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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Sep 09. 2024

기억의 죽음

구멍난 삶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나에게도 끔찍한 기억들이 있는데,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의 기억들이다.


4학년 즈음의 기억들을 굳이 꺼집어내 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첫째, 규칙도 모르는 게임을 같이 하겠다고 앉아있다가 아이들로부터 손기락질을 받은 기억.


둘째, 함께 등하교할 만한 친구가 없어서 매일 혼자서 북적거리는 거리를 왔다갔다 하던 기억.


셋째, 친해지고 싶은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피해 도망치던 기억.


넷째, 혼자 쓰던 다이어리를 누군가 가져가서 몰래 보고 그 안에 쓰여진 내용을 가지고 몇 달 동안 놀리고 괴롭혔던 기억.


왜 이런 파편적인 기억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싶다가도, 그게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면 군말없이 받아들여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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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소외받던 나는 이후에 중학교 전학으로 나름의 인생 역전을 하게 되었다. 같은 도시 안에서 이동하는 것이었지만 끝에서 끝으로 가는 것이라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과 다름 없었다. 이제 예전의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새로운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보리라. 나는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전학간 학교에서는 정말로 나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에게는 단짝 친구가 생겼고, 다같이 무리지어 옷을 사러 가는 일도 종종 생겨났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 우스울 정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동시에 나는 서서히 초등학교 때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우기 시작했다. 나의 기억 일부를 죽인 것이다. 그래야만 내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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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무리 기억을 지워도 마음 속 구멍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가끔씩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건너건너 나를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나를 알아볼까봐 불안한 마음에 숨고 싶었다.


불편한 기억을 마주할 때면 나는 오래 씹은 껌처럼 뻣뻣하고 볼품 없게 되었다. 누군가 나를 질겅질겅 씹는 것처럼 온 몸 곳곳이 아픈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되살아난 기억을 다시 죽였다. 연달아 기억을 죽이고, 그렇게 나는 살아나서 현재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실제로 사람은 정말로 괴로운 기억을 잊어버린다. 충격적인 기억들을 “기억이 안 난다”고 포장하며 깊은 심연 속으로 감춰버린다. 기억을 죽여서 내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이것은 꼭 필요한 일일 테다. 어떤 기억들의 죽음은 나의 삶을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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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괴로운 기억들은 결코 죽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죽은 줄 알았던 오래된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죽은 기억을 되살려서 언어로 드러내고 있는 지금에서야 나는 정말로 회복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기억을 한 글자한 글자씩 꺼내놓고 나서야 나는 진짜 내 기억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진정으로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기억은 죽음과 되살아남을 반복한다. 어느 날, 정말로 잊고 싶은 기억이 드디어 말끔히 사라졌을 때, 그때의 나는 다시 땅을 짚고 일어나 다시 살아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구멍 난 삶이어도 괜찮다. 오래 씹은 껌이어도 괜찮다. 어떤 죽음은 성장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임을 한 번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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