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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이야기 Feb 11. 2022

[소소한 이직이야기] 07. 일곱번 째 노닥노닥

프로 이직러의 불편한 기억들

※ 이번 글은 제가 브런치와 별도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을 조금 가다듬은 글입니다. 작년 초에 작성했던 글이지만 노닥노닥 브런치에 올릴만한 글이라 생각되어 이렇게 재탕하게 되었습니다.



 별명  하나가 "프로 이직"입니다. 10년이 조금 넘는 커리어 속에서 잠시라도 몸담았던 회사가 8개이니  그렇게 이직이 잦냐는 말을 들어도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계획과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직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에 써보려는 글은 그러한 이직의 원인과 이유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겪었던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는 내용입니다. 많은 이직을 거친 만큼 많은 채용 과정을 경험하였고 그중에서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기억은 앞서 작성한 글에서 "첫 번째 사건"으로 등장했던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당시 지방에 거주했던 저는 "그 사건"을 계기로 이직할 곳을 찾기 시작했고 주변 지인의 소개로 동일 업종의 나름 대기업으로 꼽히는 곳의 지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사장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자리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만 본사의 컨펌이 필요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뭐 그 정도야 하는 마음에, 그리고 나름 대기업의 지사에 이직한다는 들뜬 마음에 당당하게 회사에 언제까지 다니고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했었습니다. 큰 상처를 받았던 저에게 큰소리치며 퇴사를 통보하는 경험은 짜릿했죠. 하지만 너무 들떴던 것일까요? 이후 면접을 본 곳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회사를 그만둘 시기가 되었고 답답해진 저는 지사장에서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사에서 거부당했다고 하네요. 본사에서 해당 포지션으로 직원을 발령 낼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뒤통수 맞는 기분에 몇 달간 강제 백수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후 시간이 흘러 해당 기업의 서울 본사를 다니는 지인에게 들어보니 해당 기업은 지사장에서 "인사권"이 없다고 합니다. 그 지인이 추측하기로는 인사권이 없는 지사장의 채용 컨펌 요청에 본사 인사팀이 엄청나게 당황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본사 인사팀 직원이 직원 채용 요청에 코웃음 치며 "본사에서 사람을 내려보낼 테니 그 사람을 채용하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도대체 왜 면접을 본 것인지 참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분통이 나는 일입니다.


두 번째 기억은 한 곳은 아니고 몇 기업에 대한 공통적인 기억입니다. 그 기업들의 공통점은 회사가 창립한 지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된 기업이지만 최근에야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회사 규모도 크진 않았지만 기존 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펼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회사 홈페이지와 기사, 그리고 채용공고에는 그러한 비즈니스를 제대로 펼쳐보고 싶어 하는 열의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면접을 보는 순간 그러한 기대는 와장창 무너졌습니다. 본인들이 뽑고자 하는 포지션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고 제가 서류전형을 통과한 이유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냥 몇 명 안되는 지원자 중에서 그나마 볼만해서 혹은 지원자 모두 면접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면접을 진행한 후 마지막으로 "아 우리가 뽑아야 하는 포지션은 A가 아니라 B였군요!"라고 말하는 대표도 있었습니다. 그럼 A포지션으로 지원한 저는 뭐가 되는 걸까요?


마지막 기억 역시 참 어이없는 기억인데,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하게 되었고 해당 회사의 마케팅 임원과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는 그 당시에도 시장에서 크게 떠오르고 있는 기업이었고 나름 이전의 사업경력도 화려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간 회사 사옥은 너무 초라했습니다. 사옥이야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면접에 임했고 면접은 매우 긍정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습니다. 면접 이후 임원은 대표에게 보고할 예정인데 매우 긍정적이라는 피드백을 해주었고 나는 너무 큰 기대는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기대감을 가지며 귀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헤드헌터를 통해 전달받은 내용은 너무 어이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채용하겠다는 임원의 보고를 받은 대표는 제 경력을 볼 때 제가 지원한 A브랜드가 아니라 그 회사의 기존 사업이자 캐시카우였던 B브랜드에 더 적합한 것 같다면 그쪽으로 채용을 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채용 확정이 아니라 그쪽으로 다시 면접을 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면접을 보러왔을 때 안 좋게 보였던 사옥 건물만큼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실 헤드헌터에게 제안받았을 때 혹시나 B브랜드인건 아닌가 확인할 정도로 B브랜드는 거부감 주었던 브랜드였습니다. 지금은 분명 돈을 벌어들이는 캐시카우 사업이지만 발생하는 건별 매출이 너무 작았고 경쟁자가 등장한다면 언제든지 밀려날 수 있는 서비스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걸 하기에는 변화를 만들 모멘텀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반면 A브랜드는 당시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장을 개척하는 상황이었고 우리만의 성장 곡선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지원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B브랜드를 맡으라니….

고민 끝에 승낙 했지만, 면접을 보면서 또다시 거부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B브랜드의 임원과 다시 면접을 보았을 때 이런 평가를 하는 게 조금 미안하지만 인텔리하고 친절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던 A브랜드의 임원과 달리 B브랜드의 임원은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마인드와 행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생긴 거부감에 알게 모르게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서 결국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난 경험에서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길어지는 백수 생활에 조금 지쳐있던 시절, 면접관에게 들었던 어떤 말은 저를 북돋아 주는 힘이 되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다시 생각하는 말이 되었고, 지원할 땐 저조차도 반신반의했던 기업이지만 면접 시 느꼈던 직원들의 애정과 열정이 이후 몇 년이 흘러 급성장한 기업의 모습이 되어 다시 느껴졌던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원자는 회사 밖을 나가면 고객"이라는 말처럼, 본인들의 회사에 지원한 사람을 너무 쉽게 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채용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지원자만큼 뽑는 사람들도 진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채용 과정에 들어가는 돈과 시간, 노력, 그리고 떨어졌을 때 느낄 상실감 등에 대해서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회사에 지원했다고 그 지원자를 을로 생각하는 대표와 임원(심지어 일반 직원도)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 저 회사들에 입사하였더라도 곧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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