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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 Aug 30. 2024

고색창연의 의미를 알려준 바탈랴 수도원


알쿠바사에서 파티마로 가는 도중 25km 거리에 바탈랴가 있다. 이곳에는 알쿠바사의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과 대비되는 산타 마리아  토리아 수도원이 있다.

직역하면 산타 마리아의 승리라는 의미로, 구글지도에 한국어로는 바탈랴 수도원으로 표기되어 있어 이후 간단히 바탈랴 수도원으로 표기한다.


포르투갈의 페르난두 1세 사망 후 딸 베아트리스의 남편인 카스티야(후에 스페인)의 왕 후안이 포르투갈을 흡수하려 하자 포르투갈 귀족들의 지지를 받은 페르난두 1세의 서자이며 베아트리스의 이복동생인 아비스 기사단 단장  주앙이 후안과 전쟁을 시작했다. 수년 간 교전 끝에 주앙이 이끈 아비스 기사단이 승리하여 주앙은 조국을 지킨 영웅으로 추앙받고, 이후 포르투갈의 왕이 되어 아비스 왕조를 세우게 된다.


바탈랴 수도원은 1385년 스페인과의 알주바로타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주앙 1세가 성모 마리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1836년 건축을 시작했. 건축 기간이 150년 이상 걸린  바탈랴 수도원에 대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인터넷 검색이 더 좋을 거 같아, 단순히 내가 느낀 점만 언급키로 한다.


주차를 하고 대로 뒷길로 접어드니, 알쿠바사 수도원의 직선적인 사각 형태와는 다른 바탈랴 수도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알주바로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누누 알바레스 페레이라( Nuno Álvares Pereira)장군의 기마상. 훗날 성인상에 오르는 포르투갈 국민 영웅 중 한 사람이다.


알쿠바사 수도원과 또 하나 대비되는 건, 알쿠바사 수도원의 경우 종탑이 있는 중앙 입구 부분 외는 외벽이 거의 옅은 톤인데 비해, 바탈랴 수도원은 전체가 황토색 톤으로 엣지 부분의 철기 느낌을 주는 진회색 톤과 어울려 보다 고색창연하게 다가온다.

바탈랴 수도원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포르투갈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도입됐다고 한다.

이곳에도 석관이 있는데 알쿠바사 수도원의 석관과는 형태가 다르다. 석관 사면에 무늬와 조각이 없이 단순하고, 알쿠바사 수도원의 페드루 왕과 이네스 왕비의 석관은 하부가 떠있는데, 이곳 석관은 바닥과 붙어 있다.

중정을 바라보며 거니는 회랑의 폭도 넓고, 천장과 벽, 바닥까지 하나하나의 구조에 입이 다물어질 틈이 없다.

전체적으로 알쿠바사 수도원과 내부 형태는 비슷하면서 약간 축소된 느낌이지만, 하나 특이점이 있다.

일반적인 중세 수도원과는 달리 무명용사를 기리는 공간이 있다. 프랑스와 모잠비크에서 전사한 군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두 명의 근위병이 지키고 있다. 근위병 교대식도 볼거리라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몰라 패스.


바탈랴 수도원에는 그 외 과거 전쟁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실도 있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에는 포르투갈 군대에 대한 역사적인 사료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 또한 일반적인 수도원과의 차이점이다.

그 중 눈에 띈 게 훈장. 보는 사람에 따라 유치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내 눈엔 정교하게 치장된 목걸이로 인해 훈장의 가치가 더 돋보이는 거 같다.


수도원 입장료는 알쿠바사 수도원과 동일한 6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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