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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준열 Nov 13. 2024

복잡한 마음의 이름, 아버지

섭섭함, 감사함 그리고 미움과 사랑

감사하게도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냥 감사하고 행복했지...라고 생각했던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서운함과 그리움이 동시에 생긴다던데... 나 또한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문득문득 떠 올랐고 그럴 때면 마음이 복잡했다. 이게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이제야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도 함께 말이다. 하릴없이 옛 기억을 더듬고 누군가를 원망하기 위함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유복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던... 고통스러웠던 옛 기억과 슬픔을 진심으로 놓아주어야 내 인생이 좀 더 자유로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누구나 그렇듯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주경야독으로 삶을 이끌어 오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삶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된 반면,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강인하고 견고한 사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난 지금도 아버지를 존경한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사셨고 자식들만은 어렵게 키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그러한 아버지 덕에 유복하게 자랄 수 있었다.


반면에 아버지의 삶에는 두려움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식들을 편하게 지켜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공부는 잘하는지, 똑바로 살 수 있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어디 가서 다치지는 않을지..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었겠지만 아버지의 삶에는 "근심과 걱정"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의 "사서 걱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다. 물론 걱정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에 대비를 해야 하니까. 조심스럽게 사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자식들에게 오히려 "두려움"을 물려주는 모습이 되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리 가정에는 "잘못되면 어떻게..." "실패하면 끝이야..", "그렇게 살면 큰일 난다", 주변에 망한 사람들 이야기.... 사건사고... 공부 못해서 나락 간 지인 자식들 이야기... 아무튼 긍정보다 부정이 훨씬 더 컸다.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내 자식을 남의 자식과 비교"하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부모님은 모르셨을 것이다. 자식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했던 말이니까. 하지만 저녁 식탁에서의 남의 자식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지금도 기억하는 느낌이 있다. 그런 말을 하실 때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 나보다 더 잘하고 있는 친척, 부모님 친구아들, 윗집 아들, 딸.... 모두 나보다 뛰어나고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됐다. 주변에 공부 잘하는 애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 나도 1등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나도 잘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나도 잘하는 거예요... 그러니 나도 좀 칭찬해 주세요!" 

아마도 삼형제 모두 같은 심정 아니었을까.


형을 미워하게 된 계기도 있었다.

형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인지라....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계속 어긋났다. 아버지는 그러한 형을 못마땅해 했고 오랜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문제는 형에 대한 스트레스를 둘째인 나에게 풀어왔다는 것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소파에 앉으면 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너희 형은 도대체 왜 그러냐?"....

난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형의 행동들, 아버지의 걱정, 원망... 아버지는 스트레스를 풀어서 시원했겠지만 어린 나는 그 모든 무게를 감당했어야만 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난 뒤까지 형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형은 계속해서 아버지의 걱정과 부정적 감정에 호응을 했다. 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아니, 이미 나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일기장을 보면 온통 "내가 더 잘해야겠다" "나라도 잘해야겠다" 등등 형에 대한 원망이나 성적, 죄책감, 반성.. 각오뿐이었다. 어린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런 내용뿐이었을까.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을지라도 정신적으로는 피폐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남들이 배부른 소리라고  할진 모르겠지만 난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지난 기억들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순간의 우월감과 행복감을 주었을진 모르겠지만 사람이 성장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긍정성을 키워나가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려움보다 자신감을, 비교보다 칭찬을, 근심걱정을 보여주는 사랑이 아니라 믿어주는 사랑을 주었으면 어땠을까.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하고 겪어 나가면서 나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좀 기다려 주었으면 어땠을까. 



동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럴 때면 가끔 아플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놓아드렸기 때문이다. 미움과 감사함이, 존경과 두려움이 함께 있지만 이제는 한 인간으로서, 나약함과 강인함을 함께 지녔던 나의 아버지로서 마음 한편에 모셔드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부모님도 무엇인가로부터의 피해자였을 수도 있다. 부모님도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완전히 아버지를 받아들이기도 했고 놓아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숙제... 오랫동안 내 마음을 괴롭혀왔던 형도 용서하고 놓아주기로 했다.


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내가 부모님에게 느꼈던 어두운 부분은 느끼지 않도록 해 주고 싶다. 난 그렇게 해 왔을 까?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자식들에게 보였으면 하는 외면적 강인함 보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장점도 단점도 있는 평범한 아빠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싶다. 무엇이 자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건지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자식들의 미래에 두려움을 갖지 않으려 한다. 당연히 아이들이 잘 되는 모습이 부모의 바람이겠지만... 내가 다그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다. 걸 너무 잘 안다. 

중요한 건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먼 훗날 아버지를 놓아주는 게 나처럼 아픔의 순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UnsplashJD M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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