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폭력, 그리고 우정과 폭력사이ㅡ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68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68

ㅡ 훈육과 폭력, 그리고 우정과 폭력사이ㅡ


얼마 전, '손흥민' 선수 아버지 '손웅정' 감독과 코치진이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고소인은 주장했다.


“경기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코너킥 봉으로 허벅지를 맞아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고, 평소 숙소에서도 엉덩이와 종아리를 반복적으로 맞았다. 훈련 중엔 거친 욕설도 들었다.”


어쩌면 이 사건은 법의 영역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나는 고소인 측의 뒷이야기나 손웅정 감독의 영상 파동에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정도면 고소할 만한 폭력인가, 아니면 훈육으로 봐야 하는가?" 그 질문 하나를 품고 글을 이어간다.


회초리!


우리에겐 '회초리'라는 단어가 있다.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 하나가 훈육과 사랑의 상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회초리(回楚)의 ‘회(回)’는 ‘되돌리다’, ‘초(楚)’는 ‘나무막대기' 즉, 잘못된 행동을 올바르게 되돌리기 위한 도구라는 의미이다.


조선의 풍속화 속 서당 장면을 떠올려 보자.


아이들은 훈장 앞에 조용히 손을 내밀고, 훈장은 조용히 회초리를 든다. 체벌은 있었지만, 그 안에는 규율과 정이 있었다.


부모님들 역시 회초리를 벽에 걸어두며 자식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것은 공포의 도구이기 보다는 교육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폭력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 전통 회초리는 엄연히 ‘훈육’ 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폭력’으로 변질되었다.


나는 그 기원이 '일제강점기' 였다고 본다.


군국주의 '일본'은 위계질서와 복종의 구조를 강요했고, 교사들 조차 칼을 차고 아이들을 가르친 시절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그 잔재는 남았다. 군대, 사회, 학교 모두가 폭력을 자연스레 내면화 했다.


좌우 대립, 전쟁, 쿠데타 혼란과 격동 시대에 사람들은 권위와 힘으로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그 속에서 ‘사랑의 매’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탈바꿈했다.


교사들 폭력은 일상이었고, 학생과 학부모조차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한 선생은 떠드는 두 학생을 불러 서로 뺨을 때리게 했다. 서로 울면서 점점 세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던 선생 얼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른 한 선생은 시계를 풀더니

한 학생을 주먹으로 교실을 한 바퀴 돌리며 때렸다. 결국 그 학생은 쓰러졌고 기절했다.

우리는 숨조차 삼킨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선생은 내가 대학입학 후, 대학교수가 되어 있는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비교적 자율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울대’ 라는 별명의 군기반장 선생님은 늘 손에 바리깡을 들고 다녔다.


그 선생의 목울대를 수도로 가격 하는 기술은 탁월했다. 맞은 학생 은 한 동안 숨이 멎을 정도로 충격 받았다.


또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게 느껴지면 고속도로 처럼 머리 중앙을 밀어버렸다.


우리는 그런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학교 안 이발소로 가야만 했다.


그 이발소 아저씨,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에게 정기적으로 술 접대했을지 모른다.^^


내가 폭력에 크게 노출된 직접 겪은 경험도 있다.


나는 고2 때, 담임 수업 시간에 야한 소설을 읽다가 들켰다.

담임은 지휘봉처럼 생긴 회초리로 나를 인정사정없이 몇 분 간 때렸다. 맞은 손등과 등은 시퍼런 멍이 들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후, 담임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내 멍 자국을 살피며 “내가 너무 흥분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선생님이 사과까지 하다니...


폭력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더 컸다. 하지만 선생님 폭력이 정당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쨌든 나는 아픔도 잊었다.

손등에 멍자국도 선명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보고 묻지도 않고 신경 조차 쓰지 않았다.


그 시절엔 그랬다.


그러나 분명 폭력은 폭력이었다.


우리는 오도된 고정관념으로 ‘훈육’으로 받아 들였을 뿐이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는 말이 당연해진 시대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는 "사랑의 매는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요즘은 교사 폭력이 사라진 대신, 반대로 학생이 교사 폭행하거나, 또는 그 자리를 학생들 간 폭력이 차지 했다.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이 교사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영상이 뉴스에 나오기까지 했다.


교사들은 이제 훈육은커녕 교육 조차 두려워한다.


스승이 아닌 지식전달자로서 버티는 것도 벅찬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훈육’과 ‘폭력’의 경계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교폭이 아닌 학생 간 폭력, 우정 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폭력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동급생 사이에 저런 폭력 이 가능할까?"


내 학창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친구들 사이에 개인들 간 싸움은 자주 있었지만 '집단 따돌림'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왕따’, ‘일진’, ‘학폭’. 이제는 친구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이 아이들 미래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교사에게 맞고 자살했다는 이야기 는 거의 없지만, 학생 간 폭력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은 계속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 (언어폭력, 신체폭력 등)을 경험한 대학생 대상 조사에서, 피해 경험자 중 54.4%는 자살 생각을 했고, 13%는 자살 시도 경험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교사 폭력은 ‘훈육’으로 치장 할 수도 있었다지만 학생 간 폭력은 피해 학생 ‘인생’을 파괴 한다.


이제는 ‘훈육과 폭력 사이’가 아니라 ‘우정과 폭력 사이’를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야 할 때다.



이 일에는 학교, 가정, 사회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가해 학생에겐 교정과 교육을,

피해 학생에겐 치유와 보호를.


교권회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고리를 끊는 일이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이유 중 하나 가 되고있는 지금도 흐르고 있는 '우정과 폭력사이' 이 어두운 강을 우리가 함께 건너야 할 때다.


ㅡ 초롱박철홍 ㅡ

keyword
이전 18화추석'에 대해 모든 것을 정리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