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사람은 그저 꿈을 꿀 뿐이지만, 자신의 내면을 보는 사람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다.
-칼 융
7살 때 내 꿈은 화가였다.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도 받고 상도 받았다. 그러나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어른에게 내 꿈을 소개하면 왠지 모르게 걱정하고 실망하는 눈치였다.
"얘야. 화가는 가난하단다."
나는 상대방의 감정 파악과 상황 판단이 유달리 뛰어난 아이였다. 남들은 그런 나에게 눈치가 빠르다고 말했다.
"엄마. 그러면 부자가 되는 직업은 뭐야?"
"의학박사지~!"
그때부터 나는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꿈으로 바꿔치기했다. 내 꿈은 이제부터 으악 박사다. 맙소사! 7살 어린이는 의학박사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내 귀에는 엄마의 발음이 으악 박사라고 들렸다.
드디어 유아원 재롱 잔치 날이 됐다. 우리는 그동안 준비한 재롱을 자기 부모, 남의 부모 할 것 없이 모두의 앞에서 한껏 자랑했다. 역시 잔치에는 춤과 노래 그리고 술이 아니고 요구르트가 있어야 제맛이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장래 희망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친구들이 다 같이 뒤에서 "너는~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될 거냐~?"라고 외치면, 앞에 나온 아이는 장단에 맞춰 장래 희망을 말해야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사탕 목걸이를 목에 걸고 어깨까지 덩실거리며 "나는~ 나는~ 자라서 으. 악. 박. 사가 될 거야!"라고 으악 박사를 스타카토로 불렀다. 혹시 몰라서 모두가 '으악 박사'라는 단어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작은 입을 하마처럼 최대한 크게 벌렸다.
나는 그런 내가 퍽 자랑스럽게 느껴졌는데, 엄마의 광대 승천은 물론 다른 어른들도 내 꿈이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아원에서 영민한 아이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 글쎄 어떤 녀석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기세등등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여기저기서 물개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 아이의 부모는 주변 어른들로부터 "대단한 자녀를 두셨습니다."라는 인사를 받더니 어깨가 하늘로 치솟았다. 으악 박사는 그렇게 대통령에게 밀리고야 말았다.
그런 유아원 시절을 거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4학년쯤이었나?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앙케이트'라고 또박또박 한글로 적은 공책이 유행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 것 같아 부연 설명을 하자면, 아이들끼리 서로에게 궁금한 질문을 적고 답하는 공책이었다. 한 마디로 친구들에 대한 궁금증과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답하는 비밀 노트였다. 우리는 꽤 긴 시간 동안 은밀하게 앙케트 공책을 돌려가며 타인과 자신에 대해 알아갔다.
어른에게 칭찬받기 위해 거짓으로 꾸미는 모습이 아닌 진짜 자기 욕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앙케트. 사랑하는 부모님도 존경하는 선생님도 우리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소중한 앙케트. 사랑해요. 앙케트! 우유 빛깔. 앙케트! 잘 생겼다. 앙케트!
그때는 친구들끼리 꿈이라는 단어 대신 장래 희망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는데, 나는 장래 희망을 묻는 칸에 으악 박사도 화가도 아닌 디자이너라고 적었다. 종이 위에 내가 상상한 대로 그린 그림이 실제 옷이 되고, 그것을 사람들이 입고 다닌다는 것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앙케이트 공책은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공책이었던 것 같다. 10년 후 나는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실제로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내가 그것을 얼마나 원했는지 아는 순간은 그것을 가져봤을 때다. 한동안 꿈을 이룬 나 자신이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그래서 행복했다.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기 싫은 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존재한다. 하기 싫은 일이란 대체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게다가 목표라는 것은 이루고 나면 성취감의 기쁨은 잠시고, 그다음은 공허하고 허무하다. 덕분에 나는 그토록 원하고 재미를 느끼던 직업조차도 온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꿈을 이룬 뒤 깨달았다.
한국 여자 골프의 신화를 쓴 박세리는 은퇴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골프를 열심히만 했지 즐기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보니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밸런스 (조화)인데, 그때는 마치 골프가 인생의 전부인 듯 살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후배들만큼은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즐기면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과거의 세상은 우리에게 남들에게 인정받고, 돈 많이 벌어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원하는 꿈을 갖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성취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탓에 한동안 꿈 마케팅 열풍이 불었고, 많은 이가 좋아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 조급해했다. 마치 열정을 쏟아부을 만큼 가슴 뛰는 직업을 찾았을 때 행복이 보장되는 것처럼 환상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꿈을 이뤘다고 인생 전반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 꿈을 이룬 성취의 강렬한 기쁨은 순간일 뿐 꿈을 이뤄가는 과정과 그 후의 일상이 훨씬 길다. 그러므로 평소에도 감사와 기쁨과 재미를 자주 느낄 수 있는 재능이 삶에서는 더욱더 중요하다.
온전한 행복의 비밀은 강도가 아닌 빈도에 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닌 자기 마음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잠깐만이라도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오늘 웃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