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잘 지내지?”
엄마라기보다는 서먹한 친구한테서 온 문자 같다. 나는 답을 하려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나의 엄마에 대해 글로 써보자면, 백 페이지도 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분명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 내 인생의 대부분이 엄마와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건 심리학적으로도 옳은 얘기다. 부모와의 애착 및 경험은 우리 인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어렸을 때의 나는 엄마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눈도 크고, 손도 예쁘고, 머리카락까지 예쁜 엄마. 엄마는 그런 예쁜 얼굴을 하고서는 나를 낳고 이틀 동안이나 보러 가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도무지 볼 자신이 없었다고.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딸인 내가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살까 봐 걱정이 되었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나로서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 존재가 투명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의 전부였던 엄마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봐주기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해 주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 생각으로 엄마의 감정을 살폈다. 타고난 나의 예민함으로, 엄마가 행복한지, 억지웃음을 짓는 것은 아닌지, 어색해하고 있진 않은지 등을 파악해 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언제 정말로 행복해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엄마의 그 웃음을 다시 보고 싶어서 비슷한 상황을 재현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의 웃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그런 내게 많이 의지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 하나가 있다. 우리는 당시에 종이 신문을 구독하여 받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기존에 보던 신문을 미리 해지하지 않고 새로운 신문을 등록해 버렸다. 혜택이 더 좋다는 이유였다. 그 후에 신문을 해지하려고 전화를 걸었지만, 엄마는 난관에 봉착했다. 기존 신문사에서 해지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해 버린 것이다. 엄마의 커다란 두 눈이 더욱 커졌다. 그런 엄마를 대신하여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법이나 계약 같은 단어를 들먹이며 엄마를 대신하여 신문사에 따졌다. 법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는 없었다. 신문을 진짜로 해지할 수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그랬던 것이다. 전화기를 들지 않은 한 손이 덜덜 떨렸던 장면이 기억이 난다.
가끔은 엄마와 하나가 된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엄마가 나고, 내가 엄마 같았다. 엄마의 여러 감정들이 다 나에게로 들어왔으나, 나는 그런 나의 상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무던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엄마는 점점 더 자신의 감정을 많이 표출했다. 아마도 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때로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몸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동시에 내 몸 안에서도 비명이 흘러나오는 것도 같았다. 나는 나의 그 비명을 감추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