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한 이야기 Feb 09. 2022

[소소한 이직이야기] 06. 여섯 번째 노닥노닥

열정과 공감 사이 

※ 이번 글은 제가 브런치와 별도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을 조금 가다듬은 글입니다. 작년 초에 작성했던 글이지만 노닥노닥 브런치에 올릴만한 글이라 생각되어 이렇게 재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보다는 많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편이죠. 그러나 그러한 열정을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편입니다. 오히려 너무 드러내지 않아 종종 오해받기도 합니다.


제가 이러한 자세를 취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면 3년 차 ~ 5년 차 시절, 어쩌면 제 경력에서 가장 열정이 넘쳐났던 그 시기에 있었던 일들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때 저는 내적은 물론 외적으로도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는 일은 매번 새로웠고 밤새워 만든 결과물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팀과 회사 모두가 함께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으쌰 으쌰 하며 달려가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 술도 한잔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며 순간을 즐기는데 큰 만족감을 느꼈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겐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과도한 열정과 그러한 열정을 주변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그들은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에는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많지 않은 연봉이지만 회사에서 나름대로 인정 받고 있었고 그런 저에게 가족과 친구, 주변 동료의 불만은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열정의 화신 유노윤호 못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있던 그때


그런데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경영이 불안정하였던 회사는 직원의 월급을 줄 수 있게 해주는 소위 돈 되는 클라이언트에 목말라 있었고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한 클라이언트는 그것을 빌미로 과도한 갑질을 일삼았습니다. 세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그러한 갑질에 계속 불만을 느끼고 있던 저는 어떤 사소한 트러블이 기폭제가 되어 그 클라이언트와 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클라이언트는 회사에 제가 사과하지 않으면 일을 주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당장 돈이 들어오는 것에 매달려 있던 회사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저를 지켜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밤낮으로 회사를 위해 일했지만 돌아온 이 어이없는 결과에 저는 한때 업계를 떠나 딴 일을 하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큰 상처를 받았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앞서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회사를 나가 몇 달 백수로 지내다가 다행히 합류할 수 있었던 다음 회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도 저는 회사와 일을 위해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었습니다. 합류 첫해, 새롭게 신설된 팀에서 신규 프로젝트 수주가 중심이 되다 보니 큰 성과를 얻지 못해 연봉이 결국 동결되었지만 운 좋게도 그다음 해부터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를 담당하게 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었습니다. 그 전년도 연봉 동결 때 회사에서 제시하였던 이유가 "가시적인 성과"의 부족이었는데, 그 "가시적 성과"를 달성한 해에는 회사 전체의 연봉 테이블과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이라는 이유로 "가시적 성과"가 연봉 산정에 미치는 포션이 줄어든 것입니다. 오히려 연봉 인상의 상한선을 그어버리며 제 연봉을 올리려면 우리 팀의 다른 팀원의 연봉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즉시 반발했습니다. 한 달 넘게 연봉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결국 기존 제시금액보다 조금 더 많은 연봉으로 사인을 하게 되었지만 저는 또다시 상처받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건을 돌이켜보면 우습게도 저는 회사를 위해 일했지만 회사는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때 저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저의 과도한 열정에 부담을 느끼거나 피곤해했을 주변의 동료들이었습니다.


그즈음을 기점으로 일과 업무를 대하는 저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성과도 좋고 결과도 좋지만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어느샌가 저는 주변 동료들과의 소통과 교류, 그리고 같은 공감대 형성을 강하게 지향하는 직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예전만큼 업무 성과는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더 이상 미련하게 충성하고 상처받는 일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열정 그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열정이 그대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회사에 지원하면서 쓰는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마 불합격 사유에 딱 들어맞겠죠.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 중 이러한 이야기에 공감할만한 사람들은 매우 많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성과나 회사에 대한 애사심, 충성도 좋지만, 그것이 본인을 끝까지 지켜주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동료의 소중함에 대해 한 번 더 느끼고 본인의 능력에 대한 과신과 그로 인한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이전 05화 [소소한 이직이야기] 05. 다섯 번째 노닥노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