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 외향적 HSP에 대해 설명해보고 싶다.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HSP는 그냥 HSP보다도 더 복잡한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전체 인구의 14억 명 정도의 HSP가 있다. (출처 : <Sensitive : The Untold Story>) 이는 전체 인구의 15~20퍼센트에 해당한다. 생각보다는 많은 비율이다. 그런데 HSP 중에서 외향인인 사람을 분류해보자면 그 수는 매우 적어진다. HSP 중 70%가 내향인이고, 나머지인 30%만이 외향인이기 때문이다. 인구 수로는 4억 2천만 명이다. 이는 Elaine Aron의 연구에 따른 것이다.
나는 4억 2천만 명 중 하나인 외향적인 HSP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들을 정의하는 단어가 또 재미나다. Elaine Aron의 공식 HSP 웹사이트에 따르면, HSP이면서 외향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내향형’, ‘사교적인 내향형‘, 또는 ‘사색적인 외향형’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고감각성 외향형인 HSE(Highly Sensitive Extrovert)라는 용어도 사용되는 듯 하다.
외향적인 내향형, 사교적인 내향형, 사색적인 외향형. 이 단어들은 그 자체로 너무 모순적이고 복잡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외향적인 HSP, 즉 HSE의 특징이 원래 그렇다.
이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들의 에너지는 사람을 향한다. 사람들과의 교류, 대화, 연결 속에서 활력을 얻는다. 둘째, 고감도 시스템으로 인해 깊은 사고와 민감한 감정 처리를 한다. 상대방의 표정이나 말투 등 미묘한 단서를 놓치지 않으며, 때로는 타인의 감정을 자기 감정처럼 흡수하고 소화하기도 한다.
이 두 특징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갑자기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중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완전히 섞이지 못했다‘는 감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모임 안의 누구 하나라도 소외되지 않는지 살피고, 상처가 될 만한 말을 조심스럽게 걸러내며, 전체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책임감까지 느낀다.
이런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이들을 간단히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모순적인 단어로 이들을 정의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단어가 너무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 또한 복잡한 단어로도 이들을 설명하기가 충분하지가 않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과연 외향적인 HSP만 그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향형이든 내향형이든, HSP이든 ADHD이든, ENFJ든 ISTP든, 단어 하나만으로 정의될 수가 없다. 한 사람은 하나의 세상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것일 테니 말이다. 각도를 조금만 달리 해서 보면 같은 사람이 달라보이고,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그렇다. 과거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초민감자 또는 HSP라고 설명했지만, 나에게는 분명 또다른 모습도 있다. 또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복잡한 세상, 복잡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함 속에서 세상과 사람을 자꾸만 분류하고 정의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시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시도한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근원적으로 느끼게 되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하여.
창밖을 보니 비가 그새 그쳤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기 시작한다. 나는 조금 불안하다. 이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나는 어찌 되었든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한다. 복잡한 세상과 복잡한 사람들을. 복잡한 나 자신까지도.
아까 못 했던 산책을 하러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