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선 끝에 서 있는 나는 초라하고 안쓰러웠다. 엄마는 나를 부족한 딸, 아니면 이기적인 사람 정도로 바라보았는데, 실제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넌 이기적이야." 나는 이 말을 여러 번 들었고, 당연히 이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다. 내 안에 새겨진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엄마와 같아지면서 나 역시도 나를 그렇게 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엄마가 나를 부족하게 바라보듯이, 나 역시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정의했다. 나는 그런 내가 초라하고 안쓰러웠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바쁘게 사는데, 정작 엄마의 사랑을 받지는 못 하는 안타까운 사람. 그게 나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엄마와 나의 관계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더욱 그랬다. 몇 권의 책을 읽었고, 상담도 받았다. 나는 부족하거나, 초라하거나, 안쓰러운 사람이 아님을, 존재만으로도 충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임을 스스로 깨달았다. 특히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내 아이들과 남편 덕분에 나는 두 발을 땅에 딛고 똑바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엄마와 나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두고 있다. 엄마의 인생이 내 인생이 아니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면서 말이다.
엄마와 만나는 횟수는 전보다 줄어들었다. 그전에는 '내가 만나서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줘야 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엄마도 스스로의 인생을 잘 살아내야 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엄마와 나의 입장이 바뀐 것 같지만 말이다.
"네가 엄마 같구나."
얼마 전에도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그 말은 내 안에 무겁게 떨어져서 가라앉았지만.
몇 개월 동안 엄마를 보지를 못 했다. 아마도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게 되면, 엄마가 많이 시들었다고 생각할 것 같다. 엄마의 생기가 어딘가에라도 남아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도, 나는 엄마를 자주 생각한다. 엄마를 생각할 때에는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은 멀찍이서 엄마를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예민한 내가 엄마를 생각하는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엄마를 나처럼 여기지 않기.' 우리는 일심동체거나, 소리 없는 비명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엄마의 웃음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만 하면 될 뿐, 그 이상의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한다.
“잘 지내. 엄마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