늠하곤 하는데, <센서티브>는 목차를 훑어보면 이 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편의를 위해 상, 중, 하로 나누어 보면 '상'에서는 민감한 사람들의 일반적 특성에 대해 서술하고, '중'에서는 민감한 사람들이 남들보다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들에 대해 조언한다. 그리고 '하'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당신이 갖는 가치에 대해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이에게 설득하며 마무리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해당되거나 궁금한 부분을 찾아 쉽게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 번째로는 이 책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다칠 수 있는 것은 개구리만이 아니다. 그 물가를 거닐던 작은 물고기가 될 수도 있고, 물살에 흔들거리던 수풀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개구리를 닮은 물고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물고기인 줄 알았던 주변의 누군가가 알고 보니 개구리였음을 깨닫게 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오래전 답답해서 갈등이 되기도 했던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들을 이해하고 되려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남들보다 민감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1장 맨 첫 번째 문장이다. 자신의 민감한 정도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모두는 어쩌면 민감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나의 행동의 근원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더 나은 소통을 하는 팁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명시된 치료 사례와 저자의 주장이 외국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민감한 사람들이 다른 문화에서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느낄 수 있음을 또한 이를 통해 방증할 수 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감한 사람들이 세상을 좀 더 편히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만큼,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위로받고 싶다면 혹은 이해하고 싶다면 펼쳐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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