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인 나는 감정 다스리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들은 나를 한 겹, 아니 두 세 겹으로 싸서 내가 세상을 그 감정대로 보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우울함이나 분노, 좌절감과 열등감, 짜증스러움과 원망스러움 등의 부정적 감정들은 특히 더 그렇다. 이 감정들은 한 번 생겨나고 나면,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버린다. 이럴 때에는 감정들을 약간씩 떼어내어서 멀리멀리 던져 버려야 한다. 아주 멀리 던지지 않으면 그것들은 스멀스멀 다시 기어 와서 나에게로 올라온다. 그러니 최대한 멀리 던진다.
내가 가장 주의해야 할 감정은 불안감이다. 불안이라는 이 감정은 아주 웃기는 것이다. 눈앞에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 의해 나는 불안을 느끼게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황이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이 아님에도,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하게 된다.
뇌과학적으로 우리는 두 가지의 통로에 의해 불안을 느낀다. 첫 번째 통로는 편도체에서 오는 불안이다. 편도체는 불안 반응의 생리적 원천인데, 우리 몸에 아주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뱀이나 거미를 볼 경우, 높은 곳에 올라갈 경우 등 현재 눈앞의 상황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이다. 이 불안감은 우리 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두 번째 통로는 피질에서 오는 불안이다. 당장 어떤 상황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임에도, 무서운 상황을 깊이 생각 및 상상하여 불안하게 되는 경우다. 피질이 편도체를 자극하는 생각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존재하지 않는 그 생각과 이미지로 인해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내일 늦잠 자면 어떡하지.’,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등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불안해하는 모든 생각이 여기에 해당된다. 첫 번째 불안만큼 몸이 얼어붙지는 않지만 숨이 차고 답답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자주 불안감을 묘사했다. 그가 아래 묘사한 불안은 피질에서 온 불안이다. 모든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일어날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잃어버렸던 불안이 몽땅 되살아났다.
이불 가장자리에 비어져 나와 있는 작은 털실 하나가 강철로 된 바늘처럼 딱딱하고 뾰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잠옷의 작은 단추가 내 머리보다 더 크지나 않을까, 크고 무겁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지금 침대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가 바닥에 닿자 유리처럼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그렇게 되면 실제로 모든 것이 다 깨어져 영원히 돌이킬 나위 없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걱정, 뜯겨진 편지의 가느다란 가장자리가 아무도 보아서는 안 되는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닐까,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어서 방의 어느 곳에도 숨겨둘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내가 잠들면, 난로 앞에 있는 석탄 쪼가리를 잘못 삼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내 머릿속에서 어떤 숫자가 자라기 시작하여, 몸속에 있을 자리가 없어질 정도로 커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내가 누워 있는 침대가 화강암, 그것도 회색 화강암이 아닐까 하는 불안,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러 문앞에 사람들이 달려와 마침내 문을 부수고 열고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내가 내 비밀을 털어놓지나 않을까 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모조리 말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모든 것이 말로써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여러 가지 불안들......
불안들이 꼬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는 그의 문장을 정말 좋아한다. 시인은 정말 다르다. 불안을 이렇게까지 마음에 와닿게 표현한 문장을 여태까지 나는 보지 못했다.
나 역시 그가 묘사한 종류의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옷의 실오라기가 점점 풀려나와서 입고 있는 옷 전체가 사라지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천장에 달려있는 실링 팬이 세게 돌아가다가 툭 떨어지지나 않을까 불안하다. 내 머릿속 생각들이 서로 엉겨 붙어서 나보다 커지는 바람에 내 몸 바깥으로 쏟아지지는 않을지 불안하다. 내가 마신 물에 결코 한 입도 마셔서는 안 되는 소독액이나 화학 성분이 들어가 있지는 않을지도 불안하다. 나의 불안은 이처럼 어마어마하고, 일상적이며, 끈질기다.
그래도 다행인 것 하나는, 나는 나의 불안이 피질에서 온다는 것을 안다는 점이다. 나의 불안은 생명에 위협적이지 않다. 나의 지나친 상상에 기반한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